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 도훈(道訓)

[스크랩] 태을도 2017 4월 월례치성 도훈 :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천지부모님 말씀”

태을세상 2017. 5. 7. 12:39

태을도 2017 정유년 4월 월례치성 도훈 :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천지부모님 말씀

2017. 4. 29 (음력 4. 4)

 

오늘 도훈을 할게 뭐냐 하면,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천지부모님 말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희망이 있어야 되고 또 용기가 있어야 어떤 어려움도 다 극복할 수 있어요. 특히 상제님 고수부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한테 가르침을 내려주신 말씀들은, 1296백 년이라는 우주의 일원 중에서 딱 한 순간, 후천개벽기인 이 순간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옥황상제의 위(), 옥황후비의 위()에 올라서 하신 말씀이거든요,. 선천 오만 년을 심판하는 말씀이고 후천 오만 년을 여는 말씀이라 이거예요. 유일무이한 말씀이라 이거예요. 그런 말씀 속에서 우리가 선천 오만 년을 매듭짓고 후천 오만 년을 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얻는 거예요.

 

말이 그렇지 일 년 정리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닌데, 오만 년을 정리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일 년을 심는 곡식 종자를 고르는 것도 힘든데, 오만 년을 갈 인간종자를 고르는 것에 얼마나 천지가 신중에 신중을 다하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희망과 용기를 갖지 않으면 이 난국을 돌파하지 못해요. 열풍뇌우불미(烈風雷雨不迷)를 못한다고요. 처음 겪는 일이고, 처음 보는 일이고, 처음 접하는 일 이에요. 선천 오만 년의 상극지리가 만들어낸 독기와 살기가 급살병이 되어서 전 인류를 휩쓰는데, 전무후무한 일이잖아요.

 

이 급살병에서 어떻게 내가 살고, 내 가족을 살리고, 내 이웃을 살려서 후천으로 넘어가느냐. 이제까지 가본 일이 없고 이제까지 경험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정말로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이 요청되는 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희망과 용기를 충만케 해가지고 희망과 용기를 나눠줘야 해요, 사람들한테. 태을도가 증산종단의 중심이고 태을도인이 증상신앙인들의 중심이라면, 증산신앙인들 중에서 우리 태을도인들이 가장 희망과 용기를 가져야 하지 않겠어요? 증산종단의 중심이 태을도이기 때문에, 태을도가 가장 큰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요.

 

희망과 용기는 어디서 나오냐. 상제님 고수부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는 거예요. 그 말씀 속에 마음이 있고 뜻이 있고 믿음이 있고 정성이 있고 공경이 있고 그런 게 다 들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상제님께서 그러시잖아요. “내 말을 익히 들어두라. 익히 들어두었다가 내어 쓸 때는 서슴없이 내어 쓰라.” 우주 삼계에서 가장 희망과 용기가 있는 분이 누구냐. 그것은 천지부모이신 상제님과 고수부님이라는 거에요.

 

상제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주의 삼계도 법도대로 돌아가는 거에요. 태을을 용사하는 주체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에요, 태을 자체도 그런 거예요. 그래서 천주이신 옥황상제의 존재, 고수부님의 존재, 이 존재가 엄청 중요한 거예요. 그런 천지부모님이 당신의 대행자, 후계자를 내서 선천을 매듭짓고 후천으로 넘어간다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상제님 고수부님이 우리한테 의통성업의 대업을 맡겼을 때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냐. 우주 삼계에서 가장 큰 희망과 강력한 무기를 주셨다는 거예요. 상제님이 그러시잖아요.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면 하늘도 오히려 무서워서 떤다.” 희망과 용기를 상제님 고수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을 통해서 상제님 고수부님의 글을 통해서 우리가 깨치면 어떤 상황이 오던 간에, 어렵고 힘들고 심지어 불길 속에 들어가더라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고 불퇴전의 각오로 나갈 수 있다는 거예요. 백절불굴의 그런 강인한 정신력. 오늘 5분 도훈을 통해서, 과연 우리 태을도인들이 천지부모님들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어떤 희망과 용기를 가졌는지 각자 얘기를 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곡우치성 도훈을 하신 충양도인님부터 시작하시죠..

