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 도훈(道訓)

[스크랩] 태을도 2019년 1월 월례치성 도훈: 후세에 남길 나의 유언

태을세상 2019. 1. 30. 12:58

태을도 2019년 1월 월례치성 도훈

후세에 남길 나의 유언

2019.1.26(음력 12.21)

 


 한 20여 년 전에 제가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KBS 가요무대’를 보러 갔었습니다. 그 때 제가 개인적으로 KBS 이사로 계시는 분을 알고 있어가지고 그분이 초청 티켓을 줘서 부모님과 제가 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방청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티켓 구하기가 엄청 힘든가 봐요. 그래서 추첨도 하고 그런다는 거예요. 우리가 일찍 가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리다 가요무대 녹화방송하는 데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본격적으로 가요무대 가수들이 노래하기 전에 행사장 분위기를 정돈하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몇 분들이 나와서 개그도 하고 농담도 하고 노래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다들 효도를 하려고 부모님 모시고 왔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분위기가 웅성웅성하고 그랬는데, 만담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분위기를 잡아가다 보니까, 서서히 가요무대 녹화장이 열기가 뜨거워지더라고요.

 

 KBS 가요무대의 경험

 

 그래서 박수도 치고 율동도 하고 이러면서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좀 친근감도 생기고, 그래서 한 15분에서 20분 정도 사전 분위기메이커가 활동을 하니까 가요무대가 본격적인 판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예비판이 끝난 다음에 사람들 분위기도 잡히고 열기가 어느 정도 있으니까 가수들 하고 관중들 하고 호흡이 맞아가지고, 한 시간 넘게 아주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가요무대를 방청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가지고 후천 오만 년 태을세상을 개막하는 천지공사를 보셨는데, 천지공사를 통해서 상생의 태을세상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까지 여러 가지 상황들이 발생하고 또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집니다.

 

 제가 서두에 KBS 가요무대가 본격적으로 판이 열리기 전에 분위기를 띄우는 얘기를 해드렸는데, 상제님 세상이 열리는 그런 결정적인 판이 벌어지기 앞서서, 세상사람들은 여러 현상들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북사도 전란과 남군산 병겁에 대해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천지공사의 결정적인 길목인 북사도 전란과 남군산 병겁을 앞두고, 우리가 세상사람들한테 유비무환의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각자 갖고 있는 재주를 십분 발휘해서, 북사도 전란과 남군산 병겁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때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됩니다.

 

 상제님 고수부님께서 천지공사와 신정공사를 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북사도 전란과 남군산 병겁에 어떻게 대비를 해나가야 될 것인가, 북사도 전란과 남군산 병겁이라는 본젹적인 판과 그전에 준비해야 할 예비적인 판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지부모님의 유언을 받든다는 자세를 가져야

 

 그런 것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남기는 유언과 똑같은 것입니다, 상제님 고수부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북사도 전란과 남군산 병겁으로 선천 상극세상을 마지막으로 마감하도록 하셨습니다. 독기와 살기로 발생한 북사도 전란과 독기와 살기가 불러온 남군산 병겁으로 선천 상극세상이 마감되는데, 얼마나 간곡하게 절실하게 얘기를 하셨겠어요?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의 천지공사와 신정공사의 말씀을 보면서, 그분들이 하신 하나하나의 말씀과 행동 하나하나를, 유언을 남기셨다는 심정을 가지고 유언을 받든다는 자세를 가지고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과 글을 대한다면, 우리의 생각들도 달라질 것입니다.

 

 결국 가정이나 국가나 그 핵심적인 사명이 이어지는 것은, 가장의 유언·국가책임자의 유언, 가장의 가르침·국가 책임자의 가르침, 이것을 내가 체화해서 내가 열심히 그것을 실천하고 그 실천한 결과를 후인들한테 유언의 형식으로 남겨서, 그것을 후세들이 잘 이어가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5분 도훈 제목이 ‘후세에 남길 나의 유언’인데, 각자 돌아가면서 어떤 유언을 남기고 싶으신지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충덕도인 :

 

 태을을 깨달아서 태을을 의지해서 살아라

 

