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정유년 태을도 입춘치성 도훈
“은혜와 보은의 실천에 빨라야”
2017.2.4 (음력 1.8)
오늘 2017년 입춘치성(立春致誠)을 맞이해서 태을도인 여러분의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예전에 드물지 않았던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아침에 학교를 갔는데, 아이 어머니가 아들이 그 날 필요한 학용품을 빠뜨리고 간 걸 알고는 일하다 말고 헐레벌떡 그걸 가지고서 학교를 갔더랍니다. 아들 교실을 찾아서 학용품을 전해 주고 돌아서는 순간에 제 자리로 가던 아들이 친구 질문에 대답하는 말소리가 들리는데, 순간 가슴이 무너지더랍니다.
그 아들이 어머니한테 학용품을 건네받아 자리로 가는데, 옆의 친구가 학용품 갖다준 이가 누구냐고 물어보더래요. 그런데 아들 대답이, 우리집 식모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혹 아들이 빠뜨리고 간 학용품이 없어 곤란할까봐, 그 어머니가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일하던 차림새 그대로 달려갔었나 봐요. 어머니의 허름한 옷차림이 아들은 창피했나 봅니다. 그래서 친구들 보기에 부끄럽기도 해서 식모라고 둘러대었나 봅니다. 그 아들은 순간적으로 자기의 창피함과 부끄러움 때문에 그렇게 얘기했지만, 아들을 애지중지 사랑해 헐레벌떡 달려간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눈물이 왈칵 나올 수밖에 없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은혜를 받은 사람들한테, 자기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부모 밑에서 같이 자란 형제, 또 아니면 자기가 학교에 들어가서 배웠던 학교 선생님, 또는 직장생활 하면서 자기 상사나 동료, 또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 민족과 국가 등, 자기를 위해 조건 없이 헌신적으로 도움을 주고 뒷받침을 해준 분들과 존재의 그 큰 은혜를, 순간적인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서나 그 당시의 자신의 위신을 생각해서, 그 은혜를 저버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자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불역락호(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人不知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나를 몰라주어도 성내지 않으면 그 또한 군자가 아니한가.
이 구절에서도 가장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입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배운다는 것(學)은 이론을 배우는 것이고 지식을 배우는 것이고 논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습(習)이라고 하는 것은 실천하는 것이고 행동하는 것이고 현실로 옮기는 것입니다. 학(學)은 이론이고, 그 이론을 실천하는 것을 습(習)이라고 합니다. 논어의 첫마디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이렇게 시작한다는 것은, 배우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 아는 것이 이해하는 것이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그 지식은 그 이론은 그 논리는 무용지물이란 말입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말입니다. 단지 지적인 유희를 위한 공부요, 지적인 자만을 위한 공부요, 이론적인 교만을 위한 공부요, 지식적인 자랑을 위한 배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천지부모이신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천존시대와 지존시대를 마감하고 인존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인존시대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배우고 익혀서 실천을 해야지 열리는 것입니다. 상제님 고수부님께서는 이론도 가르쳐 주셨고, 또 실천적인 모범도 보여 주셨습니다. 행동의 규범도 말씀해 주시고 행동의 방법도 가르쳐 주시면서, 당신들이 스스로 모범을 보여서 행동하셨습니다. 우리가 성언 행적을 통해서 알고 있는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들은 전부 학이시습지한 결과물들입니다.
학(學)과 습(習)이 항상 명실상부하게, 지행합일하게, 상제님 고수부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배우는 것도 확실하게 배우고, 실천하는 것도 확실하게 하라. 명분에만 그치지 말고 실질을 숭상해야 된다. 지식에 머물지만 말고 행동을 해야 된다.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말을 듣고 실천하지 않으면 바위에 물주기와 같으니라.’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아무리 아름다운 말이라도 실행치 않으면 바위에 물주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바위에 물을 주면 물이 흘러내리게 됩니다. 바위 속에 물이 스며들지 않습니다. 인존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서 실천하지 않으면, 바위에 물주는 것같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바뀌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은혜를 입습니다. 부모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 사회의 은혜, 국가의 은혜, 민족의 은혜, 이런 숱한 은혜와 사랑 속에서 내 생명이 나왔고, 내 생명이 유지가 되고, 내 이성이 트이고, 내 영성이 트이고, 내 감성이 순화되고, 내 말과 글과 행실이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선천 상극세상은 상극지리가 지배했기 때문에 독기와 살기가 발생해서,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받은 감사함 내가 받은 고마움에 대한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또 올바르게 갚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은인을 원수로 갚고, 은혜를 복수로 갚고, 감사함을 원망으로 갚고, 고마움을 투쟁으로 갚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독기와 살기를 가지면, 고마움과 감사함과 은혜로움과 보살핌 받은 것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상생의 인존세상은 은혜를 아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은혜를 제대로 알아야, 은혜에 대한 보답을 올바로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부모님에 대한 은혜를 제대로 모르는데, 스승과 사회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은혜를 제대로 모르는데, 어떻게 은혜를 갚고 보은하는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또 알아도 사무치게 알아야 그 사무치게 알은 앎을 가지고 실천에 옮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앎에 머물지 말고 이해에 머물지 말고 생각에 머물지 말고 실천을 해야지, 상생의 인존세상이 한 단계 한 단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여러 가지 가르침들, 고수부님께서 말씀하신 여러 가지 가르침들은, 단지 이해와 앎에서 머무르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천에 빠르지 않으면 은혜와 보은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요무대’를 보면, 많이 나오는 노래 중의 하나가 ‘불효자는 웁니다’ 라는 노래입니다. 왜 사람들은 ‘불효자는 웁니다’ 라는 노래에 그렇게 많이 감동하고 그렇게 많이 감격하는 걸까요? 부모님 돌아가신 다음에, 부모님의 은혜를 부모님의 감사함을 부모님의 고마움을 제대로 살아생전에 갚지 못한 한이 남고 죄송함이 남아, 가슴을 치면서 통곡해도 부모님은 안 돌아오시는데, 이제 겨우 부모님의 은혜를 고마움을 감사함을 실천하려고 해도 그 부모님이 안 계시니, 불효자는 울 수밖에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상생이라는 것은 보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갚는 걸 통해서 상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은(報恩) 상생(相生) 해원(解寃)입니다.