 

충양도인 :

 

천지부모님 말씀 중에 자신의 영혼을 단련시키고 성숙해지기 위해 다음 두 구절은 우리가 시련을 극복하고 복을 위한 자양분인 것 같습니다.

 

@ 시속에 화복(禍福)이라 이르니, 이는 복보다 화가 먼저 이름을 말함이라. 이르는 화를 잘 받아야 복이 이어서 이르느니라. (대순전경 p 324 )

@ 선천에 안락을 누리는 자는 후천에 복을 받지 못하리니, 고생을 복으로 알고 잘 받으라.만일 당하는 고생을 이기지 못하여 애통하는 자는 오는 복을 물리치는 격이니라. (대순전경 p 325 )

 

항상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먼저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열매보다 먼저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고통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심지 않고 거둔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일이건 먼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온전한 궤도에 오르는게 상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통이나 시련을 멀리 하려고 합니다. 고통이나 시련을 얼마나 잘 견디어 내느냐에 따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충덕도인 :

 

상제님 말씀은 항상 저한테는 화두처럼 생각이 되고 모든 것이 저를 일깨우는 그런 말씀이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감명 깊게, 의미 있게 느꼈던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 천지만물이 하늘을 떠나면 명()이 떠나는 것이니, 태을(太乙)을 떠나서 어찌 살기를 바랄 수 있으리오. 태을주(太乙呪)는 곧 약이니, 이 약을 먹지 않고는 살지 못하리라.” (정영규 천지개벽경)

 

@ 너희들도 잘 수련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리라. (대순전경 P94)

 

@ 이제 모든 일에 성공이 없는 것은 일심(一心)가진 자가 없는 연고라. 만일 일심만 가지면 못될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무슨 일을 대하던지 일심 못함을 한할 것이요, 못되리라는 생각은 품지 말라. (대순전경 p335)

 

@ 어느날 고후비께서 조종리 법소에 계실 새, 강사성을 부르시더니 가라사대 …. < 중략>…. 백용기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그대가 학자이니 마음 심() 자를 써보라." ….<중략>…. '마음 심'자가 천하만사의 주간이 되는 바이니, 글자를 잘 보고 잘 생각하여 말하라."  ….<중략>.… "굽어진 활로는 천지 반월용(半月用)으로 쓰고, 기상(其上) 삼점은 선불유(仙佛儒)니라." 하시고, 가라사대 "사람의 부귀영달과 생사순환도 이 글자에 매여 있으니, 그리 알고 잘 지니고 살라." 하시더라. (선도신정경 pp90-91)

 

이것이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증산상제님과 고수부님의 말씀입니다. 제가 증산신앙을 하기 전, 그때가 80년대 중반 경이었죠. 그때는 현실하고 제 마음사이에 괴리가 있었고, 제가 상제님 신앙을 하기 전이라 현실을 읽는 진리를 몰라서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 선천의 유불선을 봐도 상식적인 측면을 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그런 현실이 전개되어서 저에겐 그 현실이 굉장히 고통스럽고 어떻게 보면 좌절을 느끼고 희망을 갖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때 제 생각은, 종교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평생을 살아가면서 느긋하게 장기적으로 풀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20대 후반에 상제님 진리를 OO도를 통해서 만나면서, 증산상제님께서 제시하신 여러 말씀과 진리를 통해서 제가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여러 의문들이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상제님 말씀대로 하면 상생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OO도에서 설명하고 제시하는 상제님 진리를 통해서 상제님 진리와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속 시원히 것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즉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저에게 확실히 와 닿지 않았어요. 물론 그것이 제가 깨닫지 못한 측면도 있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상제님 진리를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하고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태을도를 만나고 나서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진리와 생명의 근본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볼 수 있는데, 간단히 얘기하면 우주에는 태을의 마음이 있고 천주의 마음도 있는데 그것이 내 마음속에 이미 들어있다는 거죠, 본래 태어날 때부터. 그래서 내 마음에 집중하여 시천 태을을 회복하면 되는 일이 증산신앙이라는 확신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제님 고수부님을 통해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봤습니다. 진정한 인간의 원래 모습은 태을도로 살아가는 상생인간인데, 상생인간들이 모이면 상생세상이 됩니다. 인간다운 인간의 전형인 상제님과 고수부님 같은 인간이 되면 지상에 상생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본거죠.

