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법소 2016년 병신년 백로치성 도훈 “구체화의 힘”
양력 9월 7일 (음력 8월 7일)
올해는 올림픽이 있는 해였습니다. 올림픽에서 요번에 조셉 스쿨링이라는 21살의 수영선수가 100m 접영에서 싱가포르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땄더라구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이 선수가 12살 때 그 당시 수영의 황제였던 펠프스 선수를 싱가포르의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나서 사진도 찍고 하면서 펠프스를 우상으로 삼고 그를 닮은 수영선수가 되어야 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올해에 그 펠프스를 능가하면서 금메달을 따게 된거지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경우가 있는데 유엔 사무총장을 하시는 반기문 사무총장의 사례가 있습니다. 반기문 총장이 고등학교때 우리나라에서 4명을 선발해 미국에 견학을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때 반총장이 선발이 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미국에 가서 연수도 받고 케네디 대통령을 직접 만날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그가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에 있어서도 항상 이렇게 자기가 사표로 삼는, 모범으로 삼는, 하나의 우상으로 삼아 닮으려고 하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을 통해서 자기 꿈을 구체화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요즘 우리가 스마트폰을 다들 하나씩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만 지금 형태의 스마트폰이 처음 나온 것이 2007년경에 나온 아이폰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그 전에는 미래의 컴퓨터의 모습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나온 개인용 컴퓨터는 책상위에 올려 놓고 쓴다 해서 데스크탑이라 불렀었고 그러던 것이 소형화되어 무릎위에 올려 놓고 쓸 정도다 해서 랩탑이라고 노트북형태의 컴퓨터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소형화가 되어 손바닥위에 올려 놓고 쓸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막연한 추측들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으로 어떤 식으로 인터페이스를 하고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컴퓨터가 소형화되어 휴대용 컴퓨터가 될거라 예상을 했었는데 오히려 핸드폰이 고성능화 되면서 핸드폰이 손안의 컴퓨터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애플에서 처음으로 손가락으로 화면 터치를 통해서 프로그램을 실행을 하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구현을 한 것이죠. 그 이후로는 모든 핸드폰 제조업체들이 우후죽순 그 방식을 따라 만들기 시작을 한 거지요. 지금의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사실 모든 가전제품들의 기능을 흡수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화기 기능뿐아니라 컴퓨터의 역할, TV 역할, 네비게이션 역할, 시계역할도 하고, 계산기 역할도 수많은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군가 어떤 막연한 이상을 구체화를 시켜 놓으면 모든 사람이 쉽게 따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조셉 스쿨링이나 반기문 총장의 경우도 막연한 이상을 가지고 있다가도 그런 이상을 구체화한 실체화한 사람을 만남으로써 뜻을 굳히고 모습에 대한 구체성을 가지기에 더 쉽게 이룰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같은 경우도 그런 하나의 구체화된 것이 생김으로써 누구나 쉽게 따라서 모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항상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또 어떤 인간상이어야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이 가능한 것인가? 인류 역사에 수많은 종교가와 사상가와 철학자와 정치가들이 각자의 신념과 이념과 철학으로 방향을 제시를 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세상이 점점 극악해지고 교만해지고 잔포해져 진멸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시면서 상제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중고 이래로 교화와 다스림이 분리되면서 진법을 보지 못했다’고 한마디로 정리를 해 주십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가 머리로 아는 진리와 몸으로 살아가는 현실적 삶이 따로 따로 였다는 것입니다. 진리적으로 자유와 평등과 어짐과 사랑과 자비가 옳다는 것을 알고 외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의 현실은 차별과 무력과 강압과 폭력의 방식으로 꾸려져 나갑니다. 이것은 특정 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삶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등이 옳음을 알아도 인종을 차별하고 못사는 국가를 멸시하고 못배운 사람을 무시하고 빈부의 차이로 사람을 은근히 깔보는 마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어짐과 사랑과 자비가 미덕임을 알지만 사소한 남의 잘못도 용서하지 못하고 나무라고 쉽게 비난하고 또 남의 어려움에 눈감고 내 몫을 챙기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우리가 인간존엄과 평등과 자유의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정당간이나 조직간 개인간의 실제적 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보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명하에 정당간 개인간에 상극적 언행과 다툼을 당연시 하는 현실입니다. 겉으로는 민주라는 그럴싸한 모습이지만 실제의 현실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너무나 진리와 동떨어진 상극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외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 속에서 내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조직을 사람을 과연 상생의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상제님의 말씀은 우리가 아는 바를 학문적으로 진리적으로 지식적으로 아는 바를 일상생활 속에서 녹아들여 실천을 온전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화와 다스림이 일치가 되는 진법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보여주신 인간상은 위무로써 하지 말고 시천의 마음으로 존경의 마음으로 화합과 포용과 사랑으로 모두를 존중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증산상제님은 완성된 인간의 언어동지를 보여주심으로써 어떻게 보면 완성된 인간의 전형을 구체화 시켜서 처음으로 보여주신 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상제님은 자신의 일을 인간사업이라고 하셨습니다. 고수부님도 증산을 증산해야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결국 인간사업이라는 것은 증산을 닮은 수많은 인간들을 만들어 내는 교화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엔 상상을 못하다가 처음으로 스마트폰 모양으로 구체화가 되었을 때 수많은 스마트폰들이 생겨났듯이 우리가 감히 완성된 인간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 확신이 없고 생각을 못하고 있을 때에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그 프로토타입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완성된 인간으로써 가질 수 있는 권능의 힘을 보여 주심으로써 더욱 믿음이 가는 것입니다. 상제님은 너희들도 잘 닦으면 나처럼 전지전능 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 한번 구체화 시키는 것이 힘들지 일단 한번 구체화 되면 그것을 닮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다만 시간의 문제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나의 일은 한사람만 있어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증산신앙인들의 자향점은 결국 각자가 증산의 또 다른 분신이 되는 것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 보여주신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모습, 상생의 모습,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가정에서는 어떻게 하고, 사회에서는 어떻게 하고, 하는 이런 모습들에 초점을 맞춰서 내가 과연 일상생활에서 인간다운 올바른 모습을 실천하고 있는지 되돌아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도훈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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