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인 도훈(道訓)

[스크랩] 태을도 수원법소 입춘치성 도훈 "유비무환 무비유환"

태을세상 2016. 2. 5. 11:09

태을도 수원법소 입춘치성 도훈 "유비무환 무비유환"

 201624(음력 1226)


 작년 입춘에 입춘시라는 제목으로 까페에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나는데 어느새 다시 입춘입니다. 시간의 흐름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절기마다 치성을 하다보니 시간을 마디지어 보게 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해가 바뀌는 것으로 나이를 느끼듯 항상 어제가 그제같은 시간의 흐름이지만 마디를 지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반성하고 새롭게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로 다가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도훈의 제목을 "유비무환 무비유환"으로 정해 봤습니다. 


 상제님께서 박공우 성도를 만나기 전에 원평에서 길을 나서시며 하신 말씀인데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 증산상제님께서 일진회가 일어난 뒤로 삿갓을 쓰시다가 이날부터 의관을 갖추시고 경석을 데리고 물방앗집을 떠나 정읍으로 가실 때, 원평에 이르사 군중을 향하여 가라사대 " 길은 '남조선 뱃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시고 술을 나누어 주시며 또 가라사대 "이 길은 성인 다섯을 낳는 길이로다." 하시니 모든 사람은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 다시 떠나시며 가라사대 "대진(大陣)은 하루 삼십 리씩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노정을 헤아려서 고부 솔안에 이르러 친구 박공우의 집으로 뫼시니, 공우도 또한 동학신도로서 마침 사십구 일동안 기도하는 때더라. (대순전경 P110-111)


 차경석 성도가 정읍방향으로 30리만 간다고 생각해 묵을 곳을 생각해 보니 친구인 박공우 성도가 생각이 났었든지 그리로 상제님을 안내하면서 박공우 성도를 만나시게 됩니다. 그리고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이 나온다"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30리를 가서 심법이 나와 친구하자 하실 정도로 통하는 박공우 성도를 만난거지요. 


 대진(大陣)은 큰 군대를 말하는데 문맥상 통정신되는 사람들을 모아 모아서 후천 상생의 인존시대를 열어가는 상제님의 일을 '남조선 뱃길'과 행군에 비유하시며 "대진은 하루에 30리를 간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조선군의 하루 행군거리가 30리로 정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30리면 12킬로미터 정도 되는데요. 큰 군대가 무기와 식량을 수레를 끌고 군장을 매고 걸어 이동하면서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적을 맞아 싸울 수 있는 체력을 남겨둘 수 있는 거리를 30리로 본 것이라고 합니다. 행군 자체가 목적이라면 더 갈려면 더 갈 수도 있겠지만 유사시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서 30리가 적당하다고 본 것이지요.


 이순신장군이 뛰어난 해전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그 과정을 보면 참 쉽지가 않습니다. 전쟁이 나자마자 수도가 함락되어 임금이 피난가는 상황에 군량미나 무기등을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보니까 자급자족을 하면서 7년이라는 전쟁을 치루어 내야 했습니다. 전투라는 것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진왜란 7년간 23전을 했으니 평균 일년에 3번 남짓한 전투가 있는 셈입니다. 4달에 한번꼴의 전투이지요. 전투가 없을때는 군사들이 산에서 나무를 해서 팔아 식량도 준비하고 농사도 짓고 소금도 해서 팔고 무기 만들 철이 중요하기에 철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조정을 대신해 면천을 해주는 특권을 받아 그렇게 군사들을 먹이고 배를 짓고 거북선을 짓고 무기를 만들고 군사 훈련도 하면서 그렇게 7년 전쟁을 독자적으로 꾸려 나갔던 것입니다. 


 우리는 증산신앙역사에서 상제님 일에 지나치게 비상상황을 선포해 일상을 완전히 망가뜨린 경우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동시에 상제님 일을 잊거나 해이하게 일상에 풀어져 살아가는 모습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이라는 행군도 해야 하지만 상제님 일이라는 전투를 대비한 시간의 안배도 필요합니다.  반대로 상제님일이라는 행군을 하면서도 일상생활이라는 전투에도 힘을 안배해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선군의 하루 행군 거리가 30리라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또 상제님 말씀에 보면


@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비무환(有備無患)이요 무비유환(無備有患)이라 하나니, 천하사를 하는 사람이 준비를 충분히 하고 있으면 근심될 일이 없지만,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면 걱정할 일이 있는 법이니라." 


