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와 태을주의통

[스크랩] 남 욕할 시간에 사랑의 마음을 가꿔나가라

태을세상 2006. 7. 6. 18:11

 남의 눈속에 있는 티는 잘 보지만 자기 눈속에 있는 들보는 잘 못보는 법입니다. 누구든 남의 단점은 잘 보지만 자기의 단점을 알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기에 남을 욕하기는 쉬워도 자기를 뒤돌아 반성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은 항상 남을 비판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반성하라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간곡히 당부하였습니다.  

 

@ 너희가 판단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너희가 남을 판단하는 것만큼 너희도 판단을 받을 것이며, 남을 저울질하는 것만큼 너희도 저울질당할 것이다. 왜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빼내어라. 그러면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도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7장 1절 ~ 5절) 

 

 예수는 "네  이웃을 너의 하느님처럼 아끼고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는 제자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사랑을 실천하도록 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속에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가르침을 폈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남의 허물을 들추고 욕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허물을 감싸고 격려하고 보듬어 주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 사랑의 참의미를 알도록 행동할 것입니다. 진리가 성숙되고 신심이 깊어진다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보듬어 안아주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명하고 완성하러 온 예수는, 율법에 묶여 죽게 된 간음한 여인의 죄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었습니다. 

 

@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이 다시 성전으로 오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 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앉아 그들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한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선생님,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다. 그래도 그들이 계속해서 질문을 하자, 예수님은 일어나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자를 돌로 쳐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엇인가 계속 쓰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둘씩 모두 가 버리고 예수님과 거기에 서 있는 여자만 남았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그 여자에게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죄인 취급한 사람은 없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녀는 "주님,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그렇다면 나도 너를 죄인 취급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셨다.

 

 진리의 길을 가는 수행자는 세속의 법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마음을 잘 닦아 근본되는 진리의 자리에 서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은총을 전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가득 넘치게 해야 합니다. 인류의 빛나는 혼들이었던 유불선의 성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세속법을 넘어서서, 사랑과 용서 그리고 화합과 포용의 진리법을 실천했습니다. 진리는 사랑이자 용서요 화합이자 포용이기 때문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지극한 사랑속에 신기로운 진리가 들어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어느날 경석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은 임시 방편으로 융화하는 척 하지 마라. 방편으로 융화함은 무장하고 전쟁을 쉬는 것과 같으니라. 모두들 사랑으로써 동물의 성정을 뛰어 넘지 못한다면 참된 진리의 사랑이 아니니라. 사랑이라 하는 것은 고된 것이니, 가족을 사랑함에도 그 많은 괴로움을 참아야 되고 천하를 사랑함에 있어서도 그 많은 괴로움을 참은 연후에 선명히 신기로운 진리가 드러나느니라." 하시었다 하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0)

 

 남의 눈에 티만 보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나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고 내 마음을 닦아, 남의 허물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힘을 기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욕할 시간에 나의 허물부터 닦아 하느님의 사랑을 내 마음에 담습니다. 나의 허물을 닦아야, 하느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 전할 수 있습니다.

 

 증산상제님이 보신 천지공사는,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을 최종완성하도록 하신 인간사업입니다. 아무리 허물이 많고 죄를 지은 사람일 지라도 자신의 몸보다 더 아끼시며 하느님의 사랑으로써 보듬어 안아 주셨습니다.

 

@ 고창 사람 김재인이 상제님을 뵈올 때마다 항상 지성으로 공대하더니, 기유(1909)년 봄에 경상도에 가서 무슨 일로 죄를 짓고 대구 감옥에 갇혔더니 삼년 형을 마치고 신해(1911)년 여름에 출옥되었더라. 

 옥에서 나왔으나 갈 바를 모르고 탄식하며 있다가 무심히 고개를 들어보매 자기 앞에 상제님께서 계시거늘, 너무 반가워 슬피우니 위로하여 가라사대 "마음을 잘 지키면 앞 일이 열리리라." 훈계하신후 "따르라." 이르시거늘, 따라가니 의복을 사서 갈아 입히시고 배부르게 밥을 사 주시며 여비까지 주시면서 "집으로 속히 가라." 하시더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363) 

 

 천지부모님은 천하창생을 자신의 몸처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천하창생의 죄를 용서하고 포용하여 화합시켜서, 새삶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천지부모님의 참된 자식이 되려면, 천지부모님이 천하창생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용서 그리고 포용과 화합을 배워야 합니다. 천지부모님을 닮은 사람이 되려면, 남의 눈 속에 들어있는 티를 보지 말고 자신의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남을 욕하고 비판할 시간이 있으면, 자신을 뒤돌아 허물 닦기에 힘써 사랑의 마음을 길러 나가야 합니다. 우리 태을도인들은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미움과 증오로 가득찬 사회의 혼미함을 밝혀 천하를 사랑하는 신앙의 모범을 보여나가야 하겠습니다.  

 

@ 어느날은 종도들 간에 우연히 사회의 혼미함을 탓할세, 그 말을 들으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의 사회를 먼저 개조하면 이 사회가 그와 같이 될 것이니, 너희들 스스로 돌아보아 너희 사회부터 개조하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로부터 세계를 설단(舌端)으로써 정하니(혀로 부르짖는 대로 되도록 하심), 부르짖으면 응할 것이요 찾으면 줄 것이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73)    

출처 : 용봉서신(龍鳳書信)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