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인 도훈(道訓)

[스크랩] 처서치성 태을도인 도훈 "진리는 항상 사랑의 모습으로 온다"

태을세상 2016. 8. 24. 10:09

진리는 항상 사랑의 모습으로 온다

2016년 8월 23일(음력 7월 21일)

 

 

  연일 불볕 더위로 뜨겁던 서울이 처서날 때맞춰 내린 소나기로 모처럼 해갈하며 숨을 돌렸습니다. 지난 주 시골에서 제법 패인 벼이삭을 보고 왔는데 그곳도 마침 비가 내린다 하니, 벼이삭이 빗줄기에 살랑살랑 몸을 흔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서울에서만 열대야가 30일이었다는데, 그토록 기승을 부렸던 무더운 여름이 이렇게 서서히 갈 준비를 하나 봅니다.

 

  아침부터 후텁지근하게 더웠던 오늘, 조간 신문 국제면에 “폭탄 조끼 입은 IS 소년 대원 자폭 직전 체포” 라는 제목으로 사진 2장이 실렸습니다. 현지 시각으로 21일,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에서 자살 폭탄 조끼를 두른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소년 대원이 폭탄 테러를 저지르려다 다행히 범행 직전 경찰에 발견돼 무산되는 장면 사진이었는데, 체포 과정에서 격렬히 저항하다 울음을 터뜨리는 사진 속 얼굴은 고작 12-13세 정도였습니다. 고작 12-13세의 테러 대원이라니, 앳된 얼굴에 기가 막히면서도 벗겨진 상체의 말랐지만 단단한 복근을 보며 소름이 돋았습니다.

 

  얼마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을까. 울음을 터뜨렸다는 설명에 결국은 아이이구나 하면서도, 저 어린 아이한테 어떻게 얘기했기에 저도 죽고 다른 사람 생명도 빼앗는 자폭 테러에 겁 없이 뛰어들게 만들었을까. 저 아이는 얼마나 확신에 찼기에 테러를 저지하는 여럿 경찰들에게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날인 20일 터키의 ‘가지안테프’라는 도시에서도 마을의 결혼식장에서도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100명 가까이 부상을 당하는 자폭 테러가 있었습니다. 쿠르드계가 많이 사는 마을에서 이루어진 쿠르드족의 결혼식이었고, 종족 종교간 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테러였다는데, 이 사건의 용의자도 IS 소속 12-14세 정도의 어린이라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순진하기에 더 위험한 아이들이 ‘칼리프의 아이들’이란 소년병 부대에서 테러 요원으로 양성되고 있습니다. IS 뿐 아니라, 보코하람, 알카에다,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등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이 어린이를 무기로 삼아 자살 폭탄 테러로 내몰고 있다고 합니다.

 

  종교의 목적은 선의 완성에 있다고도 하고, 또 인간의 행복에 있다고도 합니다. 어찌 됐든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특정한 종교를 믿고, 그 종교를 통해 위안을 받고 살아갈 이유와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옳다고 하는 생각이 지나쳐서 ‘오직 내가 믿는 종교만이 옳고, 유일한 선(善)이다’ 라는 독단에 빠져서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종교’는 한자로 마루 종(宗)자, 가르칠 교(敎)자를 씁니다. 경배의 대상,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종교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진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전적으로는 ‘초월적인 신(절대자)을 믿고 숭배하여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문화의 총체적인 체계’를 말하며, 종교는 우리들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니라 이 세계가 아닌 것, 이 세계의 타자(他者)에게 사고나 행동의 중심을 두기에, 인간세계에서 교리체계를 검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따르는 사람의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믿음에 있어서도 맹목적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진리성에 있어서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포용력과 사랑입니다.

 

  산마루에 올라가면 밑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한 눈에 다 들어오듯이, 으뜸가는 가르침일수록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존재들을 다 포용하는 넉넉한 품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만상(萬象)들을 관통해 역사(役事)하는 섭리를 내포하고 있어야 진리적인 종교라 할 것이고, 진리성이 있다면 당연히 만상을 끌어안고 그 존재들의 필연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종교를 진리라 할 수 있으려면, 그 종교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음과 양이 생성되고 그 음과 양이 사랑으로 짝을 이뤄 생명을 만들어냅니다. 사랑으로 생명을 만들고, 사랑으로 생명을 길러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그 사랑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기에, 모두를 아우르는 종교 또한 사랑인 것이지요. 진리도, 진리를 담은 종교도, 인간세계에서 보기에 초월적일 수는 있으나 이 우주 안에 존재하기에 그 섭리 자체를 벗어날 순 없습니다.

 

  사랑의 섭리를 벗어나면 진리가 아닙니다. 어떤 종교이든 진리성을 가져야만 종교라 할 수 있기에, 진리의 속성인 사랑이 없다면,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면, 다른 생명을 파괴하고 상처를 주며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그 종교는 종교가 아니고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본질도 사랑이며,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사랑입니다. 다만 진리적인 사랑이라 하려면 한 개체의 물성(物性)에 집착하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넘어서야겠지요. 증산상제님 말씀에 "나를 괴이고자 하면 먼저 네 부모를 괴이고, 나를 공경하고자 하면 먼저 네 형제를 공경하라. 가까운 것을 잊어버리고 먼 것을 능히 가까히 못하리라."(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60-261)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족 간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감정을 더 깊은 영성으로 승화시켜 가족을 사랑한다면, 진리적인 사랑이 가족부터 이루어져 나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족에 대해 진리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점차 이웃으로 확대되어 마침내 세계일가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부터 반성할 게 너무 많습니다. 평소에 자신을 차가운 편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거였구나. 상제님 진리를 붙들었다면 당연히 따뜻한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아직도 관념이 많았구나 하고 말이지요. 자식들에게 남편에게 부모님에게, 따뜻한 엄마가 아내가 딸이 며느리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따뜻하기보다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잘 성장해준 자식들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저를 잘 견뎌준 남편도 미안하고 또 고맙습니다. 저에게 여전히 신뢰를 주고 계시는 시아버님, 저를 항상 웃음으로 대해주시는 친정어머니께도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부터 바뀌어야 하는 거였습니다. 역시나 마음 닦는 게, 마음 바꾸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하는 걸 요즘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말과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항상 헤아려, 관심을 갖고 들어주겠습니다.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겠습니다. 상대방의 눈물을 닦아주겠습니다. 항상 진정성을 가지고 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뭘 도와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다가가겠습니다.

 

  한 순간에 되지는 않겠지만, 계속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상제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진심으로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리는 본질도 사랑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도 사랑이라는 것을, 상제님 진리는 사랑임을, 항상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태을도(太乙道) : 태을궁 용봉서신(太乙宮 龍鳳書信)
글쓴이 : 새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