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화창한 젊은 날들이 지나고 인생의 끝을 생각할 만한 나이가 되된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동안 죽을 뻔한 적들이 몇번 있었구나. 그 기억을 더듬어 본 적이 있다.
5-6세쯤에 나는 시골 읍의 꼬딱지 만한 조부모 집에서 컸다. 그 집안에는 물을 길어올리는 수동식 펌프가 있었다. 넓이 2미터도 안되는 그 좁은 곳에 직경 1미터정도 되는 고무다라에 물을 받아 놓고 그 옆의 문간에서 고무다라로 다이빙을 한다고 뛰어 들었다. 내 눈에는 그게 꽤 넓어 보였나 보다. 그런데 그게 잘못 다이빙이 되서 옆의 수동식 펌프의 아래를 고정하고 있는 콘크리트 모서리에 머리를 박아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지금도 그 기억이 난다. 머리뼈가 보일 정도로 이마가 찢어져서 바로 병원에 가서 꼬매버렸다. 다행이 지금은 흉터만 남아 있지만 조금만 더 잘못 되었어도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중학교 때인가 한번은 여름에 가족들과 대천해수욕장에 놀러갔다. 바다에서 고무튜브를 타고 하늘을 보면서 팔로 노를 저어가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바다에 둥둥 떠있기도 하고 놀고 있다가 문득 내가 어디쯤 있을까 하고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왠걸 사람들이 있는 해수욕장이 저쪽에 멀리 보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죽어라하고 손으로 물을 헤치면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조금만 더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가는 서해바다에서 실종될 뻔 했다.
고등학교때에 (뒤를 쓰다가 갑자가 생각이 나서 앞으로 돌아와 추가로 쓴다) 가스중독으로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신림동 주택가에 있는 우리집은 한쪽 방에 연탄을 태우고 있었는데 가스가 조금씩 새워나왔다. 평상시는 별 문제가 없는데, 연탄의 질이나 날씨 등이 겹치고 부엌의 환기를 잘 안하면 냄새가 심해졌다. 그 방은 내 방이 아니고 원래 동생들이 쓰는 방인데 하루는 저녁에 자고서 아침에 일어나려니 머리가 빙빙 돌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나서 마루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려는데 몸이 잘 말을 듣지 않았다. 정말 2미터만 가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기어서 기어서 억지로 마루문을 열고 나갔다. 조금만 더 잤으면 영원히 잘 뻔 했다.
대학교때에 친구들과 강원도의 한 개천으로 놀러갔다. 개천 변 자갈돌 위에서 다들 잘 놀고 있었는데, 30-40미터 떨어진 물 속에서 놀고 있던 한 친구가 헤푸헤푸 하면서 물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그래도 그냥 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친구가 2-3번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면서 얼굴을 보니 놀랜 모습이었다. 이놈이 물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그 친구쪽으로 구해주려고 몸을 돌려 가려고 하니 이제는 아예 물 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막 뛰어갔다. 그런데 물에 다다렀을 무렵, 그 친구나 물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 보니, 진짜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안되겠다 싶어서 일단 물 속으로 들어간 다음 땅을 짚고서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그때 그놈이 제손으로 땅집고 나왔으니 망정이지 내가 살린다고 정신없이 들어갔다가 보통 십중 팔구는 구해주려고 들어간 놈이 죽거나 둘다 죽게 마련이다.
