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인 도훈(道訓)

[스크랩] 청명치성 태을도인 도훈: "이제는 가해자의 `미투`-자기고백이 필요하다"

태을세상 2018. 4. 22. 13:46

청명치성 태을도인 도훈

"이제는 가해자의 '미투'-자기고백이 필요하다"

2018. 4. 5 (음 2. 20)

 

 

  무술년 청명을 맞았습니다. 새 불이 나오는 날인데, 오늘 비가 왔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보니, 활짝 피었던 꽃들이 비로 인해 많이 졌습니다. 봄꽃을 좀 보나 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오늘아침 학교 가는 길에 목련꽃을 보니 참 소담스러웠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이제 매순간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지금 5학년 실과를 가르치고 있는데, 지난 주 실과시간에 안과 밖이 다른 나의 모습을 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와 가정생활」이란 단원 속에서 건강한 가정생활을 위해 배우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보통 대외적으로는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어느 정도 하지요. 바깥에서는 보통 상냥하게․ 친절하게․ 활기차게․ 자상하게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사람이, 집안에서는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고 무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그리고 집 바깥에서 다르게 행동하는 나의 모습을 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과 함께, 「듣기 싫은 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알아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반 수업시간에 한 여학생이 엄마,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외할아버지께 종종 맞는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물론 그 아이도 5학년이고 좀 숙성해서, 사춘기가 온 듯 해보였습니다. ‘반항기에 접어들었다’라는 뜻이지요. 수업시간에 발표하는데 따로 조금 더 알아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쉬는 시간에 불러내서 물어봤더니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엄마한테 맞은 얘기, 그리고 외할아버지께 맞은 얘기. 그래서 아빠한테 그런 얘기를 해보지 그랬냐 했더니, 엄마가 더 세서 아빠가 엄마를 이기지를 못한대요.

 

  그런데 그 아이 얘기를 듣고 있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제 가슴이 울컥 해서 그 아이를 안고 다독여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이를 안아주는 그 때, 문득 제 큰아이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엄하게 자란 탓에,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면 당연히 회초리를 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결혼초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셋째는 맞지 않았는데, 우리 큰애가 (제 훈육관으로 인해) 어린 시절 여러 번 맞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속상해하고 슬퍼하는 여학생의 심정이 그 당시 우리 큰아이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여학생을 안아주고 있는 순간에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참 마음이 아프고, 큰아이에게 정말 미안했습니다. 물론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사랑하고 어루만져주는 건 당연하지만, 이렇게 남의 아이를 어루만져주고 있는 제가 그당시 우리아이 마음은 얼마나 어루만져주었나 하는 반성이 되더라고요.

 

  우리가 흔히 얘기합니다. 그 사람의 행위를 미워하되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그런데 실제로 일상 속에서 그런 상황에 부딪치면 그 행위에 대해서만 객관적으로 훈육을 하는 걸로 끝나지 않고, 보통 타박을 하고 나의 감정을 말 속에 넣어서 쏟아 붓게 되지요. 제가 그동안 지어왔던 척과 살의 많은 부분이 그런 자신의 행동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참 많은 척을 짓고 살을 내뿜었습니다. 참 죄를 많이 지었지요.

 

  어제 수요일에 또 성희롱 성폭력 예방에 관한 교직원연수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요즘 벌어지고 있는 「미투운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강사분의 말씀이, 그동안 우리는 그런 류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항상 피해자에게만 집중을 했다는 겁니다. 미투운동이 벌어지기 전의 얘기이지요. 우리가 성희롱 성폭력에 관한 사건을 기억할 때 대부분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서 기억하지, 가해자에 초점을 맞춰서 기억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슨 사건하면 통상 피해자의 이름이나 피해자를 부른 호칭을 붙여 그 사건을 부릅니다. 「우(씨)조교 사건」, 혹은 나영이인가요? 「나영이 사건」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가해자 이름을 기억해서 붙이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살인사건일 경우에는 살인범의 이름으로 그 사건을 기억하는 데, 새삼스럽게 느낀 건데, 특이하게도 성희롱 성폭력사건을 기억할 때에는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거기에는 피해자에게도 잘못이 있지 않나 하는 그런 눈으로 우리가 사건을 들여다보는 시각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는 거지요.

