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와 태을주의통

[스크랩] 십오건곤의 황극신

태을세상 2009. 10. 22. 22:04

 건(乾)은 10수(十數)요 곤(坤)은 5수(五數)입니다. 10수는 무극수(無極數)요 5수는 황극수(皇極數)입니다. 10수를 증산상제님이 갖고 계시고 5수는 고수부님이 갖고 계십니다. 고수부님께서는 '십오건곤(十五乾坤) 만화통제(萬化統制) 동서남북(東西南北) 유일집중(唯一執中)'이라고 십오건곤주(十五乾坤呪)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천지부모님이신 십오건곤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삼계를 주재하시는 것입니다. 황극신은 건10수와 일체인 곤5수에 응기하는 것이기에 십오건곤의 황극신이요, 황극의 뿌리는 고수부님이시기에 황극신은 고수부님으로부터 나옵니다. 황극신이 응기해야 천자가 되므로, 천자는 고수부님 치마 밑에서 나오게 됩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황극신이 광서제에게 응기되어 있다고 밝혀주시며, 청국 광서제로부터 황극신을 걷으셨습니다.

 

@ 무신(1908)년 겨울 O월 O일 O시에 대선생이 와룡에 계시더니, 천지대신문을 여시고 천지대공사를 행하시니라. 칙령을 신명에게 내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난국을 바로잡아 장차 만세의 도정을 세우려면 황극신을 옮겨와야 가능하리라. 황극신이 동쪽으로 올 수 있는 운수는 청주 만동묘의 창건으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 지금 황극신이 광서제에 응기하여 있나니, 황극신을 불러오리라." 제자들이 명을 받아 매일 밤 시천주를 읽고 대선생께서 친히 법을 행하시니라.

  하루는 대선생께서 운상행사를 하시더니, 무릎을 치며 큰 소리로 말씀하시거늘 "이제 운명 하노라." 조금 지나 대선생께서 이르시기를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 어로'라 하나니, 어로는 군왕의 행차라, 이제 황극신이 넘어오느니라." 이 때 대선생이 윗쪽에 단정하게 앉으시고, 여러 제자들이 명을 받들어 공손하게 대선생 앞에 열지어 앉게 하여, 백의군왕백의장상이 조칙을 받드는 공사를 행하시니, 위의가 엄숙하니라.

 제자가 여쭙기를 "지금 황극신이 명을 받들어 동쪽으로 오거늘 광서제가 붕어하니, 그 이유가 무엇이나이까." 대선생께서 말씀하시길 "청국의 제왕운수가 광서제에 이르러 끝나느니라." 제자가 여쭙기를 "황극신이 동쪽으로 오면 이 땅이 천하의 대중화가 되오니, 청은 장차 어떻게 되나이까." 대선생께서 이르시길 "내가 거하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가 되나니, 청은 장차 여러 영토로 나뉠 것이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p496-498) 

 

 증산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의해 황극신이 조선으로 옮겨오면서,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중국의 대중화 천자국 시대는 끝나게 되고, 조선의 대중화 천자국 시대가 개막되게 됩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단주(丹朱)를 내세워 조선을 명실상부한 천자국으로 만들기 위해, 조선을 36년동안 일본에 맡겼다가 미국으로 하여금 해방되도록 하셨습니다. 만동묘에 응기됐던 황극신은, 황극수를 갖고 계신 고수부님의 만동묘 치성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발음되기 시작합니다.

 

@ 임자(1912)년 칠월 초사흗날 천후 경석을 데리고 걸어서 청주 만동묘에 이르사 구월 초이튿날까지 날마다 치성을 행하시더니, 하루는 경석이 냇가 돌위에 앉어서 주문을 외우다가 낙상하여 중태에 이르러 여러날 동안 인사를 알지 못하고 누워 않거늘, 천후 주먹으로 경석의 등을 치시며 꾸짖어 가라사대 "일을 다 보았는데 너는 어찌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느냐." 하시니 경석이 곧 낫는지라. 이 때에 여비가 떨어졌거늘 경석이 먼저 돌아와서 여비를 주선하여 가지고 가서 천후를 모셔 오니라. (천후신정기 p26)

 

