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추분치성 대구법소 태을도인 도훈(충희): 현실주의자 강증산
안녕하세요?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입니다. 앞으로 동지까지는 밤이 점점 길어지게 됩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새로운 기운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저번에 동대구역 인근에서 치성을 모신적은 한 번 있지만, 대명동에서는 처음 대종장님과 종부님과 함께 치성을 모신 역사적인 날입니다.
대명동은 클대(大) 자에 밝을 명(明)을 쓰고 있는 동네로 남쪽으로는 앞산이 있고 동네가 아주 넓습니다. 대명동에는 미군부대도 있습니다. 미군이 있으니까 아마 가장 안전한 지역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즘에 제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과연 태을도란 무엇인가? 이 질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저에게 “어떤 종교를 믿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태을도를 믿습니다”라고 대답할텐데요, “태을도가 뭐예요?”라고 다시 물으면 강증산 상제님의 존호를 말씀하면 “아, ‘강증산’ 들어 봤어요!”라고 하면서 태을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증산신앙인들에게 ‘태을도’를 설명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태을도니까 ‘태을’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도 없고, “강증산 상제님을 믿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태을의 존재를 인식하고 상제님을 믿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요. 그리고 “단주를 믿습니다” 그 말씀도 맞는데 여전히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믿는다’라는 부분에서 섬세한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태을을 믿고, 강증산 상제님을 믿고, 고수부님을 믿고, 단주를 믿는 것은 맞는데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미가 전달되어야만 태을도를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기독교를 믿는 분들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교회에 따라가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함께 예수를 같이 믿어보려고 하는 도중에 보면 “믿습니까?” 이렇게 목사님이 외치면, 다 함께 합창으로 “믿습니다!”이렇게 외칩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 ‘예수님에게 매달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믿기 위해서 믿는 맹목적인 믿음이 되어 있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저는 증산신앙 단체에서도 이런 맹목적인 믿음에 기반 한 신앙도 만만치 않게 있었다고 봅니다. 맹목적으로 강증산 상제님을 믿고, 교주를 믿고 그랬던 것입니다.
태을도에서 믿는다는 것은, 매달리고 의존하고 이런 것이 아니고 내가 성숙한 인간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태을도를 하면서 느낀 태을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태을도를 믿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제가 성숙한 인간으로 바르게 홀로서기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홀로서기를 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누구신가 하면, 그 분이 바로 강증산 상제님이시고, 고수부님이시고, 단주 대종장님이시고, 종부님이시고, 태을도인님들이십니다. 바로 인간으로 강세하셔서 인간의 역사에 몸소 개입을 하셨던 강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최고의 스승이신 것입니다. 이분들을 본받아서 나도 한 인간으로 바로 서려고 하는 것이 바로 태을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강증산 상제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고수부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상제님 수부님에 대한 기록이 다양하게 있는데, 거기 보면 강증산 상제님을 ‘도깨비’처럼 그려놓은 책도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신명을 부리시고, 풍운조화를 일으키시는데 그런 측면을 강조하고 부각시키면, ‘저 분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라야 되고, 매달려야 하고’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되기 쉽니다.
그런데 강증산과 태을도 264쪽에 상제님의 말씀을 보면 아주 현실적인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생식과 벽곡의 편리함을 말하니 상제 놀래어 가라사대 “천하사는 살고 죽는 두 길에 그치나니 우리의 쉴새없이 서두는 일은 하루에 밥 세 때 벌이로 먹고 살려는 일이라. 이제 먹지 않기를 꾀하는 자 무슨 영위가 있으리요”(대순전경 P.345)
식(食)문화도 높은 수준이 있고 낮은 수준이 있는데, 생식과 벽곡을 추구하는 것은 풍요로운 식(食)생활과는 대비되잖아요. 상제님은 놀라셨다는 거에요. 상제님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뛰고 계신데, 그것과 반대의 길을 말하니까 상제님이 깜짝 놀라신 거에요.
그리고 천하사는 ‘살고 죽는 두 길에 그친다’고 하셨는데 살고 죽는 것은 정말 현실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살려고 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천하사’라고 하는 거창한 이름의 일이 궁극으로는 ‘살려고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독기와 살기 때문에 인간이 진멸지경에 이르고, 신명들도 다 죽게 생겼고, 우주도 빈껍데기가 되게 생겼으니까, 천지신명들도 살려고 문제해결의 적임자를 찾다보니 강증산 상제님을 옥황상제로 추대를 하였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인간으로 강림하셔서 천지공사를 집행하시고 천지를 바로 잡고 인간을 바로 잡으셨는데, 궁극으로는 인간을 바로 잡으신 것입니다. 인간이 태을을 용사하는 차원을 펼쳐 놓으셔서 천지도 살리고, 신명도 살리고, 인간도 살리는 길을 개척하셨는데요. 천하사의 길을 쭉 가게 되면 살게 되고, 아닌 길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하루 밥 세 때 먹으려고 하는 일인데, 먹고 살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면 어떤 영위도 없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만큼 현실적인 것이 없고, 살고 죽는 것만큼 현실적인 것이 없잖아요?