 지금 제가 죽는다면, 이 세상을 하직을 한다면, 우리가 두려워하고 준비해야 하는 급살병은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제 가족이나 자식이나 친구에게 유언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을을 깨달아서 태을에 의지해서 살아라. 태을은 우주보편적인 진리이고 생명의 원리이기 때문에, 태을의 진리와 도를 따라서 살면 자유롭고 평안하고 행복하다. 태을은 무형의 하느님이고, 태을은 무형의 천지부모님이고, 태을은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태을을 벗어나면 죄와 허물을 짓게 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태을을 깨달아 태을을 따라서 살아가야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급살병으로부터 살아남아서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충익도인 :

 

 염치를 차릴 줄 아는 사람

 

 얼마 전, 인터넷에 소개된 선행의 미담기사를 보면서, 내 자신은 지금까지 염치없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을 다시금 해봤습니다.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다들 양심적으로 살아들 가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는 경우도 있지요. 양심을 들춰내고 양심을 올바로 쓴다는 것은 몰염치하지 않은 인간됨에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사전적 의미로 ‘염치’는 ‘체면(자존감)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중국 충칭시에서 뷔페식당을 운영하는 라오덩씽이라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이분은 돈벌이 수단으로 늘상 하는 장사 말고 평소에 어떻게 하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오다가, 본인이 운영하는 식당 부근에서 청소를 하는 미화원들이 새벽 5시부터 나와서 청소를 하는데 대부분이 밥을 먹지 않고 청소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그동안 생각에만 머물렀던 의미있는 일을 드디어 찾았구나 싶어, 라오사장은 이 미화원들에게 양질의 아침밥을 무상으로 제공을 하였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로 찾았으나, 무상으로 무제한 제공되는 좋은 식단에 친절하기까지 하다는 소문이 나서, 주변에 노동자들까지 이 식당으로 찾아오게 됐다고 하네요. 그러던 것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가자 한 사람 두 사람 미화원과 노동자들이 식당에 오지 않더니, 급기야 아무도 아침밥을 먹으러 오질 않게 되었답니다. 졸지에 일어난 상황에 라오씨는 뭐가 잘못됐나 원인을 찾아보았는데, 혹여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 그런가, 종업원들이 불친절하게 대하지는 않았나, 여러 측면으로 알아봤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한 미화원에게서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습니다. 라오씨 식당에 발을 끊은 이유가, 계속해서 공짜로 밥을 먹는다는 게 미안하고 부담도 가고 해서 돈을 내고 밥을 먹으려 했으나, 돈 받기를 번번이 거절을 하기에, 계속해서 공짜밥을 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차라리 돈을 지불하고 마음 편히 밥을 먹는 게 낫겠다 싶어 다른 식당에 가서 아침밥을 먹고 있다는 겁니다. 전후사정을 알게 된 라오사장은 이후로는 돈을 받기로 하되, 7위안( 한화1100원 )정도의 적은 돈만 받기로 하고, 다시 돌아온 미화원과 노동자들에게 그전보다 더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서 내놓았다 하더군요.

 

 “연고 없이 헛되이 물 한 그릇도 의뢰하지 말라.”는 상제님 말씀을 곱씹어보면, 너의 인생에 있어서 염치없는 삶을 경계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미화원들은 라오사장이 베푸는 친절함의 진정성을 의심치 않았으나, 양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염치가 있기에, 공짜밥을 계속해서 먹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어제 오늘의 일만도 아니고 특정 집단에 국한된 일도 아니겠지만, 연일 각종 매체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몇몇 유명인사의 염치불구한 행실을 보면서, 조건없는 선의의 아침밥 한 끼에도 염치없어하는 미화원의 모습이 차라리 성인의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하는 맹자의 말이 요즘처럼 맞아 떨어지는 것도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도를 닦든, 세속적 삶을 살아가든지 간에, 사람이라면 염치를 차릴 줄 아는 것부터 시작이라 생각됩니다.