보은을 통해서 상생을 해야 원망이 남지 않는 해원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에 머무르고 머릿속에만 머무르고 실천을 머뭇거리면, 그것은 진정한 상생이 아니고 진정한 해원이 아닙니다.
상제님께서 “‘일반지덕(一飯之德)을 필보(必報)’라는 말이 있으나, 나는 ‘반반지은(半飯之恩)도 필보(必報)’라 하느니라.” 또 상제님께서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하면 덕이 되어 복을 이루니라.” 또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돌로써 치면 돌이요 떡으로 치면 떡이라’ 할 것이라. 그러나 너희들은 돌로 치는 자에게 돌로 하지 말고 떡으로써 하라.” 가르치셨습니다. 상제님의 ‘반반지은도 필보하라.’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 ‘돌로 치는 자에게 돌로 하지 말고 떡으로써 하라.’ 이런 말씀들은, 그 말씀을 각골명심해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독기와 살기가 풀어 없어지지 않으면, 일반지덕(一飯之德)은 커녕 반반지은(半飯之恩)도 필보(必報)할 수 없습니다. 또한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 할 수도 없습니다. 돌로 치는 사람한테 떡으로 할 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은혜로움과 감사함과 고마움을 느껴서 보은하는 생활 은혜를 갚는 생활 그런 생활을 했을 때, 돌로 치는 사람한테 떡으로써 하고, 원수를 풀어 은인 같이 사랑할 수 있고, 또 반반지은도 필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온전히 되려면, 감사와 은혜와 고마움을 내가 깨닫고 그걸 실천해야 됩니다. 보은을 생활화해야, 은혜를 갚는 것을 생활화해야,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독기와 살기를 가지면, 아무리 내게 은혜로운 사람도, 아무리 고마운 사람도, 감사한 사람도, 은혜와 고마움과 감사함을 내가 느끼고 또 보은하는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어떡하든 단점을 찾고 약점을 잡고 잘못을 찾아서, 그 사람을 깎아내리고 그 사람을 추락시키고 그 사람 입장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독기와 살기를 풀어 없애서 생기와 화기로 가득 차야, 원수일지라도 악인일지라도, 상제님의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같이, 그 악인 한테서도 그 원수에게서도 은혜로운 모습, 장점 강점, 좋은 점을 발굴해서, 보은하는 생활 은혜로운 생활 감사하는 생활 고마운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은, 전부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돌로 치는 자에게 떡으로써 하라’고 하는 용서와 사랑의 말씀입니다. ‘반반지은도 필보하라’는 보은의 생활화 말씀입니다.
증산신앙을 하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이, 과연 얼마만큼 자기 부모님한테나, 자기 배우자한테나, 자기 형제한테나, 자기가 속해 있는 직장 관계자한테나, 나라와 민족한테나,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지,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지, 은혜로움을 느끼고 있는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얼마만큼 실천에 옮기고 있는지, 행동에 옮기고 있는지,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얻고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을 듣고 실행치 않으면 바위에 물주기와 같으니라.’ 증산상제님의 말씀입니다. 상생의 인존시대는, 고마움과 감사함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행하지 않으면, 은혜와 보은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상생의 인존시대가 열리지 않습니다. 상극체질을 상생체질로 바꾼다고 하는 것은, 복수와 원망, 불평과 악담, 증오와 저주의 생활에서, 사랑과 용서, 은혜와 고마움, 감사함과 죄송스러운 생활로 바꾸어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입춘치성을 맞이해서,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을 배우고 익힌 것을 얼마나 실천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인격과 도격이 성장하고 성숙해나가는 것은, 은혜와 보은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해나가는데 달려 있습니다. 우리 태을도인들이 천지부모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배우고 깨치고 익혀서, 은혜와 보은을 실천하는데 빨라야 되겠다, 하는 말씀을 드리면서 입춘절 도훈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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