 

인간이라는 것은 본래 받아 나온 태을을 깨달아서 태을의 신성을 천주님과 같은 어진 마음으로 내어 쓰면 상제님과 같은 어진 마음을 가지고 인간다운 인간의 길을 갈 수 있는 거라고요. 그것이 깨친 인간이고 상생입니다. 자신이 시천 태을을 깨달은 다음에 그것을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확대하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우주의 일가가 되는데, 그 세상이 상생세상이고 상생세상은 곧 대동세계이고 조화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이치적으로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을 통해서 증명하고 검증해야 확실한 깨침으로 자리잡아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태을도에서는 마음 닦고 태을주 읽기의 실천으로 깨침을 완성해가고 있는데, 현실 속에서 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가 당면 과제입니다. 또한 제가 알고 깨달은 진리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서 그들도 상생인간이 되어 후천의 행복한 삶을 함께할 것인가 하는 포교의 문제가 또 다른 당면과제입니다.

 

결국 상제님 진리를 통해 제가 얻은 희망은 마음에 집중하면 된다. 마음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깨우침의 자체가 부처님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상제님에 있는 것도 아니고 히말리야의 설산에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내 마음 속에 있다.’ 그렇게 인간의 위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희망을 봤고요, 그 다음은 마음속에 있는 시천 태을을 깨달아 직통길을 열으면 된다. 완성을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비록 현재는 부족함과 모순이 많은 인간들이지만 본래 마음을 찾으면 상제님 고수부님과 같은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하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이루는 방법에 있어서는 일심이면 된다. 성경심을 다해서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상제님의 말씀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일심이면 상제님과 고수부님께서 도와주시고 여러 신명들이 지원해 주시기 때문에 일심을 가지면 반드시 성공하게 됩니다. 이런 걸 통해서 상제님과 고수부님께서 천지공사와 신정공사를 통하여 천지도수로 박아 놓은 후천의 대동 세상, 상생세계가 저를 통해서, 저를 시작으로 이룰 수 있고 이루어진다는 희망과 용기를 봤습니다. 이상입니다.

 

충일도인 :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천지부모님 말씀입니다. 제가 상제님 신앙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을 다스리고 이겨나갈 수 있는 희망과 힘을 얻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 가지 말씀을 항상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중 첫 번째 말씀이

 

@ 시속에 화복(禍福)이라 이르나니 이는 복보다 화가 먼저 이름을 말함이라. 이르는 화를 견디어 잘 받아야 복이 이어서 이르느니라. (대순전경 p324)

 

그리고 두 번째 말씀이

 

@ 선천에 안락을 누리는 자는 후천에 복을 받지 못하리니 고생을 복으로 알고 잘 받으라. 만일 당하는 고생을 이기지 못하여 애통하는 자는 오는 복을 물리치는 것이니라. (대순전경 pp324-325)

 

마지막 세 번째 말씀이

 

@ 하루는 종도들에게 맹자 한 절을 외워주시며 가라사대 "이 글을 잘 보아두면 이 책에는 더 볼 것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러하니라.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 ,필선노기심지(必先勞其心志), 고기근골아기체부(苦其筋骨餓其體膚), 궁핍기신행(窮乏其贐行), 불란기소위(不亂其所爲), 시고(是故), 동심인성(動心忍性), 증익기소불능(增益其所不能) -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의 마음과 뜻을 수고스럽게 하고, 뼈와 근육까지도 고통스럽게 하고, 몸을 굶주려 피골이 상접하게 하고,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생활을 쪼들리게 하고, 하는 일마다 어그러지게 하나니, 이는 그 사람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아견디어내는 힘을 길러, 불가능한 바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려 함이니라." 하시니라” (대순전경 p140)

