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 수원법소 경칩치성 도훈 : “접붙이기”
2016년 3월 5일 (음력 1월 27일)
오늘이 경칩인데, 예전에 상제님께서 약장을 만드시고 전주에 약재를 가져오실 때에 마침 비가 오니까 “이는 약탕수니라” 하신 적이 있는데, 오늘 비도 오고 마침 전주에서 충원도인께서도 오시고 해서 참 반갑게 생각이 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애들도 봄방학이고 해서 가족들 데리고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몇 년전부터 심어 놓았던 나무들의 가지치기도 할 겸해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에 저희 집에 과일 나무가 되게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이것 저것 많이 심으셔서 밭둑마다 복숭아 나무, 자두 나무, 감나무 등 철마다 과일이 떨어질 날이 없었는데, 특히나 자두가 많았습니다. 자두가 익을 때면 친구들 데리고 와서 같이 따서 먹기도 하고 선생님께서 좀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친척들도 나누어 먹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두라도 나무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더라구요. 품종이 같더라도 그런 맛의 특색이 있더라구요. 그때 나무들이 이제 다 수명이 되어 없어졌는데, 제가 우리 애들을 생각을 하니까, 제가 어릴 때는 철마다 그런 즐거움이 있었는데, 애들한테 그런 즐거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제가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 보니까 그런 육체적 노동이나 단순작업들 이런 것들이 제가 원하는 것, 제게 맞는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구요. 사회생활속에서의 치열한 삶이 좀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묘목을 인터넷을 통해서 주문을 하는데, 옥천에 이원면이라고 하나의 면 전체가 묘목 단지인데 전국 묘목의 80~90%가 다 거기서 공급된다고 하더라구요. 몇 년전에 구해서 심은 복숭아 나무가 있는데 2년전부터 복숭아가 달리기 시작해서 작년에 첨 맛을 보게 되었는데 묘목을 잘 샀는지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제일 맛있는 복숭아 맛을 본거에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이걸 접을 붙이자. 이런 맛은 있을 수 없다 하시면서.
저희 밭둑에 보면 털복숭이라고, 까칠복상이라고도 하는데, 그냥 복숭아씨가 땅에 떨어져 그냥 자란것인데, 여기서는 굵은 복숭아가 안 달리고 작고 털이 복슬복슬한 볼품 없는 그런 복숭아가 달려요. 그런데 이 나무에다가 맛있는 복숭아 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이 나무에 접을 붙이면 그 가지에서는 맛있는 복숭아가 달리는 거죠. 그래서 올해 계획은 식목을 전후로 해서 접을 붙이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접붙일 생각을 하면서, 상제님 말씀에 우리 일은 접붙이듯 된다는 말씀도 있고 한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1년인 1원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무가 열매를 맺듯이 우주의 열매인 사람의 마음의 품성이라는 열매를 맺어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도 보면 몸뚱이는 거의 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유전자도 99.9%가 비슷한데도 그 각각의 사람의 열매는 보면 그 맛이 다 다르거든요.
상제님께서 만사의 주간이 마음이라는 말씀도 하셨고, 저도 마음공부를 하면서 마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데, 마음의 조화라는 것에 대해 실감을 하게 되더라구요. 예를 들어 제가 어디다 집을 하나 짓고 싶다라는 마음을 내게 되면 언젠가 없던 그런 집이 하나 생기게 되는 것이거든요. 뭐를 하더라도 내가 마음을 일으키면 어떤 결과를 창조를 하게 되거든요. 그런 것이 새삼스럽게 신기하게 와 닿더라구요. 내가 마음으로 밥을 생각하면 밥이 나오고 똥을 생각하면 똥이 나오겠지요. 밥을 만들면 사람들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지만 내 마음으로 똥을 만들어 내면, 그 똥이 시간이 지나서 거름으로 쓰일 수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거든요. 그래서 사람이 마음으로 악을 생각하면 악이 나오는 것이고 마음으로 선을 생각하면 선이 생기는 것이거든요. 정말 그야말로 생각되로 되는 것이거든요. 저는 마음의 작용을 돌아보면서 정말 도깨비 방망이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우리가 같은 사람의 육신이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먹는냐에 따라서 내가 아름다운 세상에 일조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악한 세상에 일조를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근데 이 마음이라는 것을 보면 타고난 어떤 경향성도 있겠지만 결국은 이식이 되어지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상극세상속에서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잘못 배워온 마음씀이 계속 이어져 가는 것을 제가 많이 보게 됩니다.