 고수부님께서는 증산상제님이 차경석에게 헛천자 도수를 정하신대로, 차경석에게 일시적으로 황극신과 24장의 기운을 붙이시어, 일본에 대항하여 천자행세를 하며 포정(布政)운수를 열어가도록 하셨습니다. 황극신이 응기하면 천자인 제왕이 됩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황극신을 청주 만동묘에 응기시켰다가, 만동묘가 쑥대밭이 되면 금산사로 옮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대원사를 출발하시려 하실 세, 천하만국 제왕신과 이십사 장들을 부르사 만동묘(萬東廟)에 응신을 시키신 후 가라사대 "이 다음에 만동묘가 쑥대밭이 될 것이요, 그 때에는 만국제왕신과 이십사 장들을 금산사(金山寺)로 옮겨 호위하게 하리니, 이 신명들을 잘 대접하라. 그러나 지금은 당분간 만동묘에 응신시킬 수 밖에 없느니라." 하시더라.

 

주) 만동묘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 있는 바, 우암 송시열의 유지에 따라 그의 제자 수암 권상하가 이조 숙종 삼십 년에 건립하여,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원병해 준 명나라의 은의를 기리며 명나라 신종과 말제 의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는 묘당인 바, 만동묘를 향사관리하는 화양서원이 고종 칠년에 대원군에 의해 철거되고 만동묘만 있더니, 그후 신사년(단군기원 4274년, 서기 1941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던 해 음력 4월 일본인들이 만동묘에 불을 지르고 묘정비를 뽑아다 멀리 파묻은 것을 해방 후 찾어다 그 자리에 세웠으나, 일본인들이 글자를 정으로 쪼아버렸으니 전면에 대자 5자와 소자 339자 우측면에 215자와 좌측면에 290자 또 후면에 81자를 쪼아없애 총 930자를 전혀 알아볼 수 없게 하였드라. 이로써 미루어 볼 진데, 오늘날에는 천하만국의 제왕신과 이십사 장들이 금산사(金山寺) 미륵불(彌勒佛)을 호위하고 있음을 믿겠더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p23-24)

 

 천지부모님께서는 진리의 적장자인 단주에게 십오건곤의 황극신이 응기하도록, 단주수명(丹朱受命)의 천지해원굿을 하셨습니다.

 

@ 무신년(1908) 대흥리에서 공사를 보실새 경석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오늘의 공사에는 유생(儒生)들을 불러 모으라." 하시거늘, 명하신 대로 유생들을 불러 모으니 경석의 집 이칸장방 큰사랑에 가득 모였더라.

 이 때에 마침 걸군패가 동내에 들어와서 굿을 치고 가니 증산상제께서 가라사대 "수부 나오라고 해라." 하시거늘, 경석이 안에 전하여 고후비께서 사랑방에 나오시더라. 고후비 나오심을 보시고 상제께서 친히 장고를 둘러매고 고후비께 가라사대 "우리 굿 한석 하세." 하시며 장고를 두둥둥 울리실 세, 후비님께서 춤을 우쭐우쭐 추시며 노래 부르시니 그 노래가 이러하더라. 

 

" 세상 나온 굿 한석에

 세상해원 다 끌으니

 세상해원 다 된다네" 하고 부르시니

 

 상제께서 칭찬하시며 장고를 벗어서 고후비님을 주시고 가라사대 "그대가 굿 한석 하였으니 나도 또한 굿 한석 하리라." 하시며, 고후비께 장고를 둘러매게 하시고 "치라." 하시니 고후비 장고를 두둥둥 울리실세, 상제께서 천음을 가다듬어 큰 소리로 고창대성하시어 노래하시니 이러하니라.

 

 "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단주를 내제쳐 놓고

 세상해원 다 끌으니

 세계만류가 해원이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것이 천지굿이니

나는 천하일등재인(天下一等才人)이요

너는 천하일등무당(天下一等巫堂)이라

이당 저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 가서 빌어야 살리라" 하시고 인하여

고후비님께 무당도수(巫堂度數)를 정하시니라. (선도신정경 pp31-33)

 

 금산사는 십오건곤의 황극신 터요, 천하만국의 제왕신 터입니다. 모악산 금산사는 대시국(大時國) 천자인 단주가 천지부모님을 모시고 '십오건곤 만화통제 동서남북 유일집중'하는 세계일가통일정권의 중심지입니다.

출처 : 용봉서신(龍鳳書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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