 각자 일상생활이 다르고 삶의 질이 달라도, 양심이라는 인간이라면 공통으로 갖는 마음속 소리에 귀 기울여, 최소한의 자기 행실에 염치가 배일 수 있도록 다독여 나가는 삶이 참으로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충정도인 :

 

 마음자리를 찾고 자신의 본원을 확인하는 태을주 23자

 

 몇십 년 각자의 시대를 살다 가는 개인이 장구한 후세에 남길 유언은 구체적이기는 무리입니다. 다만 그 태도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고 어떤 태도로서 살아가야 하느냐에 있어서 시대에 국한되지 않게 말할 바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삶과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정리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의 큰 틀이 잡히지 않나 싶습니다. 잘못된 전제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무의미한 결과가 되고 말듯이, 근원에 대한 올바른 판단에서 출발해야 의미있고 올바른 결과를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삶은 자신의 본원을 깨닫고 그 바탕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현실 속에 실현해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람은 시대에 따라, 인연에 따라, 각자 그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개인도 발전하고 인류도 번영하는데 이바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적 삶의 태도에 있어서는 성경신과 같은 성찰적 도덕적 지침이 적당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 모습에 있어서는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과감한 모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역사가 위험에 처했을 때에는 초개와 같이 한 인생을 바쳐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탁한 세상을 만나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그런 한적한 삶속에서 조용히 살다 가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현대 학문을 배우고 자라 생각이 무신론을 벗기는 어려웠던 제가, 그것에서 벗어나 납득할 수 있는 깨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태을주 수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생명의 본질에 대한 성찰과 깨침과 확신을 토대로 한 삶이어야 오만과 독선으로 흐르지 않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 살거나 그 마음자리를 찾고 그 자신의 본원을 확인하는 방법은 태을주 23자, 그것을 유언으로 남기는 것이 적당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바-하



충일도인 :

 

 마음 닦고 태을주를 읽으라

 

 제가 죽은 뒤 후세에 남길 유언을 생각해 보니, 무엇을 남길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상제님의 진리의 세상이 오고 있는데 과연 어떤 말을 남기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생각을 해보니, 첫 번째로 마음 닦고 태을주를 읽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후천의 진리가 상생의 이치로 돌아가는 것이라 상생을 생활화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성인의 바탕으로 천지부모님의 심법을 배우며 태을주 읽기를 생활화하여,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상생의 이념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화합과 통일을 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실천하고 살기에는 상극세상에서는 많이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어려운 만큼 나만의 공부도 마음도 크게 성숙해갈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후천에 가서는 모든 것이 상생의 진리로 돌아가기에, 너무나 쉽고 누구나 다 상생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죽어서 하늘에 가면 오욕지정이 없어, 마음 닦고 도를 이루기가 힘들고 더디다고 하였습니다.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고 또 그것을 참고 인내할 수도 있는 것처럼, 상생세상에서 도를 닦는 것보다 상극세상에서 상생을 실천하는 삶이 어찌 보면 마음 닦고 도를 닦기가 더 빠르고 더 큰 공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세상에 남길 유언은 "누구나 깨어나서 천지부모님의 마음을 닦고 태을주를 읽으며 상생을 생활화하는 태을도인으로 재생신하라."는 것입니다.



충양도인 :

 

 용서하고 사랑하며 척을 짓지 말라

 

 후세에 남길 나의 유언에 대해서 제 생각을 정리하면 “용서하고 사랑하며 척을 짓지 말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선천 상극세상을 마감하고 후천 상생세상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남과 나 사이에 맺힌 원한을 풀어야 하는데, 척(戚)은 나의 잘못으로 인해 나에 대한 원망을 가질 때 발생합니다.

 

 인간은 사회라는 한 울타리 속에서 상호간에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용서와 사랑으로 화해하는 삶을 사는 관계는 서로를 발전시켜 상생(相生)의 길로 나아가게 되지만, 이해득실과 입장차이로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대립하게 되면 상극(相克)적인 척(戚)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대순전경 325페이지에 보면 “상말에 무척(無戚) 잘 산다 이르나니, 척이 없어야 잘 산다는 말이라.” “남에게 원억을 짓지 말라, 척이 되어 갚느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그의 신명이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느니라.”