 

  그 강사분 얘기가 이제는 가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된다는 거지요. 가해자에게는 단호하게 “그러면 안된다.” 그리고 피해자한테는 들어주고 어루만져주고 “너를 위해서 우리가 같이 힘을 써주겠다.”고 말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너 왜 그때 거기 있었니? 너 왜 (가해자에게 범행할 마음이 생기게 하는) 그런 옷을 입었니? 너 왜 그때 거부하지 않았니? 왜 소리 지르지 않았니? 이렇게 피해자를 탓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지요. 분명 가해자가 잘못했는데, 왜 우리는 그동안 피해자에게 질타를 해왔을까요?

 

  그동안 숱하게 척과 살을 지으면서, 죄를 지으면서, 그런 가해자의 역할을 피해자의 역할보다 더 많이 했다고 하는 것을 그동안 제가 간과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난 실과시간에 여학생을 안아주면서 또 성희롱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으며 들었습니다. 내가 서운해 했던, 그러니까 나에게 행해진 어떤 행동에 서운해 하는 그런 나의 모습은 스스로 많이 기억하는데, 내가 남에게 남을 그렇게 서운하게 한 부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기억하고 있나, 다시 말하면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뼛속 깊이 하나하나 다 헤아려서 반성하고 참회하고 있나, 하는 부분에 있어서 참 많이 부족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미투운동을 피해자들이 나서서 하고 있지요. 이제는 가해자들의 미투운동, 즉 자기고백, 고해성사가 주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제님이 말씀하신 게 그것이지요. “참회하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물론 ‘사랑하고 용서하라.’도 필요하지만, 피해자가 그렇게 용서할 수 있으려면 가해자가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참회하고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저는 요즘 박근혜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전후, ‘국정농단’이란 말을 생각 없이 받아쓴 것을 굉장히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도훈에서도 국정농단이란 단어를 썼었지요. 지금도 국정농단이란 단어는 언론 방송을 통해서 계속 유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는 대통령의 직무에 관한 여러 가지 법률들을 봤을 때 아무 근거가 없는 용어입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법적으로 있지도 않은 용어를, 누군가가 만들어내서 지금 그것으로 대통령을 단죄했고 현재도 단죄 중에 있습니다.

 

  박근혜대통령이 정치를 아주 잘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정(失政)이 전혀 없었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예전 도훈에서 제가 한번 말씀드린 것같이, 박근혜대통령의 정치행위 중에 있었던 실정이 정말로 우리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국정농단이란 용어를 붙여가면서까지 단죄하고 탄핵해야 할 성질의 것이었나에 대해서 이제는 국민들이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개인으로 누구한테 위해를 가할 수 있지요. 척과 살을 짓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단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단독범행이지요. 그런데 단체로 여러 사람이 폭력을 가하게 되면 집단폭력, 집단폭행이 됩니다. 죄가 더 가중되지요. 우리가 그동안 박근혜대통령에게 국민이 집단을 이루어 가해자 역할을 한 것이 아닌지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법에 있지도 않는 용어를 가지고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단죄한다? 더군다나 탄핵과정은 절차상의 하자가 너무 많아, 탄핵과정 자체가 위법했지요. 한마디로 ‘무법의 극치’ ‘무도의 극치’라고 하겠습니다.

 

  상제님께서는 「현무경」에서 ‘대병출어무도 소병출어무도((大柄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라고 하셨습니다. 큰 병도 진리를 모르는 데서 나오고 작은 병도 진리를 모르는 데서 나온다고 하셨는데, 저는 박근혜대통령의 탄핵과정이 무도(無道)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가해자의 '미투'- 자기고백이 증산신앙인들, 특히 우리 태을도인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방송, 언론을 통해 터뜨리자는 얘기는 아니고요, 우리 증산신앙인, 특히 태을도인의 자각이 저부터 좀더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일상생활 속에서 반영이 되고 정말로 엄정하게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무도함이 계속된다면, 천지(天地)가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지요.

 

  새 불이 나오는 청명일에, 이런 간절함을 가지고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저의 지난 행위를 돌이켜보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태을도(太乙道) 천지공정(天地公庭)
글쓴이 : 새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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