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로치성 태을도인 도훈 : "오직 언덕을 잘 가지라"
한로치성 태을도인 도훈
"오직 언덕을 잘 가지라"
2017년 10월 8일 (음력 8월 19일)
며칠 전에 우리가 추석을 쇠었는데요, 아직 추석연휴 기간입니다. 모처럼 긴 연휴를 가지면서 가족 간에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리라 봅니다. 올해는 절기도 늦어서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롓상을 차린 분들도 많을 텐데, 추석절기에는 날씨도 선선하고 또 오곡과일도 풍성해서 우리 조상님들은 '매일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소망을 가졌더랬지요. 추석으로부터 본격적인 결실의 계절이 시작됩니다. 우주의 가을도 마찬가지라, 선후천교차기인 지금이 바로 우주의 추수절기가 되겠습니다.
참종자를 결실시켜서 추수하는 우주의 가을철에, 우리가 가을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질 절대적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후천세상을 열어가는 태을도인들의 마음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오늘 한로치성 태을도인 도훈을 "오직 언덕을 잘 가지라."는 제목으로 하겠습니다.
「강증산과 태을도」 265쪽 맨아랫줄에서 266쪽 상단에 걸쳐있는 상제님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 한고조는 소하의 덕으로 천하를 얻었으나, 너희들은 베풀 것이 없으니 오직 언덕을 잘 가지라. 남의 말을 좋게 하면 그에게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고, 남의 말을 나쁘게 하면 그에게 해가 되어 망치고, 그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재앙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대순전경 322쪽에 실려있는 말씀이지요. 도(道)란 생생지도(生生之道)이지요. 생명을 낳고 낳고 또 낳는 것이 도입니다. 또, 생명을 살리고 또 살리는 것이 도입니다. 그러한 도를 따르고자 하는 도인들이 가질 마음자세가 뭐냐. 남에게 덕을 베풀고 그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되어야 된다는 거지요. 우리 모두가 생명의 원뿌리인 태을에서 그 생명이 다 비롯되었는데, 만약 내가 상대방에게 나쁘게 대한다면 상대방이 가진 원생명 태을을 해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태을은 실은 나의 태을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결국은 돌아서 나의 원생명 태을에도 해를 끼치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또한 지금이 우주의 가을철이라 했는데, 우리가 선천 오만 년 동안 상극지리의 세상을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지은 죄가 많습니다. 또 그 상극지리에 적응하느라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지니게 된 독기와 살기도 참 많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고 하니 "척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강증산과 태을도」 207쪽 아래 상제님 성구를 일부만 좀 보겠습니다.
@ 상제님 형렬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라." (대순전경 P20-21)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해야 하라고 하셨습니다. 무극대운을 맞았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당연히 죄는 짓지 말아야 하지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보이지 않는 척도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수부님이 도인들이 닦아야 할 기본자세로 말씀하셨던 7계잠 중에 첫 번째가 '남에게 척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증산과 태을도」 255쪽에서 256쪽에 걸쳐서 칠계잠이 나오는 데, 첫 번째 남에게 척짓지 말라는 말씀 외에도 세 번째 자존심을 갖지 말라. 일곱 번째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고, 자기의 허물을 생각하여 천지에 사죄하라. (천후신정기 pp57-58)
그러니까 내 자존심을 내세워서 다른 사람에게 척을 짓거나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척을 짓거나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게 되면, 그 사람이 서운함을 갖게 되지요. 척을 짓는 거지요. 그러면 그 사람의 원망과 그 사람에게 붙은 신명이 이 말세 해원판을 맞아서 당연히 그 원망을 풀려고 들 것입니다. 도인이라면 마땅히 선천 상극의 고리를 끊고 상생을 열어가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진짜 가져야 하는 것이 언덕(言德)인 거지요. 마음이 바깥으로 소리로 나오는 것이 말이고, 그 마음이 자취로 나오는 것이 행사, 행동이잖아요. 우리가 마음을 잘 닦아서, 우리의 마음을 상생으로 바르게 바꾸어, 우리의 말과 행동이 상극의 고리를 끊고 상생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은 참 부족해서, 상대방에게 나는 선의로 좋게 말을 붙였는데, 언덕을 붙여서 얘기했는데, 상대방이 곡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서로의 마음이 다 열리지 않아서, 아직 유극(有極)의 마음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이지요. 그런 경우라도, 몸을 더 낮춰서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눅여서 지는 것이 도인이고 상등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장은 내가 상대방의 곡해가 서운하다 할지라도, 내가 더욱 눅여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면 결국은 그 진심을 상대방이 알아주고 마음을 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허물을 우리가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행한 나의 잘못은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구하면서, 이 사회 속에 우리 도인들의 말과 행동으로 상생의 화기를 퍼뜨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상생의 화기가 내 주변에 흘러넘쳐서 주변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성음소모에 화기가 무르녹는 후천이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아까 제가 덕을 붙여서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곡해를 한다 그랬는데, 우리가 사랑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내가 주는 사랑과 상대방이 받고자 하는 사랑이 다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상대방이 받고 싶어 하는 사랑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사랑을 주게 되면, 상대방은 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만을 갖거나 서운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사랑을 한다는 것은 상제님도 말씀하셨듯이, 그 많은 괴로움을 딛고서 진리적인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우애를 바탕으로, 나를 낮춰서 내 자존심을 눅여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방법을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의 방법을 찾아서 주어야겠지요.
상제님께서 약장에 칠성경을 써서 뒤로 넘기셨을 적에, 거기다 '우보상최등양명(禹步相催登陽明)'이라고 쓰셨습니다. 우보상최등양명은 옛적에 천제를 지낼 때 제관이 젯상에 나아갈 때 취했던 보법(步法)이라고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북두칠성의 위차에 따라서 밟아나가는 걸음걸이라고 하는데요, 그것이 소걸음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소를 보면 서두르지도 않고 뚜벅뚜벅 한결같이 걸어가지요. 우리 도인들도 한 걸음 한 걸음 소걸음같이 우직하고 한결같이 나아가는 자세로 언덕을 잘 갖춰서 상생의 화기가 무르녹는 후천을 만들어나가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