천지부모님이 계시듯이 어머니산과 아버지산이 있습니다. 모악산(母岳山)은 천하의 어머니산이요, 회문산(回文山)은 천하의 아버지산입니다. 모악산 금산사를 통해 세상에 오신 증산상제님께서는, 천하의 아버지산인 회문산에 들어가셔서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五仙圍碁) 바둑판에 맞춰 요임금(堯)의 아들 단주(丹朱)를 내세워 천하통일의 대공사를 보셨습니다. 고수부님께서는 오성산(五聖山)에 바둑판을 묻어 오선위기의 기운을 오성산으로 옮겨, 단주가 오성산 기운을 받아 천하통일의 대역사를 성사재인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모악산은 예로부터 금산(金山)으로도 불렸으며, 금산에 있는 절이라고 해서 금산사(金山寺)라 칭하여 왔습니다.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미륵불의 계시를 받고 미륵불을 조성해 놓고, 이후에 미륵불이 출세하여 용화세계를 건설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하여 왔습니다. 모악산(금산)은 미륵불을 모신 산이라고 해서 미륵산(彌勒山)이라고도 불려왔고, 모악산 아래 금산사가 자리잡은 마을을 미륵불 용화세계가 펼쳐지는 마을이라고 해서 '용화동(龍華洞)'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또한 요순세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용화동을 요임금의 성덕이 펼쳐지는 동쪽의 동네라 해서 '동요동(東堯洞)'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불국토(佛國土)와 대동세계(大同世界)를 갈망해온 백성들의 바램이 용화동과 동요동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천상 태을궁에 계시던 미륵불이신 증산상제님께서는 이마두 신부의 하소연을 듣고, 금산사 미륵불에 성령으로 강림하여 천하를 대순하다가 고부 객망리에 탄생하셨습니다. 신축(辛丑,1901)년 모악산 대원사에서 태을궁(太乙宮)의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고 태을도(太乙道)를 삼계에 선포하시고, 후천의 요임금으로서 용화동(동요동) 구릿골에다 만국의원 광제국을 차려놓고 단주를 내세워 세계일가통일정권을 건설하는 천지공사를 보시고, 금산사 미륵불을 통해 천상 태을궁으로 환궁하셨습니다. 증산상제님에 의해 용화동과 동요동의 기운이 발음된 것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금산과 용화동을 당신의 기지요 터라고 말씀하시고, 때가 되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금산사를 김형렬에게 잘 지키라고 당부하셨고, 고수부님께서는 이상호 이정립 형제에게 건곤사당을 지어 용화동을 잘 지키고 있다가 용봉기(龍鳳旗)를 꽂아놓고 단주를 잘 맞아들이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오성산(五聖山)은, 당나라 소정방에 저항하여 바둑을 두던 다섯명의 백제 노인들의 애국충절을 기리는 의미에서, 오성인(五聖人)이 묻혀있는 산이라고 했고, 언젠가는 오성인이 출세하여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 태평천하한 요순세상을 건설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입니다. 오성산 정상에는 다섯 노인들의 충절을 기리는 오성인의 무덤이 있고, 도진봉에는 고려시대 때 관세음보살을 모신 성흥사(聖興寺)라는 절이 세워졌습니다. 오성산에는 옥녀봉(玉女峰)이 있고 옥녀직금혈(玉女織錦穴)이 숨겨져 있다고 하고, 오성산 봉우리들이 오선위기(五仙圍碁)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오성산 아래의 마을 이름을 요임금의 덕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의미의 '성덕리(成德里)'라고 했고, 성덕리 주변을 서쪽에 있는 요임금 동네라는 뜻으로 '서요동(西堯洞)'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요동 모래언덕을 '사옥(紗玉)재'라고 불렀습니다.
