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 인천법소 2016년 입추치성 도훈
“마음의 벽을 허물자”
양력 2016년 8월 7일 (음력 7월 5일)
오늘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인데요, 매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몸과 마음은 다소 지치지만 선선한 가을 기운이 시작된다 생각하니 더위가 가시는 듯한 느낌이네요. 오늘 인천법소 도훈 주제는 “마음의 벽을 허물자”란 주제로 제 생각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이사를 하고 짐 정리를 하다 보면 가구나 주방용품의 배치를 어떻게 할까 많은 고민을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옷은 안방이나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비치하고 음식과 요리에 관련된 물품이나 기구는 주방에 배치하게 되지요. 그러나 때로는 물품이나 가구의 배치가 비효율적이고 마음에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공간이 협소하거나 공간의 모습이 물품의 형태와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이죠. 이 경우 기존과 다르게 파격적으로 가구나 물품의 배치를 바꾸거나 집안의 공간을 구분하는 벽을 허물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물건들을 쉽게 배치할 수 있어요. 벽을 없애 버리면 휠씬 자유롭고 다양하게 가구나 물품들을 배치할 수 있어요.
집안의 공간은 기본적으로 벽으로 구분되어 존재하는데 이 구분된 공간에 가구나 물품들을 배치하려면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죠. 그러나 공간을 구분하는 벽을 없애면 자유로운 공간이 생겨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물건을 배치할 수 있죠. 우리의 마음에도 벽이 존재하거든요. 사물에 대한 편견이나 단편적인 시야, 이런 것들은 모두 마음의 벽이라 볼 수 있어요. 고정관념이나 미움, 증오 이런 것들도 모두 마음의 소통을 방해하고 마음의 흐름, 마음의 운행을 가로막는 벽이라 볼 수 있다고요. 여태까지 선천은 상극세상인데, 상극의 본질이 차별하고 구분하여 자신이나 자기집단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그런 사회였다고요.
마음속에 있는 상극의 마음, 상극의 벽을 허물면 넓고 넓은 마음의 공간이 생기는데, 그공간에 다양한 형태의 마음을 내어 써서 우리의 의지대로 현실을 바꾸고 개선시켜 나갈 수 있어요. 마음을 내어 쓰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는 거죠. 마음에 벽이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상생의 마음길이 열려 나갑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본질이 상생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생의 생명길이 마음에 나 있다는 거예요, 본래부터. 그래서 상극의 마음이 없어지면 그 자리에 자연히 상생의 마음길이 열려가는 거죠. 독기와 살기를 없애고 미움과 증오를 없애면 그 자리에는 생기와 화기가 들어차고 사랑과 용서의 마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거죠. 생명이란 항상 어떤 마음을 내어서 생각하고 행위 해야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이죠.
또 한편 보면 깨닫지 못한 무지, 알지 못하는 것도 커다란 마음의 벽이라 볼 수 있어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 밖의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거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실현할 수 없는 거죠. 1492년 콜럼부스가 유럽에서 서쪽으로 항해하여 북미 대륙을 발견한 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서쪽으로 항해하면 반드시 인도에 도착한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에, 콜럼부스가 미지의 항해를 하여 신대륙인 북미 대륙을 발견한 거죠. 따라서 아는 만큼 우리의 마음의 벽이 없어지고 마음의 지평이 넓어졌다 볼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힘들고 비천하고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사에 정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마음의 중심과 방향을 잘 잡아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아주 중요하죠.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무극의 마음이 바로 구분과 차별이 없어 벽이 없어진 마음을 의미하죠. 마음의 벽을 없애면 기본적으로 무궁무진한 마음의 조합이 가능하다고요. 그 조합할 수 있는 마음을 상생으로 내어 쓰면 완전한 상생의 마음이 되는 것이고, 완전한 상생의 마음이 행세하는 세상이 후천상생 세상이죠. 물질세계에서 우리가 몸은 비록 분리되어 존재하지만 마음의 벽이 없어져서 서로 소통하고 너와 나의 구분이 없어진다면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거죠. 비록 물질적인 측면에서 분리되어 있지만 마음이 합해지면 물질도 합해질 수 있는 거죠, 마음을 통해서.