 

힘들고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경우, 화가 오고 난 뒤 복이 온다는 생각으로 이번 일만 잘 참고 이겨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가지면, 지금의 힘든 상황이 조금은 이겨내기가 쉬워지고 인내심이 생기는 경험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하늘은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만큼 시련을 주시고 이겨나가는 인내심을 기르게 하는 것이, 앞으로 불가능한 바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태을도인으로 상생을 실천하고 살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바보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생각도 들며, 투쟁이 아닌 화합의 길을 가기가 쉽지가 않다는 걸 느낍니다. 나도 모르게 이용당하고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나도 모르게 독기와 살기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납니다. 그 때 위의 말씀을 생각하며 곧 복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며 인내심을 기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희망을 노래하며 태을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태을도인으로 참을성과 인내심을 기르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이상입니다.

 

충희도인 :

 

안녕하세요? 상제님, 수부님의 말씀으로부터 희망과 용기를 얻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상제님, 수부님, 태을도인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희망과 용기를 바탕으로 모두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용기와 희망을 주시는 말씀을 제가 한 번 낭독해 보겠습니다. 강증산과 태을도 61쪽부터입니다.

 

@ “선천에는 상극지리가 인간사물을 맡았으므로, 모든 인사가 도의에 어그러져서 원한이 맺히고 쌓여 삼계에 넘침에 마침내 살기가 터져 나와 세상에 모든 참혹한 재앙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이제 천지도수를 뜯어고치며 신도를 바로잡아 만고의 원을 풀고, 상생의 도로써 선경을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하염없는 다스림과 말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화하며 세상을 고치리라. (대순전경 P298-299)

 

@ “내 세상은 상생의 진리를 실천하리니, 전 세계가 서로 상생하고, 전 인류가 서로 상생하고, 남녀가 서로 상생하고,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서로 상생하고, 가난한 자와 부자가 서로 상생하고, 귀한 자와 천한 자가 서로 상생하고, 모든 덕이 하나로 합하여 통함으로써 크게 어질고 크게 의로운 세상이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33-34)

 

@ “나는 하늘과 땅을 열어 천지를 뜯어고치고, 처음으로 이 땅에 무극대도를 열어 선천의 운을 닫고 조화선경을 열어, 고해에 빠진 억조중생을 건지려 하노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38)

 

@ "내 세상은 조화선경이니 다스림은 조화라, 말없는 가르침과 하염없는 다스림이 될 것이고, 진리는 상생이라, 상극의 이치가 사라지고 죄악이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 세상에는 남녀가 동등한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이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33)

 

태어나서 쭉 자라는 과정에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고생 안하고 자라는 사람이 없겠습니다만, 저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초등학교 때 비로소 기억을 더듬어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을 하셨어요. 그 때가 제가 대략 4~5살 때였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병이 생겨서 친정으로 가셨어요. 저는 충격을 크게 받아서 약 일주일 정도 울면서 지냈어요. 그때 큰어머니께서 저를 돌봐주셨는데, 그때 큰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니 엄마 저그 집(친정)에 갔다! 이제 그만 울어라!” 그 말씀을 듣고 난 뒤로 울음을 그쳤는데, 너무 큰 정신적 충격을 받고 보니 그 시점으로부터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셨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싹 사라졌던 거예요. 그 기억을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회복하다가,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기억이 복구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생모와 아버지가 이혼하고 난 뒤에 아버지가 새어머니와 결혼을 하셨는데, 저는 초등학교때 계모가 저의 생모인줄 알고 있었어요. 기억이 사라졌기 때문에요. 그런데 동네 형들이나 친구들이 저의 어머니가 계모라고 하면서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저는 무슨 소리인가 하고 어리둥절했는데, 커가면서 보니까 그 얘기가 맞는 거예요. 어렴풋한 생모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복구가 되는 거예요.