상제님 일이라는 것도 천주의 마음, 시천의 마음을 몸에다 이식을 하면 모두가 그런 천주의 조화를 부릴 수가 있고 천주님처럼 이 천지의 화육에 기여하고 동참하는 존재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죠.
접붙이기라는 것이, 줄기에는 물관과 체관이라는 것이 있는데 줄기를 잘라보면 가운데 부분에 동그랗게 있는 부분이 물관이라고 해서 뿌리에서 올라온 물과 양분이 올라오는 관이고 물관 주위로 동그랗게 있는 부분이 체관이라고 해서 잎에서 만들어진 영양분이 전체로 공급되는 부분입니다. 가지를 잘라서 물관은 물관대로 체관은 체관대로 이어서 통하게 하고 비닐로 묶어 둬서 그게 살아 붙으면 접이 붙는 것이거든요.
우리도 우리의 몸에 상제님의 그 마음줄을 받아 이으면 영양분이 통하듯이 태을이라는 그 순수하고 밝고 맑은 기운을 받아 내려서 우리 몸이 태을의 열매로써 열매를 맺어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공부를 하다 보니 어떤 생각이 드냐 하면, 우리 몸이라고 하는 것은 관성이 큽니다. 보수성이기도 한데. 마음은 어떻게 해야겠다하고 방향을 바꾸려고 하지만 몸은 기존 가던 방향을 고수하려고 하거든요. 마음은 담배를 끊으려해도 몸은 담배를 찾거든요.
반대로 마음이라는 것은 보면 즉흥성이 있고 휘발성이 있어요. 마음 먹기는 참 쉽거든요. 무슨 마음이고 마음먹기는 그야말로 마음대로에요. 하지만 지속성이나 지속성은 떨어지는 것이죠. 제 아무리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해도 어느덧 마음이 다시 풀어지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가 버리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한참 열심히 수행하고 공부할때는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하지 할 정도로 깨달음도 생기고 하다가도 몸이 게을러지고 하다보면 또 원위치가 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른 마음이 되거든요.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도 몸도 상극에 익숙해져 있는 체질인데 우리가 상제님을 따르면서 상생세상을 만들어가고자 내 마음을 바꾸고 말과 행실을 바꾸어야 한다고 마음을 먹지만 내 마음의 휘발성이 의지를 희석시키고 내 몸의 상극적 관성이 나를 상생으로 바꿔나가는데 또 걸림돌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 태을도에서는 항상 마음닦고 태을주라고 말하는데 일단 마음을 상생으로 가지고서 마음을 닦는게 시작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태을주를 읽는다는 것은 내 몸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거든요. 몸과 마음을 편안함에 길들이는 과정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문이라는 것이 주문의 뜻이 가지는 의지적 방향성도 있을 것이고 주문의 소리가 가지는 파동적 주술성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주문 수행 과정에서 일정하고 안정된 호흡을 유지함으로 인해서 몸의 생리적 작용을 안정시켜서 그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태을주 수행을 통해서 몸의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런 편안한 몸의 상태에서는 또 그런 편안한 마음의 상태가 또 유도가 되어 지더라구요.
편안함에 길들어진 몸은 그것이 또 관성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마음을 편안함에 붙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체질이 바뀌게 되면 오히려 몸의 관성이 마음의 단점을 커버해주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떤 의지가 필요합니다. 몸이 길들여 질때까지는 몸이 걸림돌이지만 몸이 길들여지면 다시 우군으로 작용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상극에서 상생으로 바뀌는 과정은 처음에는 불편한 과정이지만 상생의 체질을 얻게 되면 상생의 순환이 가능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극의 악순환도 장구하고 상생의 선순환도 장구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처음은 시작은 힘들지만 마음닦고 태을주를 읽는 과정은 필수적이고 지극한 과정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장님께서 받으신 천명이 "너의 지금 이 마음을 세상에 전해라" 였듯이 사람들에게 증산상제님의 그 마음만 잘 접붙여 이식하면 모두가 증산상제님과 같은 우주의 열매로 증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제님의 천하사라는 것도 그 상제님의 마음, 상생의 마음, 그 천심을 우리 몸에 접붙여서, 물관 체관을 이어지면 물과 영양분이 유통되듯이 그렇게 태을맥을 이어서 아름다운 복숭아 열매를 맺어내서 그런 태을체의 인간 열매들이 가득한 도화낙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 도훈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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