@ ... 천하사를 하는 사람은 항상 길고 멀리 보며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고, 또한 언제 어느 때든 불시에 닥칠 일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느니라. 편안할 때 위급함을 생각하고, 위급한 가운데서도 편안함을 구해야 하느니라. 나는 너희들에게 이를 돌이켜 살피고 경계하게 하노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p255-258)  


 유비무환하면 사실 이순신 장군이 떠오르는데,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장군이 이룬 2323승이 기적같이 보이지만 사실 그 비결은 철저히 이기는 싸움만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철저히 준비를 하고 이길 수 있는 여건일때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게릴라식 섬멸작전과 유인섬멸 작전으로 언제나 자신의 계획대로 일사분란하게 통제된 전투를 했다는 겁니다. 일본 수군의 전투방식이라는 것이 주로 배를 붙여서 넘어와서 갑판에서 칼 싸움하는 것이 주였다는 거죠. 일본애들이 칼을 잘 쓰니까요. 그런데 이순신의 조선수군은 그런 상황을 아예 안 만들어 줬어요. 멀리서 포를 쏘아 적선을 깨뜨리거나 좁은 수로에서는 가까이 붙게 되니까 근접전이 되면 불리하기에 넓은 곳으로 유인해 내서 한꺼번에 둘러싸서 포로 협공을 하는 방식으로 해서 공격할 기회를 아예 안 준거죠. 항상 나의 패이스대로 상황을 만들어 준비된 형태의 싸움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조선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전멸하다 시피하게 됩니다. 올해가 병신년인데, 임진왜란 5년째인 병신년 초겨울에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곧 바다를 건너 부산에 온다는 첩보를 입수한 조정에서는 함대를 이끌고 나가 대기하다가 싸워 가토의 머리를 조정으로 보낼 것을 명합니다. 이에 이순신은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해 주십시오라며 완곡한 거절의사를 표현합니다. 첩보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거제도 가덕도 해변에 깔린 왜군들을 측면과 후면에 둔채 한산 통제영에서 부산 앞바다까지 항해해 체력이 고갈된 군인들이 또 언제 올지도 모르는 왜군을 파도 심한 겨울바다 위에서 며칠씩 기다린다는 것은 무모한 출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이 시작되던 임진년에 가토 기요마사를 선봉으로 한 왜군의 침략으로 서울을 버리고 피난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선조는 그 복수를 통한 명예회복과 정치적 필요가 절실했기에 가토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순신이 불복종을 한 것이지요. 실제로 선조실록에 보면 조정의 어전회의에서 선조의 발언이 나옵니다. 

"한산도의 장수는 편안히 누워서 무얼하고 있는가?" (선조실록 1597123)

"어찌 이순신이 가토의 머리를 가져오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만 배를 거느리고 기세를 부리며 기슭으로 돌아다닐 뿐이다. 나라는 이제 그만이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선조실록 1597123)

" 


 선조의 상황에 대해 오해에 모함이 더해져 조정에서는 이순신을 파면하고 권율 도원수를 보내 이순신을 한양으로 압송하고 원균을 대신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을 합니다. 원균도 수군이다 보니까 상황이 출전하기에 위험한 거에요. 육군이 지원이 안되면 나도 못 간다하면서 원균도 명령에 따르지 안습니다. 권율은 육군이라서 수군을 또 잘 모르잖아요. 결국 권율이 원균을 곤장을 쳐서 출전을 시켜요. 삼도수군통제사면 해군참모총장인데 부하들 앞에서 곤장을 맞고 싸움에 나간거에요. 


 그렇게 출전해서 이순신이 5-6년간 키워온 해군 전력이, 조선수군의 전체 전력의 80%가 그렇게 칠천량 해전에서 다 수장된거에여. 전멸이죠. 원균은 가토 기요마사를 잡아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에 쫓기는 마음에 적의 일자진 속으로 탈진한 아군을 밀어 넣은 거에요. 전술적 판단만 냉철하게 했어도 전멸하지 않았겠지요. 


 이순신은 장졸들에게 전투에서 항상 이야기했데요.  "너희는 경거망동하지마라. 태산과 같이 진중하라." 우와하면서 기세있게 대들듯이 하는 전투가 아니라 항상 냉정을 잃지 않은 중심을 잃지 않은 이성적인 전투를 했다는 거거든요. 