 

계모께서 잘 대해주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아마 친모였다고 해도 자식을 키우다 보면 한 번씩은 거친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계모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거친 언어표현을 들으니까 상처가 크더라고요. 그리고 이복동생과의 갈등 이런 것도 있고, 그리고 계모와 아버지와의 갈등도 있더라고요. 서로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간에도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계모와 아버지와의 갈등이 저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더라고요.

 

이런 성장과정 속에서 제가 느낀 것이 ‘산다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까!’ 이런 것이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도덕교과서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 예수 그리스도, 공자, 노자, 장자, 이런 분들의 가르침을 간단하게 소개해주는 부분이 있는데, 석가모니 부처가 “인생은 고해(苦海)이다.”라는 말씀이 저에게 가장 크게 와 닿았어요. 저는 ‘맞아!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처럼 인생은 고해야.’하면서 인식을 함께 했어요. 석가부처께서 인생을 통찰하는 가르침이 가슴에 팍팍 와 닿았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때 제가 느꼈는데, 불교의 가르침이 참 크고 훌륭한데, 석가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스님이 되어야 되는데, 스님은 결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좀 이해가 안 되었어요. 불교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면 이론적으로는 아무도 결혼을 안해서 인류의 역사가 끝나버리게 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점이었어요. 다 좋은데 그 하나가 안 맞는 거예요.

기회가 있어서, 교회도 다녔고요.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로 접어들 때 즈음에는 유학의 가르침도 크고 대단하다는 것을 또 알았어요. 대학을 다닐 때 즈음에는 종교가 불굴의 인간을 만들고,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이 닥쳐도 극복하게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유기독교의 가르침이 전부 크고 훌륭한데, 하나씩 안 맞는 것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강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가르침을 배워보니 전부가 잘 맞는 거예요. 글로써 전해온 강증산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가르침을 보고 “맞아! 이것이 정답이야!” 이렇게 해서 증산신앙의 길에 들어섰고, 증산신앙의 길에서 희망을 찾다가 태을도에 들어왔는데요. 태을도에 들어와서 제가 깨달은 것이 결국에는 ‘나와의 싸움이고, 나를 알아야 되는 일이고, 나의 지금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나를 길들여서 태을도인으로 도약시키는 것이 바로 태을도인의 길이고, 이 길을 알려주시려고 강증산 상제님께서 오셨다’라는 것을 탁! 깨달았거든요.

제가 평생을 거쳐서 깨달은 엑기스가 바로 이것인데,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만, 저와 함께 살아온 가족이나 친구나 직장동료와 같은 분들은 이것을 거의 모르고, 전국에서 모여서 지금 여기 둘러앉은 태을도인이 지금 제가 평생을 거쳐서 깨달은 것을 함께 하는 분들이고, 이렇게 태을도가 되어 있습니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하면 더 잘될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직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저희 사무실에, 쉽게 말하면 신병이지요. 예전 같았으면 선배가 후배한테 군기도 잡고 했을 텐데, 저는 태을도인이니까 제가 신병시절에 겪었던 일중에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안합니다. 그런데 신병이 사고를 치면 그 뒷감당은 전부 제가 해야 하더군요. 그때 나와 같은 후배를 받으면 참 좋겠는데, 그것이 제 마음 같지 않는 게 또 현실이라, 그 과정에서 이것 또한 참을성을 길러주시는 훈련을 하는 것이라 생각을 했고요, 동시에 상제님과 수부님은 진짜 참을성이 많은 분이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지에서 우리들의 마음을 전부 감독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저렇게 하면 안되는데, 또 저렇게 하는구나!’ 이렇게 탄식하는 일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천지에서 뭐라고 안하잖아요. 천지의 가르침은 하염없는 가르침이고, 조화로써 가르치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천지부모님께서 참는 일이 얼마나 많으시겠습니까? 인내의 시간을 잘 보내면 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해본 바로는 전부 결과가 좋았어요. ‘네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보자!’ 해서 시험을 하는데, 거의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상제님과 수부님은 하염없는 다스림과 말없는 가르침으로 백성을 화하며 세상을 고치는 분이십니다. 태을도인이 고치기 시작하면 퍼져나가서 빨리 될 수도 있고, 늦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세상이 바르게 고쳐지리라 믿습니다.