 

 척은 한 번 맺히게 되면 어느 한 쪽이 풀려고 하지 않는 한, 쌍방 모두가 폐해를 입게 됩니다. 척이 맺히면 보복을 낳고 보복은 또다른 보복을 낳게 되는데, 남이 나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해서 나도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한다면, 이는 악(惡)을 악으로 갚는 것이기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척을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척을 맺지 않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죠. 척을 맺지 않기 위해서는 원칙(原則)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원칙은 모두가 모두를 공명정대하게 대하는 상생의 원리로서, 가정이 일가(一家)가 되고 세계일가 우주일가를 이루어 태을촌 태을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삶을 살아간다면, 더 이상의 척과 원한이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신명을 탐내어 부당한 자리에 않거나 일들을 편벽되게 처사하는 자들의 덜미를 쳐서 물리치나니라. 자리를 탐내지 말며, 편벽된 처사를 삼가고, 덕을 닦기를 힘쓰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라.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히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 척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인도적(人道的)인 입장에 서서 공명정대한 생활로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어진 마음을 가져, 남과 내가 함께하는 상생의 길을 가야하겠습니다.



충희도인 :

 

 나는 태을을 찾았다

 

 저는 이렇게 유언을 남깁니다.


 웬만하면 용서하고 사랑하고 포용하고 살아라. 그리고 어지간하면 베풀며 살고,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라. 인생에는 괴로운 일과 즐거운 일이 뒤범벅되어있더라. 괴로운 일을 해결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나는 그 과정에 원소와 태을을 찾았다. 원소와 태을을 찾는 과정에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도 찾았지만, 즐거움을 찾는 방법도 찾았다. 그것은 우주와 인생의 비밀을 찾는 것이었다. 아직 나는 완전히 그것을 찾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남길 것이 없다. 나는 다시 우주 속으로 돌아간다.

 

 잘 살아라. 즐겁게 살아라. 나는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라고 노래하면서 우주 속으로 들어간다. 잘 살아라. 그동안 모든 존재에게 고마웠다. 고마웠다.



대종부 :

 

 꿈을 꾸었고 찾았고 그 꿈을 위해 살았기에, 이번 생에 난 행복했노라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태어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저도 태어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을 하고 그 의미를 찾으려고 참 많이 애썼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번 말씀드렸지만, 20대 초반에 겨울 지리산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에도 제가 죽을 수 없었던 게, 분명히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있을 텐데 그 의미를 못 찾고 죽는 게 너무 한스러워서 그래서 제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그후에 제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제가 잠깐 몸담았으나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던 교직이었는데,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학교에 다시 강사로 나가면서 그때 깨달은 것이 ‘아, 이 세상에는 무의미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나이까지 살면서 보니까, 생명을 가졌든 생명을 갖지 않은 것이든 이 세상에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세상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유언을 남긴다고 하면, “네가 태어난 의미를 꼭 찾아봐라.” 태어난 의미란 그 사람의 진정한 꿈을 얘기하는 거지요. 그래서 “꿈을 포기하지 말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뭘 하고자 했는지 그걸 꼭 찾아라. 그걸 찾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꿈을 찾아나가고 실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그렇다고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가 굉장히 많은 단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임에도 저도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고, 그래서 일상을 살아가며 매순간 집중해서 성경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제 주변사람들에게도 그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매순간 집중해서 성경신을 다해라.” 간단하게 일반적으로 표현하면 “매순간 최선을 다하라.” 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다음 세 번째,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사랑을 필요로 하더라고요. 관심을 자기한테 가져주기를 바라고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을 때 오히려 고통을 받기도 해요.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주는 고통이 작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이 사랑하라. 그런데 될 수 있으면 상대방이 원하는 형태의 사랑을 하라.” 그러려면 배려하고 공감해야겠지요. 지난 종장님 대한치성 도훈때 ‘비인정불가근’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가 감성과 이성과 영성이 다 어우러진 형태로 맺어져야 그 관계가 완전하다고 할 것인데, 그 출발은 감성이라는 거지요. ‘감정이 없이, 인정이 없이, 이성적인 영성적인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설혹 이루어진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허상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한 부분에서 저 또한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세 번째 “사랑을 하되 상대방에게 맞는 사랑을 주어라.”인데, 그 얘기는 결국 “배려와 공감을 하는 인간이 돼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앞으로 살아가려고 하고, 그 얘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참으로 영적인 존재인데, 그래서 누구나 다 마음속에는 구도심-진리를 얻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세속적인 물질적인 삶, 눈에 보이는 삶에 집중을 하게 되면, 구도심과는 먼 삶을 살게 되지요. 그러나 내가 원래 마음 속에 갖고 나온 구도심, 분명히 그것은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맨 처음에 말씀드린 것과 어떻게 보면 통하는 건데, “인간으로서 진리를 향한 그 마음·열정을 가지고, 어느 길에 있든지 인간완성을 이루도록 노력하라.”는 얘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생을 살면서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내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꿈을 찾았고, 죽을 때까지 꿈을 위해 살았기에, 이번 생을 살면서 난 행복했노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대종장 :

