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인 도훈(道訓)

[스크랩] 수원법소 처서치성 도훈 "마음이 근본"

태을세상 2016. 8. 24. 10:10


수원법소 처서치성 도훈마음이 근본

2016년 8월 23일(음력 7월 21일)



 어제는 잘때 더워서 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새벽 공기가 제법 서늘해졌습니다. 며칠전에는 아파트 28층인 저희 집에 귀뚜라미가 한마리 들어왔었는데 오늘은 사무실에 한마리 눈에 띠는걸 보니 더위에도 생명은 철을 알고 철을 맞춰 살아가는구나 싶습니다. 


 생명이 신비로운 같습니다. 텔레비젼에서 카멜레온의 색깔이 보호색으로 주위에 맞춰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습니다. 완전한 변신이지요. 제가 30년전에 배운 지식으로는 아마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설명이 같습니다기본적으로 적자생존의 논리는 불규칙한 수많은 돌연변이들이 생기고 중에서 환경에 유리하게 적응한 변이종만이 살아 남은 것이다고 해석을 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카멜레온 같은 경우도 수많은 돌연변이들 중에서 제일 살아남기 적당한 종이 살아 남은 것이다 이렇게 보게 되는 것이지요. 생명체가 자기의 의지나 목적에 맞추어 유전자를 개발시켜 바꾸어 가는 것이다라고 가설을 설정하면 증명하기가 거의 힘드니까 그냥 우연한 변종들 중에서 그게 살아 남은 거다라고 하면 증명할 필요도 공격받을 일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햇빛 들지 않는 지하 동굴의 물속 생명체들이나 심해어들의 경우에도 충분한 돌연변이의 가짓수와 충분한 시간이 없는 상태에서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은 종들을 보게 됩니다. 삶의 경험을 통해 생명의 적응성이라는 것이 의도와 목적에 맞춰 외형도 변화해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저는 보게 됩니다.  


 스마트폰 초창기에 유행했던 앵그리버드라는 핸드폰 게임이 있었습니다. 저도 몇달 했었는데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해 새총을 당겼다 놓으면, 세기와 각도를 조정해 쏘면, 날아가서 구조물을 부수는 그런 게임인데 어느 부위를 맞추냐에 따라 한방에 부술 수도 있고 부서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서질만한 목표지점을 정하고 거길 향해 쏘면 포물선으로 날아가 맞게되는데 첨에는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한번 대충 쏘고 떨어지는 지점을 확인한 후에 기준으로 다시 조정을 해서 쏘고 쏘고 이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몇달 하다 보니까 어디를 맞춰야겠다하는 생각을 마음에 두고 한번 당겼다가 놓으면 바로 지점에 딱딱 맞게 되더라구요. 계산하고 재고 이런 과정이 이제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야구에서 투수들이 스트라이크존에 뜻대로 공을 꽃아 놓듯이 몸이 그렇게 길들여 지면 마음먹은 대로 통제가 된다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더라는 것이지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보면 그런 경우들을 많이 수가 있지 않습니까. 손으로 들어보면 무게를 맞추는 사람, 한주먹에 같은 갯수를 딱딱 집어 내는 사람, 마음가는 대로 외물을 조절할 있다는 것이 신기롭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마음만 본다고도 하셨고 마음이 닦으면 우주보다도 크다고 하셨고 마음이 같으면 기운이 같고 기운이 같으면 모습도 닮는다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그리고 앞으로 오는 세상은 마음세상이다. 지심대도술의 세상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서전서문에 보면 모든 예악교화과 전장문물과 수제치평의 다스림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마음이란 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베풀어 것이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대학경에도 배움(대학)이라는 것은 원래의 밝은 마음자리의 지극한 선함을 회복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물유본말하고 사유종시 하나니 지소선후면 즉근도의라 해서 사물에는 근본이 있고 말단이 있으며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앞뒤를 알면 도에 가깝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이 근본이고 물질세계는 말단이라는 성현들의 한결같은 말씀인데 지금의 세상은  본말이 전도가 되어 인식하고 살아가는 부분이 많은 같습니다


 과학기술 문명의 엄연한 위세 속에서 마음이라는 것은 묻히고 압도하는 물질 문화속에 마음과 정신마저도 물질의 부산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습니다그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눈에 보이는 세상만 보고서 그것을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속에서는 외형과 물질과 부와 권력이 중요하지 마음과 영성과 신성이라는 보이지도 않고 증명하기도 힘들고 딱히 효용도 없어보이는 내면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군중들중의 하나로서, 다소의 지적 능력을 가진 하나의 생산수단으로서 초라하게 살아가는 자신으로 밖에 비추어지지 않게됩니다. 


 근본이 잊혀지고 말단이 거꾸로 지배하는 물질적 현실속에서 피동적으로 흔들리고 지배당하는 모습이 아니라 혼을 살려내어야 세상을 밝혀 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그런 새로운 안목과 새로운 가치관을 스스로 세워내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가 없고 스스로 상극의 사회에 동화되어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온전한 신성이라는 근본이 잊혀졌기에 서로가 미워하고 증오하고 쟁투하며 불안하게 살아가는 어지러운 세상이 심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체험과 공부를 통해 마음의 힘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나의 근본, 나의 신성에 대한 각성이 일어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나의 신성을 확인하고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새로운 시선으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도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상제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잊혀진 나의 마음, 나의 신성을 회복하고 찾아가는 길이 도의 길입니다. 


 인생이라는 것도 지나고 보니 지금의 인생의 모습이 마음속에 그려왔던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속에 담은 의도와 생각들이 시간속에서 결국은 그에 맞는 선택을 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하게 하고 길을 가게 왔던 같습니다. 


 세상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상극의 마음들을 담고 있으면 상극의 세상이 되는 것이고 상생의 마음을 사람들이 마음속에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상생의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음닦고 수행하며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힘과 신성을 먼저 스스로 각성을 하고 깨우침으로 주위를 하나 새로운 세상을 보는 시선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보게 됩니다. 이상으로 도훈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출처 : 태을도(太乙道) 수원법소(水原法所)
글쓴이 : 충정(忠正)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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