 

충정도인 :

 

@ (), ()有命(유명)이면 木石(목석)이라도 爲用也(위용야)니라.

말씀하시기를, "내가 명령을 내리면 목석이라도 쓰임이 되노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64) (임인편 9)

@ (), 當此時(당차시)하면

()賜大道於汝徒之身(사대도어여도지신)하고,

()賜大力於汝徒之身(사대력어여도지신)하야

能當事有餘(능당사유여)하노라.

"이때가 되면 내가 너희들의 몸에 큰 도통과 큰 힘을 주어서, 일을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235) (을사편 8)

 

정국이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세상을 감당하려 마음을 내 보아도 한계를 느끼게 되는 마음에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마음을 잘 가지면 그 마음을 감별해 신인합일로 감당할 능력을 열어주어 일을 감당하게 해 주신다는 상제님의 말씀이 힘이 됩니다. 그래서 후천을 살아가는 치천하의 마음가짐을 닦고 익히는데 집중해야 할 수 있게 힘과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종장님 :

 

‘어려움’ 그것만 보면, 견디기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고통, 외로움, 원통함, 서러움. 그런데 상제님 말씀은 그렇게 고통을 주고 외로움을 주고, 시련을 주고,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이유는 ‘동심인성(動心忍性)’이라는 것입니다.

 

‘동심인성’이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예요. 경험 속에서 이해를 해야 아량도 넓어지고 배려심도 깊어지고 세상물정도 알게 되는 것인데, 희망과 용기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거든요. 절망을 느껴봐야 희망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체념을 해봐야 용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됩니다.

다들 희망과 용기를 찾아다녀요. ‘나한테 희망을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나한테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힘들고 어려울 때, ‘힘들고 어려운 것이 그냥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내일을 준비시키기 위한 시험이라는 그런 확신적인 말씀을 주셨다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많은 분들이 하거든요. 종부님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종부님 :

 

저는 85년도 대학 들어가서 그해 ‘개벽’이란 책을 읽으면서 아마 증산상제님의 존재보다도 증산신앙 단체의 존재를 먼저 알게 되었는데, 그때 개벽책을 통해서 기억에 남는 구절이 ‘이때는 해원시대다. 그리고 급살병이 온다. 그리고 앞으로 지상선경이 펼쳐질 거다.’ 그때 지상선경의 모습을 표현한 것을 보면, 아까 충희도인님께서도 읽어주신 구절인데요. 강증산과 태을도 193쪽 하단에 있는 말씀입니다.

 

@ “후천에는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아니하고 조화로써 중생을 다스려 화할지니, 벼슬아치는 직품에 따라 화권이 열리므로 분의에 넘는 폐단이 없고, 백성은 원통과 한과 상극과 사나움과 탐심과 음탐과 노여움과 모든 번뇌가 그치므로, 성음소모(聲音笑貌)에 화기가 무르녹고 동정어묵이 도덕에 합하며 쇠병사장(衰病死藏)을 면하여 불로불사하며 빈부의 차별이 철폐되고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이 요구하는 대로 빼닫이칸에 나타나며 모든 일은 자유욕구에 응하여 신명이 수종들며 운거(雲車)를 타고 공중을 날아 먼데와 험한 데를 다니며 하늘을 나직하여 오르내림을 뜻대로 하여 지혜가 밝아서 과거 미래 현재 시방세계의 모든 일을 통달하며 수화풍(水火風) 삼재(三災)가 없어지고 상서가 무르녹아 청화명려한 낙원으로 화하리라. (대순전경 p306~307)

 

생존경쟁과 전쟁이 지금도 넘쳐나고 있는 상극지리의 세상, 상극지리의 이 땅에 이러한 낙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너무나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또한 정말로 우리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어서 마음을 붙들어 매지 않을 수가 없는 그런 것이었죠. 그래서 증산신앙 단체를 갔었는데, 거기 가서는 가장 입에 달고 산 구절이 다들 너무나 잘 아시는, 강증산과 태을도 296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 “사지당왕(事之當旺)이 재어천지(在於天地)요 필부재인(必不在人)이라. ()이나 무인(無人)이면 무천지고(無天地故)로 천지생인(天地生人)하여 용인(用人)하나니 이인생(以人生)으로 불참어천용인지시(不參於天地用人之時)면 하가왈인생호(何可曰人生乎).

