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치성 태을도인 도훈
"일상에서 능소능대하기"
2018. 5. 5 (음 3. 20)
새달입니다. 봄이 완연하다 생각했는데, 여름으로 들어가는 입하를 맞았습니다. 어쩐지 요 며칠, 봄 햇살이 따갑다 했습니다. 매번 절기를 맞을 때마다 참으로 어김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절기와 자연을 지켜보며, 제 옆으로 흐르는 시간에 대해서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되는 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오늘은 요즘 제 일상에서 느꼈던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지금 제가 나가는 학교는 한 2개월 20일 정도 기간제 교사로 나가는 건데, 그 학교에 텃밭이 있어, 5학년 8개 학급 실과를 가르치게 된 제가 자연스럽게 텃밭을 절반 정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각 반별로 키우고 싶은 작물 목록을 받아 씨앗과 모종을 담당부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구입해서, 시기별로 실과시간이나 중간놀이시간, 그것도 안 되면 방과 후에 틈틈이 아이들과 심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실과 교과를 세 번 정도 했었지만, 톱과 망치를 가지고 책꽂이를 만들거나 여러 전자부품들을 가지고 전자회로 만들기, 그리고 십자수 놓기를 하거나, 더러 식물 단원이 있어도 각 교실에서 무순을 키우거나 긴 직사각형 화분에 상추나 방울토마토를 키우게 하는 거라, 이번처럼 학교에 텃밭이 있고 봄에 실과 교과를 맡게 되어 본격적이고 다양한 작물을 다뤄보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평소에 호생지덕이 부족한 사람이라 생명을 맡아 기른다는 것에 굉장히 부담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상황을 맞닥뜨렸으니 해볼 수밖에요.
상추씨앗, 당근씨앗도 이번에 처음 구경했습니다. 되게 작았습니다. 감자 심기도 이론으론 알고 있었지만 땅에 직접 심어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제 꿈이 한적한 바닷가에 조그만 집 짓고 아침이면 종장님이 포구에 내려가 고기잡이 하고 들어온 배에서 생선 한두 마리 사들고 오면 소금 설설 뿌려 마당 한켠에서 석쇠에다 구워 텃밭 상추 뜯어다 쌈싸 먹고, 또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집이라 오랜만에 지인이 찾아오면 너무 반가워 밤새워 차 마시며 도담 나누는 건데요. 그 마당 텃밭 규모를 가지고 종장님은 '당신은 5평도 힘들다'면서 3평, 2평, 1평, 자꾸 줄어드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합니다. 그래서 '이것도 인연이다. 이참에 텃밭 가꾸기를 좀 배워보자.' 하며 미리 인터넷으로 파종시기와 모종시기도 살펴보고 심는 방법도 알아보고 했지만, 결국 고구마 순을 심는데 북을 해주지 않는 실수를 저질러서, 학교 주무관님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제 3학년 육상대회를 하면서 제 담당 도덕시간이 3시간 비길래, 작정하고서 다음 교과수업시간 직전까지 텃밭에서 거칠게 만져진 고구마 북돋우기를 다시 하고, 위치가 잘못된 모종들을 옮겨 심는 작업을 땡볕아래서 했습니다. 힘들고 더웠지만, 그새 싹을 내밀어 잎들이 제법 많아진 감자랑, 삐죽삐죽 고개 내민 당근 싹이랑, 올망졸망 모여 자라는 상추싹이랑, 여러 생명들이 텃밭에서 자리잡아가는 모습들이 신기하고 예뻤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다음 주 새로 발령받아 오실 선생님에 대한 얘기가 설왕설래 하더군요. 학교생활에서 문제가 좀 있어 해직됐다가 재판에서 다 나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내밀어가지고 승소해 복직하는 선생님인데, 하필 발령순서가 지금 제가 나가는 학교 차례였다는 겁니다. 교과실에 자리를 마련해주면 교과선생님들에게도 피해가 갈 거라, 학교 측에서 어떻게 이 분을 처리해야 할지 잔뜩 고민 중이더군요. 이제는 지금 교과실에 있는 제 일도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심란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런 사람이 정말 교과실로 오면 어떡하나. 학교에 오면 어떡하나. 특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아이들하고는 어떻게 되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은 그 선생님 역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스스로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지요. 그 분이 그런 상황까지 만들어졌을 적에는 이전에 그 선생님께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일련의 상황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 곳에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이 학교와 인연이 아직 남아서 또 다른 기간제 교사를 하게 된다면 모를까, 이 선생님과 있는 시간이 정말 짧겠지만, 누군가는 그 선생님을 품어줘야 하고 그 일을 잠깐이라도 제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전 큰 애가 고등학교때 친구였고 지금도 교류하고 있는 동네친구를 밖에서 만나 얘기하다 책을 한 권 선물한다고 집에 데리고 왔더군요. 