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와 태을주의통

[스크랩] 대원사의 결혼식과 금산사의 출정식

태을세상 2006. 11. 17. 11:36

 선천은 억음존양의 상극시대이지만 후천은 정음정양의 상생시대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정음정양의 후천시대를 열기위해 고수부님을 1911년 동짓달 초사흗날 수부(首婦)로 택정하셨습니다. 고수부님이 수부로 택정되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 후에 상제께서 오시어 경석에게 가라사대 "천지에 독음독양 만사불성이니 내 일은 수부가 있어야 순서진행 하나니라." 하시며 "수부를 택정하리라." 하시고, 경석에게 정면하사 가라사대 "네 전일에 수부를 인권한다 하더니 어찌 되었느냐." 하시는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경석의 생각에 이종 매씨가 떠오르더라. 그러나 이종 매씨는 홀로 된 지가 이제 겨우 석 달밖에 되지 않았는 데 체면상 무엇이라 말을 할까 염려하며 매씨에게로 가서 임기응변을 써서 말하되 "내가 내일 새벽에 어디를 다녀올까 하는 데 도복 준비가 되지 않은 듯하니 매씨께서 오시어 서둘러 도복을 손질해 주기 바라노라." 하여 고후비께서 오시니라.

 경석의 집은 상하채로 되어 있으며 행랑채 정면으로 대문이 있어 그 대문으로서 안채를 출입하게 되어있더라. 고후비께서 막 대문을 들어서시는 데 둥근달이 행랑방 문 지두리에 훤하게 솟아있어서 그 달속을 들여다보니 둥근달 속에 선관이 좌정해 계시더라. 이 때에 지고후비께서 정신을 가다듬어 바라보시나 여전히 달 가운데 선관이 좌정하여 계시거늘, 바라보시다 생각해보니 아녀자의 체면에 미안하여 안채로 들어가니라. 그후부터 바느질을 하시나 훤하니 달속만 비치어서 황홀한 생각속에 계실 뿐이요 바느질이 손에 않걸리더라.

 경석이 상제께 여쭈어 가로대 "지금 안채로 들어간 분이 저의 이종매 오이다. 수부로써 어떠하나이까." 하고 사뢰니, 상제 가라사대 "수부를 지척에 두고 미정이로다." 하시며 "속히 주선하라 공사지연이로다." 하시니라. 경석이 바삐 안으로 들어와서 매씨에게 여쭙기를 "사랑에 계시는 선생님께서 천지공사를 하시러 하는 바 이 공사에는 '수부도수(首婦度數)를 정하신다.' 하니 매씨께서 수부의 소임을 맡으심이 어떠하리오." 하니, 고후비께서 흔쾌히 승락하심으로 이로써 수부택정공사를 정미(1967)년 동짓달 초사흗날 행하시더라. (선도신정경 pp25-27)

 

 증산상제님께서는 차경석 성도의 천거를 받아 고판례 부인을 수부로 책정하시고, 수부로 책봉하는 의식을 다음과 같이 행하셨습니다.

 

@ 증산상제께서 수부공사(首婦公事)를 보실 새, 대흥리 차경석의 사랑에 삼십여 명을 모아놓고, 가라사대 "정읍이라 하는 곳은 왕자포정지지(王子布政之地)요, 정자(井)는 새암 정자 아니냐. 수부로 하여금 이를 번갈아 밟고 들어오라 해라." 하시며, 대학경 한 권과 부(符)를 그린 부도책 한 권을 주시더라.

