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존경으로 열어가는 상생세상
# 존경하도록 가르치다

어느 초등학생 소녀가 학교에 가자마자 담임선생님에게,
길에서 주워온 야생화를 내밀며 이 꽃 이름이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은 꽃을 한참 보시더니 말했습니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데
내일 알아보고 알려줄게."
선생님의 말에 소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에 모르는 게 없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오늘 학교 가는 길에 주운 꽃인데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우리 학교 담임선생님도 모른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런데 소녀는 오늘 두 번이나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믿었던 아빠도 꽃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소녀의 아빠는 식물학을 전공으로
대학에서 강의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소녀를 담임선생님이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질문한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소녀는 아빠도 모르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알려준
선생님이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젯밤 소녀의 아빠가 선생님에게 전화하여
그 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빠는 그 꽃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딸이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은 백 년의 약속입니다.
백 년의 미래를 위해 백 년의 시간을 준비하는 길고 긴 과정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잘 연계되고 조화를 이루어
가정에서는 스승을 존경하도록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도록 가르치면
이상적인 인성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교육은 그대의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씨앗들이 자라나게 해 준다.
- 칼릴 지브란 -
# 생활환경과 신앙환경의 중요성
@ 증산상제님께서는 비록 미천한 사람을 대할 지라도 반드시 존경하시더니, 형렬의 종 지남식에게도 매양 존경하시거늘, 형렬이 여쭈어 가로되 "이 사람은 나의 종이오니 존경하지 마소서." 상제님 가라사대 "이 사람이 그대의 종이니 내게는 아무 관계도 없느니라." 하시며 또 일러 가라사대 "이 마을에서는 어려서부터 숙습(熟習)이 되어 창졸간(倉卒間)에 말을 고치기가 어려울 지라도, 다른 곳에 가면 어떤 사람을 대할 지라도 다 존경하라. 이 뒤로는 적서(嫡庶)의 명분과 반상(班常)의 구별이 없느니라.” (대순전경 p102)
@ 하루는 증산상제님이 백암에 계시더니, 세수를 하시고 그 물을 버리지 않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너는 이 물로 세수를 하거라." 공우 명을 받아 세수를 하고 하루의 일정으로 돌아다니더니, 여러 곳에 이르러 사람들이 모두 공우를 대선생처럼 대접하니, 공우의 얼굴 모습과 풍채, 말소리와 행동거지가 조금도 대선생과 차이가 없는지라. 제자가 여쭙기를 "지금 공우가 대선생의 세숫물에 세수하고 명을 받아 돌아다녀, 말소리와 풍채가 대선생과 아주 흡사하고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무슨 까닭이나이까." 증산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기운이 능히 같으면 모습도 능히 같아지게 되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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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받아본 사람이 용서를 해줄 수 있고,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미움속에 산 사람은 미움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고, 증오의 틀에 묶여 산 사람은 증오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생활환경과 신앙환경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생활을 같이하고 신앙을 같이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물들어, 말이 닮고 행동이 비슷하게 됩니다.
누구와 교류하고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에 따라 마음자세와 마음씀씀이가 습관들여집니다. 사랑과 용서의 말과 글과 행동을 많이 보아 익숙해 몸에 배이면, 사랑과 용서의 말과 글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마련입니다. 욕하면서 따라 배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