현관에 서있는 아이에게 제가 먼저 인사를 붙여도 대답만 하고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한번 더 말을 붙여봤는데, 역시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않더군요. 미소를 짓는 그 표정도 왠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아, 못 보는 거구나. 뭔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큰아이가 거실 상위에 있던 달달한 귤을 몇 개 집어 선물할 책이 든 종이가방 안에 넣고는 그 친구를 집에까지 바래다주고 오겠다고 함께 나갔습니다. 집에 들어온 큰애에게 "지금 그 친구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전에 길에서 마주쳤을 때에는 분명히 마주보고 인사도 했었는데, 아까는 일부러 인사를 시켜도 사람을 바로 쳐다보지를 못하더라. 뭔가 걱정된다." 했더니 안 그래도 얘기하는 데 전과 많이 달라서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힘들었다는 겁니다. 이렇게도 말 시켜보고 저렇게도 말시키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큰애도 밖에서 그 직전 일정에서 선물 받은 케익을 그 친구한테 줘야할 것 같아서 "너 먹어. 집에 가서 엄마랑 먹어." 하면서 줬다는 겁니다. 헤어지기 전에 책을 한 권 선물하겠다 했더니, 자기도 우리집에 잠깐 들어가보고 싶다고 했답니다. 큰애 얘기로는 아마도 대학 들어갈 무렵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우리아버지한테서 대신 느껴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가 그 아이한테 너무 힘들구나.'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짠했습니다.
얼마전 종장님을 통해서 알게 된 소다 가이찌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소다 가이찌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려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습니다. 이 분이 젊은 시절 여기저기를 방랑하며 다녔더라고요. 만주도 가고, 중국도 가고, 그리고 대만까지 갔다가 겨울에 만취해서 노상에 쓰러져 얼어죽게 생긴 것을, 일면식도 없는 조선사람이 숨이 붙어있는 걸 확인하고 여관에 데려다가 먹고 잘 수 있게 여관비를 치러줘서 살아났다는 겁니다. 그로부터 소다 가이찌란 분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일찍이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의 소다 가이찌는 남들의 눈으로 보면 결국 부랑자였습니다. 당시의 그분에겐 아무런 희망도 계획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 없는 한 조선사람의 손길이 그분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조선을 위해 살고 싶다는 본인의 소망대로 결국 조선으로 들어왔고, 일본어 선생을 하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는 마침내 ‘조선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부인을 만나, 둘이서 천여 명이 넘는 우리 조선의 고아들을 정성껏 거두었습니다. 조선인들의 독립운동도 도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지금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혀계십니다.
저는 아직 수신도 다 못했고 제가도 아직 다 못했습니다. 그런데 천하사를 하는 태을도인입니다. 고등학교때 제 꿈은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교대 다닐 때에도, 또 교대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제 꿈은 교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임용발령 받아나간 첫 학교에서 미련없이 교직을 떠났습니다. 제 꿈을 찾아서 말이지요. 이렇듯 일찌감치 떠났던 교직인데, 그 교직으로 지금 경제적 도움도 받고 사람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교사자격증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이는 구나. 아, 이 세상에 무의미한 건 하나도 없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모든 인연과 상황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시고 물샐 틈 없이 짜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샐 틈 없이 짜놓은 이 천지공사가 도수에 돌아닿는 대로 틀림없이 새 기틀이 열리려면, 천지공사에 의해 전개되는 상황과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또한 우연일 수가 없는 거지요. 우리가 현재 있는 이 자리, 필연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는 이 천하사는 상제님의 말씀대로 '마음은 성인의 바탕으로 닦고, 일은 영웅의 도략을 취'해서 하는 것입니다. 지난 월례치성때 종장님께서 들려주신 고수부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한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습니다. 그런 결기(決氣)로써 우리는 천하사에 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없이 자잘한 상황들, 이것 역시 우리가 챙겨야 합니다.