" 일이 크게 융성하여짐은 천지에 달려있지 사람에게 있지 않느니라.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그 존재이유가 없는 고로 천지가 사람을 내어 쓰나니,

이렇듯 천지가 사람을 내어 크게 쓰려고 할 때에 천지대사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으로 태어난 의미가 있다하랴." (대순전경 P346)

 

이 구절을 붙들고서 천하사에 매진하게 되었는데, 하지만 그때 신앙이 너무 겉으로 드러나는 명분에 치우치다 보니까 우리의 실상은 현실과 우리의 목표 사이에 괴리가 많았지요. 그곳을 정리하고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태을도를 해오고 있는데, 저는 태을도 하면서 고생을 더 많이 해서인지 ‘동심인성(動心忍性)’의 그 절절한 의미를 정작 태을도에 와서 깨우쳤습니다. 고통이란 게, 이게 끝이 보이면 사실 견딜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이 없다고 생각이 되면 사실 절망에서 헤어나오기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마흔다섯 살 무렵에 심각하게 고통 속에서 한 달간을 고민으로 용맹정진해 봤는데, 그때 내린 결론이 ‘아,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까 고민인지 절망에서 벗어나지더라고요. 그때 상제님이 일러주신 ‘동심인성’이란 단어가 정말 가슴으로 와닿았습니다. 그때 죽음을 생각할 만큼의 그런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더 넓어지고 그 다음에 또다시 나에게 다가오는 고통들도 감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한 번씩 과연 내가 제대로 길을 가고 있나, 불안감이 있을 수 있죠. 고수부님 말씀입니다. 정묘년(1927) 이월 초삼일 경칩절에 치성을 마치신 후 참석한 도인들에게 하신 말씀인데요.

 

@ "이제 도인대중은 들으라. 오직 일심으로 신봉하라. 내가 너희들의 신세를 그르치지는 않으리라. 오직 증산과 내가 합성하여 심리한 일이니 안심할 지니라. 너희들은 복 많은 자이니 팔 짚고 헤엄치기니라." (선도신정경 p137)

 

가끔 힘들어질 때면 이 말씀을 붙들고서 애써 또다시 힘을 내곤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불안감을 해소한다, 동심인성이란 단어로 나를 위로한다, 이것만 가지고는 계속 이 길을 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내가 지금 이 시기에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냐, 나의 정체성이 확립이 될 때 그걸 동력 삼아 계속 그 길을 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상제님이 하신 말씀 중에

 

@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대순전경 p323)

 

그리고 고수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 “나는 낙종물을 맡으리니, 그대는 이종물을 맡으라. 추수할 자는 다시 있으리라. (천후신정기 pp20-21)

 

우리는 손에 살릴 생자를 쥐고서 득의지추의 시절인연을 만나서 추수를 하기 위해 이 길을 가는 사람들이죠. 이렇게 나의 역할을 붙들고서 가는 건데, 태을도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마음에 천착하게 되죠. 그래서 제가 애초에 증산을 알게 되었던 후천선경에 대해 묘사해주신 말씀 밑바닥에 전제되어야 하는 마음의 문제, 그것이 요즘의 제게 계속 화두가 되고 저를 앞으로 가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상제님 말씀입니다.