대학원때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산지 얼마 안되서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를 가는 길에 춘천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지금은 여러번 다녀본 길이라 그곳이 운전하기가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때는 처음 가보는 넓은 길이었다. 그렇지만 그곳은 상하 좌우 굴곡이 심한 곳이 많아서 운전자가 콘트롤하기 어려운 길이다. 한번은 속도를 100킬로 이상 내고 쭉 가다가 내리막길이면서 우로 꺽인 길을 가게 되었는데 초보운전이라 마음은 오른 쪽으로 꺾는다고 하면서도 몸이 좌로 쏠리게 되니 차가 마음대로 우로 꺽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중앙선이 눈에 보이고 앞에서 한 차가 마주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있는 힘을 다해 우로 꺽어서 간신히 내 차선으로 다시 들어왔다. 당시에 어머니는 내색을 하시지 않았지만, 나중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정말 깜짝 놀라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놀라서 비명을 지르면 자식이 더 놀랄까봐 가만히 계신 것이다. 이때로 죽을 뻔 했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을 때였다. 코가 자주 막히고 특히 밤에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입을 벌리고 자서 목이 칼칼하고, 또 잠자는 동안 산소를 제대로 머리에 공급이 안되니 내 머리가 잘 안돌아가나 보다 생각이 되어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돈을 절약하려고 내가 다니는 대학교의 부속 병원을 가니, 돈은 아낄 수 있었지만 의사들이 나를 대하는 것이 영 돈이 안되서 실습용으로 삼고 있는 것이 눈에 빤히 보였다. 한번은 마취까지 해 놓고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갑자가 수술이 취소되었다면서 다음에 하자는 것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그래도 숨은 쉬어야 살 것 같아서 참고 다음번 수술 날자 잡아서 수술을 했다. 그런데 수술하고 집에 와서 좀 있다가 보니 다음날 머리가 어지럽고 빙빙 돈다. 이거 안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다시가서 진정이 다 된 다음에 돌아왔다. 돈만 아는 대학병원 의사 때문에 죽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내가 졸업한 대학병원엔 안간다.
졸업논문 쓸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당시에는 담배를 폈다. 나는 내가 담배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숨도 제대로 못 쉬는데 산소가 아닌 일산화탄소를 들이 마시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도 밤 늦게 까지 논문을 쓰면서 담배를 피워댔다. 그러던 어느날 분명 저녁에 책상앞에 앉아서 논문을 쓰고 있는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에는 기억이 안난다. 아침에 깨어나서 보니 다리는 책상앞에 있는데 뒤로 누워 자고 있었다. 그 때 담배를 끊지 않으면 논문쓰다가 이대로 이승을 하직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담배를 끊게 되었다.
학교에 자리를 잡고서 지방의 새로 지은 아파트를 전세내서 잠자리로 정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 새집증후군이 있다고 해서 당시 11월 겨울 초입인데 문도 열어놓고 2일 정도를 난방도 해서 독기를 뺏다. 그리고서 잠을 처음으로 그 아파트에서 잤다. 그런데 다음날 또 머리가 빙빙 돌았다. 밤새 술 먹은 것보다도 더 머리가 빙빙 돌고 아팠다. 나가려고 하니 다리도 휘청거린다. 문 밖으로 나가서 일단 맑은 공기 마시고 정신차렸다. 옛날 고등학교 때처럼 언탄을 피는 집도 아니고 도시가스를 써서 난방을 하는데 머리가 도는 것을 보니 새집증후군에서 말하는 온갖 화학약품들이 밤새 난방을 하는 사이에 쏟아져 나오고 문을 닫고 있으니 방안에 맴돈 것이다.
학교 앞은 시골이지만 사고가 많다. 시골길은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사고 나기가 더 쉽다. 이 앞길에서 학생 한명이 죽은 적도 있다. 2차원 길인 여기서 차를 끌고 내리막 길이면서도 좌회전하는 구간을 지나가는 순간 앞에서 반대편 차도에 버스가 정차하고 있는데 그 뒤에 따라 오던 찦차가 그 버스를 추월하여 중앙선을 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안되겠다 싶어 내 차를 길 밖으로 몰고 간후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그 곳의 오른쪽은 어느 가게집 마당으로서 한 한대 주차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정차후 차 앞을 보니 논두렁이었다. 오늘도 자칫했으면 앞차와 정면충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이렇게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별다른 일을 하지 않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속에도 이렇듯 죽을 고비가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중 어느 한가지만 죽음의 신이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저 세상에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나도 모르게 스쳐 지나간 나의 죽을 뻔한 순간들은 몇번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젊은 시절까지 나를 보호해주는 신명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았다. 지금은 보호신명이 좀 지쳐서 휴가가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조심하면서 살고 있다. "천장강대임어사인야"라는 말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동안 나를 보살펴 주신 하느님께 그리고 그동안 고생하셨을 보호신명께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내 스스로 죽음을 조심스레 피해 가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할 만큼 나이를 먹지는 않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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