 고수부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방에 들어오니, 고수부께 웃옷을 벗고 누우라 하사, 상제님께서 큰 장도칼을 가지시고 고수부님의 배 위에 걸터앉아 칼을 고수부님 목에 겨누시며, 가라사대 "죽어도 나를 섬기겠느냐. 그리고 천지대업에 있어서 중도에 변개함이 없으렷다." 하시며 다짐하시니, 고수부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 변개함이 있아오리까." 하시니, 상제께서 기뻐하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그렇지." 하신 후에,

 인하여 상제께서 누우시어 상제님 배 위에 고수부님을 앉히시고 그와 같이 다짐받도록 하실 새, 고수부 가라사대 "나를 일등으로 정하여 주시렵니까?" 하고 다짐을 받으시니, 상제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등수부로 정하리라." 하시거늘, 고수부께서 가라사대 "이 다짐은 변개함이 없어야 하오리다." 하시니, 대답하시기를 "대인의 말에는 천지가 쩡쩡 울려 나가나니, 오늘의 이 다짐은 털끝만치도 어김이 없으리라. 이것이 천지대도의 수부공사이니 만민의 어머니가 되려면 이와 같이 공사를 맡아야 되느니라." 하시며 부를 그려 불사르신 후, 가라사대 "세상사람이 내가 누구인지만 알아도 반도통은 열려야 하느니라." 하시더라. (선도신정경 pp28-29)

 

 고판례 수부님께서는 증산상제님 생존시에 수부로 택정되셨으나, 정식 혼례식은 증산상제님이 돌아가신 이후, 모악산 대원사에서 증산상제님의 성령을 모시고 만고장상을 집결시킨 가운데 거행하셨습니다. 영혼 결혼식을 하셨던 것입니다.  

 

@ 신해(1911)년 사월에 천후 차경석과 유응화와 응화의 아들을 데리고 대원사에 들어가서 대례복을 차리시고 천사의 성령께 혼례식을 행하실 새, 만고장상의 이름을 적어서 크게 점명하시고 인하여 사십구 일동안 진법수련을 행하신 뒤에, 고부 와룡 신경수의 집에 오셔 백일동안 수련하실 새 딸 태종이 수종드니라. (천후신정기 p20) 

 

 고수부님은 증산상제님과 정음정양으로, 신인합일의 천지일가를 이루시는 천하창생의 어머니이십니다. 고수부님은 증산상제님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증산상제님의 법을 용사하시는 분으로서, 만국제왕과 만고장상을 지휘하여 진리의 적장자 단주를 앞세워 태을주로 급살병을 극복하고, 이 땅에 세계일가통일정권인 대시국(大時國)이 건설되도록 역사하는 분이십니다.

 

 고수부님께서는 만국제왕과 만고장상을 거느리고 대원사에서 증산상제님의 성령과 영혼 결혼식을 하신 이후 명실상부한 천하창생의 어머니가 되시어, 병권을 맡은 차경석을 데리고 증산상제님께서 만국제왕신과 24장을 응기해 놓은 청주 만동묘에 가시어 치성을 행하심으로써, 나중에 만동묘가 쑥대밭이 되면 만국제왕신과 24장들이 금산사에 가서 응기하도록 신정공사를 보셨습니다.

 

@ 임자(1912)년 칠월 초사흗날 천후 경석을 데리고 걸어서 청주 만동묘에 이르사 구월 초이튿날까지 날마다 치성을 행하시더니, 하루는 경석이 냇가 돌 위에 앉아서 주문을 외우다가 낙상하여 중태에 이르러 여러 날동안 인사를 알지 못하고 누워 앓거늘, 천후 주먹으로 등을 치시며 꾸짖어 가라사대 "일을 다 보았는 데 너는 어찌 정신을 차리지 아니하느냐." 하시니 경석이 곧 낫는지라. 이때에 여비가 떨어졌거늘, 경석이 먼저 돌아와서 여비를 주선하여 가지고 가서 천후를 모셔 오니라. (천후신정기 p26)  

 

 증산상제님께서도 천지공사를 통해 만국제왕신과 24장들이 때가 되면 모악산 금산사에 가서 응기해 있도록 하셨습니다.      