상제님은 뜬 구름 잡는 분이 아니라 먹어야 되는 존재 인간을 정확하게 아시는 지극히 현실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소용없고, 잘 먹고 잘 살아야 정답입니다. 생식과 벽곡을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현실주의자라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생존 하는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루 세끼를 해결 하는가?에 관심을 가진 현실주의자입니다.
남조선을 부흥시켜서 남조선에서 일등일꾼을 길러내서 중국 대중화를 끝내고, 남조선 대중화의 물꼬를 트는 일도 역사의 현장에서 하는 것입니다. 말로만 중국 대중화를 끝내고 남조선 대중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남조선 대중화를 하려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채택해야 합니다.
상제님께서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신명들의 전략을 전부 참고해서 가능한 방법 중에서 현실적이고 최선의 방법을 채택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건설되고, 도운이 굽이치다가 태을도가 출현을 해서 마지막 끝내기 국면에 들어 왔는데요. 상제님은 현실적으로 일을 하시는 분이시지, 뜬구름 잡는 분이 아닙니다.
결혼도 하고, 직업도 가지라는 것입니다. 천하사라고 해서 생식과 벽곡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하사는 극히 현실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상생의 네트워크를 확장시킬 수 있는 역량을 키우라는 것입니다. 상생의 생활이 따로 있고 일상생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 상생의 생활을 하는 것이 천하사입니다. 이렇게 쭉 나가면 대시국(大時國이) 눈앞에 열리게 되는데, 이 길에서 이탈을 하면 죽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떠난 상생의 세상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 한 상생의 세상이 열리도록 로드맵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너무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에게 이해가 안 됩니다. 이상주의에 함몰되면 현실주의자인 상제님과 호흡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태을도를 한다고 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 바로 서는 것’이고, 구체적인 방법은 상제님과 수부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상제님과 수부님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천하사에 실패하게 됩니다. 두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신앙의 첫 번째입니다. 상제님을 바로 알고, 수부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상제님과 수부님께서 왜 단주에게 대권을 넘기셨는지? 그것도 잘 알아야 됩니다. 매우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바로 서도록 하는 이 일을 하려니 단주에게 대권을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상제님을 신앙하다보면 뜬 구름 잡다가 허송세월하기 쉬운데, 뜬 구름 잡는 이야기에 세뇌되면 그것이 현실적인 것처럼 들리게 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시뮬라시옹’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는데, 쉽게 말하면 가짜가 현실보다 더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영화를 보면 영화가 더 진짜 같이 느껴지고, 소설을 보면 소설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잖아요.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마치 내가 그 현장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하루 밥 세 때 먹는 것이 현실인데 말입니다.
인간이 잘 짜인 각본 속에 빠지게 되면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상제님은 뜬 구름 잡는 분이 아니고, 우리가 밥 세 때 먹는 것을 걱정하고, 우리가 생존하는 현실적인 일에 관심을 두시는 분입니다. 남조선 대중화를 하기 위한 방안도 역사의 경영자로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을 채택하시는 분이십니다. 뜬 구름 잡는 일에 빠져 있다가 5년~10년 있다가 겨우 현실에 눈을 떴을 때는, 착각에 너무 오래 빠져 있어서 현실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런 식으로 증산신앙을 하다가 오랜 방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방황을 끝내는 방법은 현실주의자 강증산 상제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살고 죽는 것을 고민하고, 밥 세 때 잘 먹는 것에 관심을 가진 강증산 상제님을 잘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태을도를 하는 것은 인간으로 자립하는 것이고, 그 방법은 상제님과 수부님을 본 받아서 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모습의 상제님과 수부님을 모르고서는 천하사에 나서기가 어렵습니다. 천지부모님의 현실적인 모습을 알아야 현실에 안착하는 증산신앙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현실에 안착하는 증산신앙에는 ‘태을’이 있습니다. ‘태을’이라고 하면 형이상학적 기초인 것으로 이해되기 쉬운데, 상제님은 모든 것을 ‘태을’에 기초해서 모든 것을 출발시키셨기 때문에, ‘태을’은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태을’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증산신앙이 한 단계 도약을 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상제님의 진면목을 봐야 우리가 인간으로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을’을 알아야 증산신앙을 도약시킬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렵지만, 알고 보면 쉬운 일입니다. 증산신앙인은 어떤 말씀인지 큰 틀에서는 공감을 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추분에서 동지로 다가서고 있는데요. 우리가 빨리 잠에서 깨어나야 되고, 영화를 보면서 현실을 인식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현실에 바로 부딪혀야 합니다. 영화를 보고 있는 증산신앙인들은 영화를 꺼야 합니다.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상제님과 수부님은 현실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상으로 추분치성 태을도인 도훈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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