 

 한 사람의 불씨가 천하를 밝힌다

 

 저희 시골 동네에 예비역 대위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군에서 여러 가지 선진농법을 배운 모양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밭에다가 오동나무를 심었어요. 오동나무가 돈이 많이 된다고 해서 오동나무를 심었는데, 오동나무밭 위가 인삼밭이고 그 옆에 공동묘지 비슷한 게 있었는데,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공동묘지 잔디밭에다가 불을 놨던가 봐요. 추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어째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공동묘지 잔디밭에서 불이 나서 오동나무도 전부 타고 인삼밭도 전부 타는 바람에 예비역 대위되시는 분이 완전히 망했거든요.

 

 그 이후에 동네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처음에 불이 났을 때에는 오동나무만 탔다는 거예요. 오동나무밭에 불이 나서 동네사람들이 달려가서 불을 껐다는 거예요. 그리고 불이 완전히 진화가 된 줄 알고 동네사람들이 철수했는데, 철수하고 얼마 있다 보니까 삼장밭에서 불이 막 나서 삼장밭까지 다 탄 거예요. 금산에서 인삼가격이 비싼데, 동네사람들이 “불을 잘 끌걸, 불씨가 좀 남아있었나 보다.”고 뒷얘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불씨가 살아있으면 그것이 순식간에 퍼져서 주변을 다 불태우거든요. 상제님이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상제님 고수부님이 남기신 그 유언을 온전히 받드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불씨가 돼서 온 천하를 다 밝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제님 고수부님이 천지공사를 보시고 신정공사를 보실 때, 유언을 남기는 심정으로 말씀을 하셨고 글을 쓰셨고 행실을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제님께서는 “내 말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들을 때 익히 들어두었다가 내어쓸 때 서슴지 말고 내어쓰라.” 또 고수부님께서는 “너희들은 안심하라. 증산과 내가 심리한 일이니 팔 짚고 헤엄치기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1911년 고수부님이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뿌렸는데, 그 가르침이 100여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어느 집안이나, 그 집안의 자식들이나 후손들이 윗대 조상들이 남기신 간곡한 유언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치고 받들어서 실천을 해야 그 집안이 융성하고 발전을 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를 건국한 건국자의 건국정신· 건국이념· 건국명분을 정확하게 깨치고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해야 그 나라가 부강하게 발전이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 고수님이 남기신 절절한 유언, 그 절절한 유언의 핵심은 북사도 전란과 남군산 병겁이 발생할 때 너희들이 내 가르침을 가지고 세상을 구하라는 것이거든요.

 

 내가 죽어도 변치 않겠느냐

 