 

@ "한 사람이 한마음이면 한 사람이 나를 볼 것이요, 천하 사람이 한마음이면 천하 사람이 나를 보리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335)

 

우리는 태을도를 만났고, 단주수명자를 통해서 천지부모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대강 알게 되었죠. 그래서 단주수명자를 통해서 알게 된 천지부모님의 마음과 내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일, 그것이 일심일 것이고 성경신일 것입니다. 아까 충희도인께서 혼자보다 여럿이서 하면 더 잘될 것이라 하셨는데, 완벽하진 않더라도 지금 여기 모인 만큼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한마음을 이룬 거죠. 천지부모님과 한마음을 이룬 겁니다. 이것이 점차 넓혀져서 천하사람이 한마음이 되면 그때 천하사람이 전부 천지부모님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고, 그 세상이 우리가 그렇게 바랐던, 제가 처음 증산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그 지상선경이 천하사람의 한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질 겁니다. 그래서 천하사람이 한마음이 되는 그 순간을 목표로 해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종장님 :

 

바퀴를 형상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다 중요하겠지만, 바퀴 한가운데를 유지하는 바퀴 축을 형성하는 그 기능이 없으면 바퀴 형태도 유지가 되지 않고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거든요. 우리가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세상 사람들한테 급살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주려면 마치 바퀴의 중심, 핵심 축 역할을 우리 태을도인들이 해야 된다고요. 세상은 무엇으로 굴러가느냐. 그것은 결국 희망과 용기이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는 희망과 살아갈 용기가 없으면 절망하고 자포자기하고 체념하고 스스로 무너지거든요.

 

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선구자가 되고 선각자가 되느냐. 그것은 자기 스스로 본체에 대한 깨침, 본성에 대한 이해, 또 내 본분에 대한 확실한 각성,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세상이 다 외면하고 세상이 다 나를 손가락질하더라도, 진리와 생명의 길을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급살병에서 천하창생을 구해야 하는 일은 보통 이상의 용기와 희망을 가지지 않으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부분 주저앉고 절망하고 체념하고 말아요. 우리 태을도인들은 특히 속육임들은 상제님 고수부님의 대행자들이기 때문에, 상제님 고수부님과 같은 희망과 용기를 항상 가져야 된다고요.

 

천지를 주재하는 주재자가 상제님 고수부님인데, 상제님 고수부님이 희망과 용기을 잃는 순간에 이 세상은 암흑천지가 돼버린다고요. 상제님 고수부님께서는 무극대도를 깨달았기 때문에, 태을도를 깨치셨기 때문에, 희망과 용기를 잃을래야 잃을 수 없어요, 진리와 생명은 희망과 용기의 길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무극대도인 태을도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 갈수 있는 능력이 있단 말이에요. 상제님 고수부님이 그것을 보여주셨고, 그 길을 밝혀주셨고, 또 그 길을 자세하게 우리에게 말씀과 글로 남기셨다고요.

 

그래서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을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상제님 고수부님의 글을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러다 보면, 상제님 고수부님으로부터 오는, 상제님 고수부님이 가지고 계신 용기와 희망이 우리에게 전해진다고요. 불굴의 용기, 태양처럼 밝은 희망, 그것이 꽉 차오른다고요. 희망과 용기가 있을 때 희열을 느끼는 거라고요. 내 존재에 대한 희열,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환희. 태양이 얼마나 밝아요. 희망은 밝은 거예요. 용기는 뚜렷한 거예요. 태양이 떠있는 것, 이것이 얼마나 뚜렷해요. 밝고 뚜렷한 길이 희망과 용기의 길이라고요.

 

세상사람들이 다가오는 급살병에서 죽어가는데 그걸 모르고 있다고요. 또 증산신앙인들이 심법신앙을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개벽신앙과 도통신앙을 해오다 보니까, 상제님과 고수부님에 대해 때로는 실망하고 좌절하고 체념하고, 심지어는 상제님 고수부님을 손가락질한단 말이에요. 엊그제까지만 해도 상제님 고수부님을 위해서 몸을 바치겠다고, 목숨을 바친다고 했던 사람들이 개벽과 도통신앙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거라고요. 태을도인들이 바퀴의 축이 돼서, 세상의 축이 돼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한 사람이라도 더 급살병에서 구해내야 하는 일에 매진해야 되겠습니다. 이상으로 태을도인 5분도훈을 마칩니다.


출처 : 태을도(太乙道) 대시국(大時國)
글쓴이 : 생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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