우주가 모든 생명이 한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태을천상원군을 깨달아야 합니다. 태을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우주간의 모든 생명은 태을이라는 ‘생명의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꽃이고 열매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태을과 한마음이 되면 태을을 매개로 하여 우주의 모든 생명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천에는 그 육신의 벽에 갇혀 인간의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다고요. 그러나 육신을 가진 인간이 태을을 깨달아 태을과 통하면 인간이 모든 생명들과 마음을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선천 인간은 육신의 한계에 갇혀서 마음에도 벽이 존재했으나 태을을 깨달으면 육신의 한계로 인해 존재하는 마음의 없어진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상제님께서 스스로 깨달으신 도를 무극대로라 하신 거죠.
증산상제님께서 전해주신 무극대도는 태을에 대한 깨달음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극대도가 태을도가 되는 것이고 증산상제님은 태을을 깨달으신 무극대도인, 태을도인이 되는 거죠. 여하튼 태을을 깨달아야만 마음의 벽을 완전히 없앨 수 있어요. 증산신앙의 큰 기둥이 두 개라 볼 수 있는데 시천, 태을이 그것이죠. 태을은 진리, 이치, 생명의 존재원리라 표현할 수 있고요. 시천은 태을 즉 진리나 이치를 내어 쓰는 방법, 마음을 쓰는 방법이라 볼 수 있어요. 진리를 알아도 그것을 상극으로 내어 쓰면 궁극적으로는 인간사회, 우주자체가 망하고 죽어 없어지기 때문에 진리 자체를 상생으로 내어 쓰는 것도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우주간에 제일의 상생의 마음을 가진 존재는 천주님이죠. 천주님의 마음에 의하여 우주가 유지되고 영속되기 때문에 증산상제님의 마음이 곧 천지의 마음이고 최고의 상생의 마음인 거죠. 그 천주님의 마음을 배우고 깨달아야, 즉 천주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인간도 우주와 더불어 영생할 수 있다고요. 진리를 알고 생명의 존재원리를 알고 그것을 모든 생명에게 덕이 되는 마음으로 내어 쓰는 인간이 후천의 상생인간의 모습이라고요.
그런데 상제님 말씀에 의하면 시천, 태을의 마음이 이미 인간들의 마음에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태을은 무형의 천지부모님이고 증산상제님/고수부님은 유형의 천지 부모님이기 때문에 천지의 자식인 인간의 마음에는 이미 시천, 태을이 생명의 존재원리로 들어 있다는 거죠. 증산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출세하시어 시천 태을을 드러내서 깨달으시고 무극대도를 완성하셨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신 거라고요. 하느님이신 증산상제님께서 굳이 인간의 몸으로 출세하신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흰 눈을 뒤집어 쓴 설산 뒤에 가면 시원한 생명수 있다고 그곳에 갔다 온 사람이 얘기 합니다. 영생을 위해 생명수를 갈구하는 사람은 그 곳에 갔다 온 사람의 말을 믿고 따라서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서 설산을 넘어 생명수를 구하러 간다고요. 생명수를 찾은 그 사람은 행복한 영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죠. 그러나 독약에 오염된 물을 마시며 즐거워하며 생명수를 구하지 않는 사람, 또는 생명수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은 설산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예 생각하질 않아요. 설산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지 않는 사람은 이미 마음에 벽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벽이냐? 무지 때문에,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벽이 생긴 거예요. 자기 마음이 개관적으로 존재하는 진리를 보지 못하는 거예요. 무지하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거죠. 이런 차원에서 보면 깨닫지 못한 인간의 모든 마음에는 벽이 있다고 볼 수 있죠. 알지 못하면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면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지 않죠.
마음에 벽이 없어야 상생 세상이 되고 상생 세상이 되려면 모든 인류가 마음의 벽이 없이 소통하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 그 상생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시천, 태을을 밝히는 거라고요. 마음을 밝히고 마음을 깨닫는 것이기에 마음을 닦아야 하는 것이고요. 또 상제님께서 알려주신 진리의 근본인 태을을 깨달아야 하는 거라고요. 태을의 실체를 명확히 알아야 태을에 접근해서 태을을 깨달을 수 있다고요. 사사롭거나 헛된 해석으로 태을의 위격을 폄하거나 태을의 실체를 알지 못하면 태을을 깨달을 수가 없다고요.
나무 그늘의 평상을 스치는 바람에 언듯언듯 가을 기운이 묻어 나네요.
오늘 입추절을 맞아 만물은 무럭무럭 자라서 다가오는 결실을 알차게 준비하고 사람들은 더위에 많이 지쳐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제 스스로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처음의 그 마음이 더위에 무뎌지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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