 상제님 고수부님이 남기신 그 유언을 누가 가장 잘 이해하고 깨치고 실천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상제님 고수부님의 천하사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도 당신의 진리의 배우자 고수부님한테 장도칼을 가지고 목을 겨누며 “내가 죽어도 변치 않겠느냐.” 이렇게 다짐을 받으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내 유언을 내가 죽더라도 받들겠느냐.’ 그 다짐을 받으신 것이죠. 목숨을 걸고 유언을 이해하고 깨치고 실천하겠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일이 허사가 된다, 그런 말씀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저 세상으로 갈 때는 항상 다짐을 받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자기가 이 세상에 와서 천명을 받아서 이루어놓은 일을 후인들이 올바로 이어가도록 제자들을 앞에 놓고 다짐을 받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고, 나라의 건국자들도 그랬고, 또 종교의 스승들도 그랬고, 또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당신의 사업을 이어갈 후계자들을 놓고서 다짐을 받았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이라고, TV 드라마를 통해서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아주 열연을 해서, 마치 이순신 장군이 빙의한 것처럼 이순신 장군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느꼈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육신은 가도 이 몸뚱이는 가도, 마음이 이어져 있으면 뜻이 이어져 있으면, 돌아가신 분이 살아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상제님 고수부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천지공사와 신정공사를 보시고 가셨습니다. 상제님이 가신지 100여 년이 넘었고, 고수부님이 가신지 80여 년이 넘었습니다. 누가 상제님 고수부님의 일을 매듭짓느냐? 그것은 상제님 고수부님이 남기신 유언을 제일 잘 이해하고 깨치고 실천하는 사람이 상제님 고수부님이 하신 일을 매듭짓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백년 인생을 받아 나와서 상제님 고수부님의 유언을 이해하고 깨치고 실천한 결과를 우리가 후인들한테 유언으로 남겨주어야 합니다. 각자가 깨친 마음을 가지고 이해한 마음을 가지고 후인들에게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5분 도훈 주제가 ‘후세에 남길 나의 유언’이고 각자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상제님 고수부님께서는 네가 맡은 배역을 정확히 알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시기 위해서 소위 말하는 천지공사라는 드라마를 찍기 위해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배우를 물색하고 등장인물을 물색하러 다니셨습니다. 김형렬 성도를 만나고 차경석 성도를 만나고 박공우 성도를 만나고 이치복 성도를 만나고 문공신 성도를 만나고 만나러 다니신 거예요. 마치 영화감독이 명품영화를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배우를 캐스팅하는 거와 똑같습니다.

 

 상제님 제자들은 상제님 천지공사라고 하는 영화에 캐스팅된 사람들입니다. 발탁된 사람들입니다. 또 고수부님도 신정공사를 보시면서 신정공사를 온전히 성사시키기 위해서, 마치 영화감독처럼 배우를 물색하러 다니셨습니다. 그렇게 물색해서 신정공사에 참여하신 분들이 고민환 성도·고찬홍 성도·전선필 성도 등등입니다.

 

 상제님과 고수부님께서는 당신들의 천지공사나 신정공사에 등장했던 제자들을 손수 발탁해가지고 의향을 물어보신 거예요. 내가 이렇게 저렇게 이 세상에 와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데 너희들이 동참을 하겠냐. 강제로 하신 게 아니고, 너희 뜻이 어떠하냐. 상제님이 제자들한테 물어보셨고, 고수부님이 제자들한테 물어보셨다고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좋습니다. 나는 천지공사 신정공사에 목숨을 걸고 참여하겠습니다.” 또 마지막에 돌아가실 때에는 “내가 죽더라도 내 유언을 제대로 받들겠느냐.” “받들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천지공사와 신정공사를 매듭짓고 가셨는데, 다짐을 드린 제자들에 의해서 그 가르침들이 이렇게 이어져 온 거지요.

 

 후회없이 최선을 다하자

 

 우리들이 후인들한테, 후세들한테 남길 유언은 나름대로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자기가 상제님 고수부님의 유언을 이해하는데 따라서 다르겠지만 결국 남는 것은 뭐냐면, “나는 최선을 다했다.” “나는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다.” 하는 것을 유언으로 남겨야 된다고요. 상제님 고수부님의 천지공사와 신정공사는, 당신들의 유언을 최선을 다해 실천한 사람, 그 사람들에게 의해서 후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요.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최선을 다해서 이순신을 열연하니까, 온 국민이 감동하잖아요. 그 드라마에 참여한 다른 배우들도 김명민 앞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대한 듯이 했다는 거예요. 김명민이 연기할 때 쓰는 칼 앞에서도 경외감을 가졌다는 거예요. 김명민이라는 사람이 비록 배우지만 혼신을 다해서 연기를 하니까, 마치 이순신 장군이 살아서 오신 것처럼 그렇게 배우들도 느꼈고 국민들도 느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거지요.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이 남기신 그 유언을 혼신을 다해 받들고 혼신을 다해 실천해서, 후인들한테 “나는 최선을 다했노라.” “나는 후회없이 최선을 다했노라.” 이렇게 유언을 남길 수 있는 태을도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도훈을 마칩니다. 

 

출처 : 태을도 장성법소
글쓴이 : 충양도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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