 

@ 대원사를 출발하려 하실세, 천하만국 제왕신과 이십사장들을 부르사 만동묘에 응신을 시키신후 가라사대 "이 다음에 만동묘가 쑥대밭이 될 것이요, 그때에는 만국제왕신과 이십사장들을 금산사로 옮겨 호위하게 하리니, 이 신명들을 잘 대접하라. 그러나 지금은 당분간 만동묘에 응신시킬 수 밖에 없느니라." 하시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2)

 

@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일후에 때가 되면, 천하만국의 제왕신과 이십사장은 금산사를 옹위하고 이십팔장은 용화기지를 옹위하며 삼만의 철기신장은 원평장상 대기지를 옹위하리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옛 말에 이르기를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고 하는 말과 같이,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용화도장은 장광이 팔십리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

 

 1941년 4월 일본의 폭격으로 만동묘가 쑥대밭이 된 이후, 만국제왕신과 이십사장들은 금산사를 호위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때가 되어 급살병이 터지면, 단주수명자가 금산사로 들어와 천지부모이신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을 모시고 만국제왕신과 24장신의 호위속에, 천제를 모시고 의통성업의 출정식을 하는 것입니다.

 

 급살병이 터지면, 금산사 미륵전에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성령을 모셔놓고, 칠간법당의 대적광전 자리를 사무실로 하여 의통성업을 집행합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금산사를 얻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참으로 어렵구나. 내 금산사를 도득하기가 천하를 얻기보다 더 어렵다."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시지(時至)하며는 금산사 칠간 법당 자리는 사무실 자리로나 쓰면 마땅할 것이니라." 하시더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43)

 

 증산상제님께서는 금산사를 중심으로한 대시국 수도의 북문은 전주가 된다 하시고, 고수부님께서는 구릿골 입구 돌다리가 금산사로 들어가는 천지의 문턱이라고 하시면서, 계화도가 금산사로부터 팝십리 떨어진 서대문이 되고 오성산은 만국영사관 자리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증산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고부, 정읍, 태인, 부안, 김제와 전주, 순창, 익산, 옥구, 함열로 수도를 삼아 현 서울(당시의 한성)의 7배나 넓은 곳에서 문무백관이 정사를 보게 하리라. 대시국 수도의 북문은 전주에 세워지노라. 때가 되면 모악산 금산사는 인산인해를 이루리라." (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217)

 

@ 고후비께서 용화동으로 오시다가 팥정이에서 쉬실세 구릿골 입구 돌다리를 담뱃대로 겨누시며 가라사대 "저기가 천지 문턱이니라." 이어서 가라사대 "이곳에서 장광팔십리가 꼭 차니라." 하시고, 담뱃대로 제비산을 가르치시며 "저 산 흙은 쓸데가 있노라." 하시니라. (선도신정경 p168)

 

@ 오성산은 만국 영사관 자리요, 서대문 팔십리는 저기 있는 계화도요, 평사리는 나의 평상이니라. (선도신정경 p201)

 

 금산사를 중심으로한 용화동은 증산상제님의 기지로서 후천 용화선경 수도의 중심지입니다. 금산사를 중심으로 한 장광팔십리의 용화도장에 후천대시국의 수도가 들어서는 것입니다.

 

@ 매양 구릿골 앞 큰나무 밑에서 소풍하실 새, 금산(金山)안과 용화동(龍華洞)을 가리켜 가라사대 "이곳이 나의 기지라, 장차 꽃밭이 될 것이요 이곳에 인성이 쌓이리라." 하시고, 또 "천황지황인황 후(天皇地皇人皇後) 천하지대금산사(天下之大金山寺)"라고 말씀하시고, 또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 문명개화삼천국(文明開化三千國) 도술운통구만리(道術運通九萬里)"라고 외우시고, 또 "세계유이차산출(世界有而此山出) 기운금천장물화(紀運金天藏物華) 응수조종태호복(應須祖宗太昊伏) 하사도인다불가(何事道人多佛歌)"를 외우시니라. (대순전경 p159)

 

@ 어느날 종도들에게 가라사대 "일후에 때가 되면 천하만국의 제왕신과 이십사장은 금산사를 옹위하고, 이십팔장은 용화기지를 옹위하며, 삼만의 철기신장은 원평장상 대기지를 옹위하리라." 하시고, 이어서 가라사대 "옛말에 이르기를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 간다'고 하는 말과 같이, 금산사를 중심으로한 용화도장은 장광이 팔십리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8)  

출처 : 용봉서신(龍鳳書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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