고수부님께서는 폐허가 된 성흥사터에 오성산 도장을 짓고 신정공사를 보시고, 증산상제님을 따라 태을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오성산 정상에는 옥녀봉이 있듯이, 고수부님의 기지이자 터입니다. 오성산 주변은 '성덕리'나 '서요동' '사옥재'의 지명에서도 보이듯이, 후천의 요임금이신 증산상제님의 성덕이 펼쳐칠 지운이 갈머있는 곳입니다. 증산상제님의 함자가 사옥(士玉)인데 오성산에 사옥재가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고수부님께서는 증산상제님의 성령을 오성산 도장으로 모셔오시어 성덕리와 서요동의 지운이 발음되도록 하셨습니다. 고수부님께서는 회문산의 오선위기 기운을 오성산으로 옮기어, 단주가 증산상제님의 법을 받들어 판밖에서 오성인과 일만이천 도통군자를 태을도로 성도시켜 출세하도록, 오성산에 바둑판과 바둑돌을 묻는 등 제반 신정공사를 보셨습니다. 고수부님께서는 오성산 도장이 헐릴 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고민환 성도에게 개인집을 짓도록 하여 "내집"이라고 말씀하시며 옥녀봉에서 집을 내려다 보신 바 있으며, 오성산 도장에 모신 증산상제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가, 나중에 때가 되면 용봉기를 꽂고 단주를 잘 맞아 들이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고수부님이 돌아가신 뒤에 제반사정으로 오성산 도장이 헐리고 그 자리에 성흥사가 복원되었으며, 성덕리 고민환 성도의 생가에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영정을 모시게 됐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장광(長廣) 팔십 리가 용화도장이라고 말씀하시며, 금산사를 중심으로한 전북 칠읍이 대시국(大時國)의 수도가 된다고 말씀하시며, 전주는 북문이 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천하만국의 제왕신(帝王神)과 이십사장(二十四將)은 금산사를 옹위하고, 이십팔장(二十八將)은 용화기지를 옹위하며, 삼만(三萬)의 철기신장(鐵騎神將)은 원평장상 대기지를 옹위하게 하여 급살병(急煞病)에 대비시키셨습니다. 증산상제님의 기지인 '모악산 구릿골 용화동'과 고수부님의 기지인 '오성산 성덕리 서요동'이 하나로 연결되어, 남조선배를 운항하여 급살병을 극복하고 세계일가의 중심지가 됩니다.
때가 되면 용화동 도장과 오성산 도장이 단주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기에, 용화동 지킴이 이정립 선생과 오성산 지킴이 고민환 성도에게 집을 잘 짓어 영정을 모시어 용봉기를 꽂고 단주를 맞아들여 하나가 되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금산과 용화동을 가르치시며 "이곳이 나의 기지라. 장차 꽃밭이 될 것이요. 이곳에 인성이 쌓이리라." 고 말씀하셨고, 또한 오성산에 보름달을 뜨게 하시며 남조선배 배말뚝 세 개를 박으셨습니다. 고수부님께서는 "십삼척 미륵불을 쌍으로 모시나니 '오성산'과 '용화동'에 건립하고 세우니라. 운장과 진묵은 좌우에 보필이니라. 오성산은 만국영사관 자리요, 서대문 팔십 리는 저기 있는 계화도요, 평사리는 나의 평상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의 관건은 단주를 통해 천지부모님의 마음과 이심전심되어, 마음 닦고 태을주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단주를 천지부모님의 적장자로 한 지심대도(知心大道)의 상생도술(相生道術)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고수부님께서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하여 단주가 증산상제님으로부터 천명을 받았음을 그렇게 강조하시고 지심기원하신 이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모악산 용화동도 판밖의 단주에 의해 태을도로 성도한 태을도인들이 들어가야 성사재인되고, 오성산 성덕리도 판밖의 단주에 의해 성도한 태을도인들이 들어가야 성사재인됩니다. 지금은 천하창생들이 태을도인으로 포태 재생신되는 태을궁의 운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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