다이아몬드는 원석 그 자체도 귀한 것이지만, 결국 세공사의 손길을 통해서 가공이 되어야 비로소 그 진가를 온전히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를 세공할 때 몇 면을 깎았는지, 그 깎은 면의 수가 많을수록 다이아몬드는 더 찬란하게 빛을 냅니다. 손길이 많이 갈수록 다이아몬드의 값어치가 더 올라간다는 뜻이지요. 사람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육체로서 죄악의 덩이라 하지 말라. 저 목석이 흙구렁에 빠졌어도 씻고 닦으면 깨끗해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수부님께서도 "세상사람이 죄없는 자가 없어 모두 저의 죄에 제가 죽게 되었나니, 내가 이제 천하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선천에서 죄를 먹지 않고 산 사람은 없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죄인이지요. 그런 죄인들을 구하고자 상제님 고수부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오신 상제님 고수부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놓으신 길을 뒤따르고자 우리 또한 천하사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아직도 수신을 못하고 아직도 제가가 안 되어있지만, 제 옆에 다가온 이 인연들, 나이를 먹어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많아지는 이 인연들을, 이제 세세하게 제 힘닿는 데까지 하나하나 챙겨가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다들 돌아보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인연들입니다. 이름 모를 조선인의 그 사랑이 소다 가이찌란 사람을 고귀한 생을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후천세상, 굉장히 큰 일입니다. 오만 년을 끌어온 세상을 문 닫고 새로운 오만 년을 열고자 하는 일, 굉장히 큰일이지요. 당연히 영웅의 도략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작은 것부터, 당장 내 주변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거지요. 지금 내가 처해있는 이 시공간을 상생으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천하사, 의통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사랑을 필요로 하고 또 그 사랑을 먹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났고, 부모님의 사랑으로 길러졌습니다. 또 결혼을 해서 종장님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또 제 아이들이 제게 주는 사랑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한테 제대로 사랑을 다 주지 못해서 반성하면서 노력하고 있지만요. 사랑을 주어야 하지만, 사랑을 주어야 하는 그 대상에게서 저 또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텃밭에 있는 그 작은 초록빛 생명들, 그리고 기간이 정해져있지만 그래도 저와 인연 지어져있는 학교아이들, 그리고 새로 오신다는 선생님과 다른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큰애의 친구. 돌아보면 다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사랑으로 이 인연들을 품어 안아야지요. 안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나 자신도 사랑하려고 합니다. 나를 토닥이면서 “애썼다. 노력했구나.”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해주면서, 내 주변에 애써서 살고 있는 힘들어하는 사람도 또한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애썼다. 넌 지금 열심히 살고 있는 거야. 나도 옆에서 항상 지켜보고 응원해줄게.”하고 말이지요.
아까 종장님께서 입하치성 봉독성언으로, 현무경에 나오는 「대병출어무도(大病出於無道) 소병출어무도(小病出於無道) 득기유도즉(得其有道則) 대병물약자효(大病勿藥自效) 소병물약자효(小病勿藥自效) -큰 병도 도가 없는데서 생기고, 작은 병도 도가 없는데서 생긴다. 그러므로 도를 얻으면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저절로 낫는다.」라는 구절을 고르셨는데요. 상제님 진리를 얻었으니, 급살병이라고 하는 큰 병도, 제 주변의 자잘한 아픔들도, 다 진리의 사랑으로 끌어안고자 합니다. 저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마지막으로 제 생일을 위해 어젯밤 늦게 정말 사랑으로 가득찬 편지를 써서, 오늘아침 화사한 꽃다발과 함께 건네주신 종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상입니다.
'태을도인 도훈(道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8년 진해법소 춘분치성 도훈 : 대인을 공부하는 태을도인 (0) | 2018.05.09 |
---|---|
[스크랩] 2018년 진해법소 경칩치성 도훈 : 상제님 일은 여동빈의 일과 같으니라. (0) | 2018.05.09 |
[스크랩] 수원법소 2018년 청명도훈 “개인의 영광됨이 곧 세상의 광화로 되느니라” (0) | 2018.04.26 |
[스크랩] 수원법소 2018년 곡우치성 도훈 “선의 선순환을 만들어가야” (0) | 2018.04.26 |
[스크랩] 2018년 울산법소 곡우치성 도훈: 물처럼 낮은 도인이 되자 (0) | 2018.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