 내가 분위기에 휘둘려 내 중심을 잃으면 상황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 상황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거든요. 원균은 그런 정치적 분위기에 휘둘려 중심을 잃은 거죠. 권율이나 원균이나 중간에 누군가가 선조에게 직언을 해서 말렸으면 그런 참담한 상황은 오지 않았을 테지만 임금이 나서서 그러는 상황에 감히 브레이크를 걸 사람이 없었던 거지요.


 유비무환의 예를 들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후천을 위한 유비무환 무비유환의 준비는 결국 상극에 흔들리지 않는 철저한 내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내가 절대적인 편안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모르면 결국은 분위기에 휘둘리고 남탓을 하면서 욕망을 추구하는 상극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탐진치를 벗은 편안함을 모르면 탐진치의 자극을 다시 쫓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닦고 태을주를 읽어 독기와 살기를 빼고 탐진치를 극복하는 것이 후천을 준비하는 유비무환 무비유환의 준비라는 것이죠.


 주역이나 명리학이든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공부라면 그나마 공부하는 티라도 나서 그 재미에 동기부여가 되겠지만 독기와 살기를 빼고 내 마음을 닦는 공부는 남이 모르는 공부다 보니 내 스스로가 나아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이 깊어지고 편안해지고 생각이 바뀌고 깨침이 일어나고 주변에 그런 영향을 끼쳐지는 그런 체험을 통해서 무극의 작용에 감이 잡히고 점점 믿음이 쌓여가고 확신을 가지게 되는 길이거든요.


 전쟁이라면 날짜가 있고 기한이 있고 강제력이 있어 맞춰 준비하면 되지만 상생세상을 열어가는 우리 일은 언제든지 그 기한이 올 수도 있지만 사실은 기한이 없다시피 하다 보니 한없이 늘어질 수가 있어요. 가시적 기한이 없으니 나 스스로도 분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서두르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사흘길을 하루에 가서 열흘을 앓아 눕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모습이라도 갑작스레 열심히 하는 모습은 주위를 불안하게 하고 저항하게 합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하는 것과 쫓겨서 하는 것은 남이 봐도 다 알게 되어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휘둘리 듯 하는 것과 내가 소화해 내가 주체적으로 중심 잡혀서 하는 것은 표정만 봐도 알고 말만 몇 마디 들어봐도 드러납니다. 


 밖으로 바삐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목적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우리 태을도인들의 천하사라는 것은 말하면 공부하고 수행하고 글쓰고 가정과 사회에서 자기 마음 살피며 상생의 모범을 실천하며 인연을 도연으로 연결시켜 가는 것이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을 보고 내 중심을 갖추고 내 원래의 편안함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평지에선 50리도 가겠지만 산을 오를 때는 10리도 힘들 때도 있습니다. 급한 일이 있기도 하고 여건에 맞춰 가되 항상 지금 30리 갈 상황과 체력으로 10리도 못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보고 3040리도 갈수 있게 스스로 연습하고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사장입장에서는 알아서 잘 돌아가면 좋겠지만 보고도 없고 가시적 성과도 없고 하면 불편해도 관여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사실 열번 스무번을 참고 한번 관여를 하는 것입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자기 하는 일 외에는 고려하기가 쉽지 않아요. 처음 잘 모를 때는 직원은 취직만하면 월급이 알아서 나오는 줄 알거든요. 저도 사회생활 첨할 때는 그랬었지만. 남들 하듯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출근 퇴근하며 시키는 일만 하면 월급 나오고 진급하고 그러는게 당연한 줄 알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거든요. 사장 입장에서 보면 실적이 없고 성과가 없고 가능성이 안보이면 잠을 못 이뤄요. 내가 다 감당해야 하고 감당 못하면 문 닫아야 되니까. 나부터 내 가족부터 망하고 직원들 다 일자리 잃는거지요. 말단 직원일 때는 내 일만 열심히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역이 되고 중역이 된다는 것은 그 회사의 주체로서 주인으로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통하고 상황에 대해 공유를 하고 있어야 공감하고 행동을 같이 하게 됩니다.


 상제님 사업인 인간개조 사업을 하는 우리 태을도의 속육임 태을도인들이야 말로 정말로 그런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음을 맞춰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부터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머리만이라도 몸보다 앞서가려 합니다. 하루에 30리씩 꾸준히 나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태을도 수원법소
글쓴이 : 충정(忠正)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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