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수원법소 우수(雨水)치성 도훈 “무위이화의 다스림”
수원법소 우수(雨水)치성 도훈 “무위이화(無爲而化)의 다스림”
2017년 2월 18일 (음력 1월 22일)
올해는 고수부님께서 상제님의 가르침을 처음 펴신 1911년부터 106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지난 106년의 의미는 무엇인지, 상제님 천지공사에서 그 106년의 세월이 가지는 의미와 지금의 우리는 어떤 단계에 있는 것인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정리가 되어져야 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제 스스로 많이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적막강산근백년(寂寞江山近百年)이란 말씀을 하셨고 풍류주세백년진(風流酒洗百年塵) 시절화명삼월우(時節花明三月雨)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이 강산이 백년의 세월을 견디고 그 100년의 세월에 쌓인 먼지를 싹 씻어내고 3월 봄비에 화창한 봄꽃들이 피듯이 그렇게 일이 될거라는 상제님의 기약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지난 근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상제님게서 천지공사로 금강산의 독기와 살기를 공산주의 북한에 붙이시고 금강산의 생기를 남조선 대한민국에 붙이신 이후 전세계는 휴전선을 앞에 둔 전세계적인 이념대결구도로 한미일과 북중러 이 각각 세나라가 동맹을 맺어 냉전체제로 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딱 70년 동행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생기가 붙은 대한민국은 자유롭고 풍요롭고 번영된 삶을 이룩할 수 있었고 반면 독기와 살기가 붙은 북한은 억압과 통제 속에 백성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시킬 핵무기를 통해 적화 통일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만민 평등의 세계를 외친 공산주의 체제는 부패와 무자비한 인권유린을 저지르며 몰락의 길을 걸었고 개인의 욕망과 욕구를 인정한 자유 자본주의 체제는 번영하고 오히려 투명하고 인간존엄을 실현하는 사회에 가까워져 가고 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성공하는 것은 그 자유와 욕구라는 인간 마음의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고 각자가 간섭받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 과정속에서 자신의 욕구를 조절해 가고 사회적 이해관계를 조절해 가며 성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에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개인의 활동에 통제를 가하고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결국은 스스로 성숙할 수 있는 여건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사회가 몰락하는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상제님 말씀중에 이런 성구가 있습니다.
@ 어느날 종도들에게 글을 외워주시니 이러하니라. “비조불롱단대공 이요 유어부독점대해 니 고능 자유자생 이니라” 하시니 이 글을 풀이하면 “나르는 새가 저 큰 허공을 가르듯 갈라놓지 못하고 노니는 물고기가 큰 바다를 저 홀로 점령하지 못하는 고로 능히 자유롭게 스스로 살아가니라” 하시니라.(P278~279)
하늘과 바다를 어느 한 생명이 독차지 하지 않기에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개인의 자아와 아집이 큰 욕심을 일으켜 더 많이 차지하고 남을 강요하고 통제하려 한다면 모두가 자유롭게 성숙해가는 여건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위한 우주가 아니듯이 각자가 성숙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서로의 삶과 행동을 제약하지 않는 그런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 속에서 개인의 성숙이 있고 그 결과가 사회의 성숙이요 세상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사회를 다스리는 체제도 그런 자유가 보장이 되는 체제여야만 하겠습니다. 상제님 말씀중에 이런 말씀이 또 있습니다.
@ 공사를 보시며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만약에 이 천하에 개인이 없다면 어찌 세상이 있을 수 있으리. 그러니 세상을 광화하면 곧 모든 개인의 영화가 이름이요 개인의 영광됨이 곧 세상의 광화로 되느니라”하시었다 하니라. (P284)
체제의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옳음은 증명이 되었지만 이 체제속에서도 다시 그런 좌파적인 통제를 통제를 위한 명분을 앞세우는 활동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좌파적인 정책들의 문제점은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여러가지 규제와 통제를 통해 사회의 자연스러운 성숙을 방해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거대한 두부류의 대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생각은 다 제각각이겠지만 현실에 있어서는 축약된 두가지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국가의 안보가 매우 위중한 시점입닏다. 좌파적인 명분의 프레임에 선동당해 그런 시각으로 사회를 보게 되면 결국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노선에 동조하는 세력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거시적인 흐름을 잘 보아야 하고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볼줄 알아야 합니다. 피상적인 명분으로 이미지 메이킹한 그런 정치인들의 술수에 속아 지지를 보내면 국가가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는 데 일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공사보아 놓으신 그 큰 흐름을 잘 보아 판단해야 하겠습니다.
@ 하루는 종도들과 더불어 원평에다 미리 준비시켜둔 개고기와 술을 잡수시고, 가라사대 "너희들은 바로 구미산(龜尾山)에 오르라." 명하신 후 상제께서는 유문(柳門)거리를 돌아서 구미산에 오르시더니, 물으시기를 "지금 어느 때나 되었느뇨." 하시거늘 어느 종도가 여쭈어 가로대 "정오시쯤 되었을듯 하옵나이다." 하고 아뢰는데, 이 때 문득 김자현이 원평을 내려다보더니 놀래며 말하기를 "원평장에서 장꾼(將軍)들이 서로 대가리 다툼을 하나이다." 하고 고하거늘 모든 종도들이 장터를 내려다보니, 이 때 오고가는 장꾼들이 서로 머리를 부딪히고 다니며, 앉아서 전을 보는 사람은 기둥이나 옆에 있는 벽에라도 자기머리를 부딪히며 비비대더라. 종도들이 놀래어 물어가로대 "어찌하여 장꾼들이 저러하나이까." 물으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날 한 시에 천하사람들을 저와 같이 싸움을 붙일 수 있노라. 너희들은 부디 조심할 지니, 나의 도수는 밖으로부터 안으로 욱여드는 도수니라. 천하대세를 잘 살피도록 하고 오늘의 이 일을 잘 명심하도록 하라." 하시더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p115-116)
올해는 대한민국 건국 70년이 되는 해 입니다. 안보를 튼튼히 해서 의통성업의 기지인 대한민국을 흔들림 없이 지키는 것이 참 중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자연의 작용을 무위이화로 표현합니다. 자연은 생명에게 공간을 주고 시간을 주고 그 속에서 각자의 생명이 각자의 자유의지로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성숙하고 발전해가는 것이지 인위적인 강제와 통제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후천은 이런 무위이화의 도정으로 다스려지는 시대라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상극지리로 돌아가는 이 선천세상속에서 어느 체제가 더 자연스럽고 생명의 성숙에 도움이 되는지 잘 판단을 해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