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광장

[스크랩] 단주 실명제(丹朱 實名制)

태을세상 2014. 3. 13. 19:26

  얼마전 끝난 소치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을 보면서 심판의 판정이 영 아쉬웠더랬습니다. 스피드스케이팅 같은 기록경기와는 달리 피겨스케이팅은 심판에 따라 같은 연기에도 다른 점수가 나올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있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꽤나 석연찮은 점이 많았기에 뒷말이 유난히 무성했더랬지요. 제가 보기엔 김연아가 나오는 여자 싱글도 그랬지만, 페어도 좀 그랬습니다. 물론 여자 싱글의 판정이 압권이었지요. 점프의 종류를 그토록 세세하게 구분해놓고 엄격하게 판정해왔던 과거의 판정들을 한순간에 무색하게 만드는, 누가 봐도 객관적이지 못하고 편파적인 판정들을 보면서 화가 난다기보다 오히려 실소가 나올 정도로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심판들에게 자기 이름을 걸고 실명으로 채점하게 했어도 저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자기 이름을 걸게 하면 두고두고 기록으로 남기에, 누가 봐도 '이건 아닌데..'하는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익명성 뒤에 숨어 온갖 스펙트럼을 그리는 인터넷 악플처럼, 피겨판정도 일부 심판이 무기명(無記名)을 최대한 악용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미 지난 얘기를 붙들고 설왕설래해서 열심히 뛴 선수들 공연히 심란하게 만들자는 건 아니지만, 이후부터는 모든 경기에 자기 이름을 걸고 공정하게 채점하도록 '채점실명제'를 실시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 그런 의견의 신문기사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국민들이 뽑아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믿고 뽑아준 국민을 의식하면서 제대로 투표하게끔 법안통과 때 기명으로 전자투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요근래 공무원들도 자기직분에 성실하게 책임을 지게끔 정책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는 줄 압니다.

 

  우리 태을도인들은 태을도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를 '단주수명자'로 받아들이고 교리적으로도 그렇게 내세웁니다. 그걸 외부에서는 대두목놀음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이미 처음 상제님을 만난 곳에서 그 곳 교조나 교주를 'O상제'나 'OO상제'라고 한다든가, 'OO율사'로 칭하다가 더나아가 'OOOO사체'라 하여 타 단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으로 끌어올려 신격화시키며 신도들을 맹종하게 만드는 것에 질린 나머지, 뭉뚱그려 대두목을 칭하는 것은 다 잘못됐다, 난법이다 라고 애초에 규정짓고 더이상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천명을 받아 맥을 잇는다고 나섰다면, 결국은 천명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규정해달라 사람들은 요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도자의 정체성이 바로 그 도판의 교리의 큰 틀을 형성하고 무엇보다 상제님도판에서 가장 중요한 연맥을 규정짓는 것이기에, 그 도판의 교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도 그러하고 내가 이 도판을 선택할 건지 말 건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곳은 단순히 상제님진리를 공부하기 위해 뜻이 맞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부방이 아닙니다. 상제님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법을 만나 새사람으로 거듭 태어나 상제님 고수부님의 정신을 제대로 살려 그 일을 온전히 해내기 위해, 천명자를 중심으로 모여 준비하는 곳입니다. 태을도의 천명자는 1995년도에 천명을 받고서, 내가 왜, 그리고 누구이길래 이 천명을 받았는지, 받은 천명을 갖고 내가 뭘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준비해서 1998년, '태을도'라는 이름으로 기두하였습니다.

 

  가끔 단주수명자임을 증명해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홍길동 보고 '왜 네가 홍길동인지 증명해보라.'고 억지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되면 자연히 밝혀질 부분입니다.

 

  첫째, 그때까지는 나를 믿고 또 이 인연을 만들어주신 상제님 고수부님를 믿고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없다면, 그것은 거꾸로 자신에 대한 불신(내지 불안), 상제님 고수부님에 대한 불신이 아닌지 스스로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런 믿음 없이 상제님천하사는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본인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본인 스스로 깨닫거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나 만들어가는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하늘은 그 운수를 당연히 거두어갈 것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시간의 흐름 속에 그 정체성 부분이 어떻게 현실속에서 이화되어가는지 냉정히 관망하며 판단할 일이지, 미리 예단하여 비난하는 것은 도인의 할 바가 아닙니다. 맞다고 생각하면 동참하거나 일단 들어와 알아보면 되는 것이고, 아니다 싶으면 떠나면 되는 것이지요. 판단이 힘들다면 바깥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지켜보면 되는거구요.

  

  셋째, 난법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 지도자를 (내놓고, 아니면 교묘하게) 신격화하는가.

둘,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심법을 지도자가 올바로 깨쳐서 신도들에게 제대로 전해주는가.

셋, 지도자의 언행이 일치하며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않는가. 무엇보다 정음정양을 몸소 실천하는가.

넷, 신도들을 현실 속에 착근하게 하며 신앙적으로 홀로서기를 시키는가.

왜냐하면 '정음정양'의 '인존시대'를 맞이하여 '성사재인'하는 의통성업이므로, 지도자나 따르는 도인들이나 예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리를 보면, 예수는 유일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하여 원죄로부터 자유로운 예외적인 인간이며,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로서, 신과 인간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메꿀 구원의 중보자로서, 종국에는 하나님과 삼위일체를 이루는 하나님과 동격의 정체성을 가졌습니다(삼위일체설이 정설이 되면서, 예수는 곧 하나님이 되었지요). 교황은 그런 예수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약속받은 베드로의 맥을 잇는 자(者)라는 정체성으로, 세속의 권력에서 벗어나 성스러움을 지키는 자로서 막강한 권한을 대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확고한 정체성이 있기에, 죽은 예수나 산 교황이나 세속을 초월한 종교적인 상징성을 갖는 것이지요. 불가에서 법맥을 잇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은 석가부처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출발해 '법(法=진리)맥'으로서의 동일성을 유지하는 종교적 상징성이 이어내려오는 것이지요.

 

  따라서 명패를 내걸고 본인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은 상제님도판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도리인 '정명(正名)'이므로, 이후의 운영상의 문제가 아닌, 그것 자체로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었다 하겠습니다. 진법인지 아닌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판단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상식선에서 운영상을 찬찬히 따져봐서 해야 하는 것이고, 최종적인 검증은 '그 때'가 되어야지만 가능할 것입니다. 각기 제 명패 내걸고 제게 주어진 제 노릇 하는 것입니다. 사심없이 올바르게 하였는지의 여부는 나중에 천지에서 판단해줄 것입니다.

 

  그 다음의 논점은 타 단체에서 주장하듯 과연 단주가 신도(神道)에 머물며 신명으로서 역사하는 것이냐 아니면 단주가 인신출세하느냐의 문제인데, 태을도의 주장처럼 단주가 성사재인의 주역으로 인신출세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는 이 코너의 [단주수명에 대하여]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자신을 믿고 뛰어들 건지, 그때까지 계속 관망하며 바깥에서 기다릴 건지는 결국은 본인의 믿음과 판단의 문제입니다. (혹여 이 코너에 이미 실려있는 [심안을 열어 상황을 직시하고 진법인연을 받아들이기를..]이 이 글을 읽는데 좀더 보충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출처 : 태을도(太乙道) : 태을궁 용봉서신(太乙宮 龍鳳書信)
글쓴이 : 새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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