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나직하고 평범한 인존상생의 길
도제천하(道濟天下)는 안심안신(安心安身)의 길입니다. 안심안신이 의통(醫統)입니다. 상극의 마음을 상생으로 돌려 상생체질이 생활화되어야 안심안신이 됩니다. 독기와 살기가 남아있으면 자기욕심 채우기에 바빠, 끊임없이 남을 이용하고 지배하려는 마음이 생겨 안심안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진리와 생명의 중심에 서서 생기와 화기를 순환시키는 상생인간이 되었을 때 천하창생을 안심안신시키는 의통성업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안심안신은 정심정도(正心正道)와 정리정칙(正理正則)의 길입니다. 신비로움과 편법에 눈을 돌리면 정심정도와 정리정칙에서 벗어나 자가당착의 결과로서 낭패를 당하고 맙니다. 웅패의 술을 추구하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기에, 재민혁세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성인의 도는 천리에 순응하고 이치를 깨우쳐서 진리를 평범의 일상속에서 생활화시키기에, 제생의세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하늘을 나직히 하셨습니다. 증산상제님 스스로도 나직한 길을 걸으셨습니다. 제자의 종에게도 존댓말을 하셨고, 술집 종업원에게도 존칭어를 쓰셨고, 부인에게도 절을 세 번씩 하셨습니다. 상생은 나직한 길입니다. 상생은 겸손한 길입니다. 상생은 평범한 길입니다.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춘 겸손하고 평범한 마음이 상생지심입니다. 겸손지심과 존경지심 평범지심이 없으면 상생지심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나의 독기와 살기를 풀어없애 나직하고 평범한 자세로 겸손과 존경의 마음을 갖고 정성을 다해야 상대방이 감복하게 됩니다.
신비로움과 편법은 원칙과 정도에서 벗어나기에 항상 요행심과 불안감이 뒤따릅니다. 누가 만들어준 요행심과 불안감이 아니라, 자신의 탐음진치가 만들어낸 요행심과 불안감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이 뒤에는 병겁이 온 세상을 엄습하여 인류를 전멸케 하되 살아날 방법을 얻지 못하리니, 모든 기사묘법을 다 버리고 의통을 알아두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독기와 살기가 인간의 욕심을 부추겨 마지막 해원을 하는 후천개벽기에, 유불선이 만들어낸 온갖 기사묘법이 증산신앙인들의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개벽과 도통의 신비로움과 편법을 자극하며 난도난법의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신비로움과 편법은 어떻게든 남들보다 자신을 과시하고 높이려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태을도는 심법신앙을 하는 정심정도와 정도정칙의 도이자 겸손과 존경의 도입니다. 개벽신앙과 도통신앙을 추구하는 신비로움과 편법은 정심정도, 정도정칙과 겸손, 존경과 거리가 멉니다. 신비로움과 편법에 눈이 가는 증산신앙인들은 태을도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설령 태을도에 들어왔을지라도 올바로 적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이내 실망하여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신비로움과 편법의 대표적인 것이 개벽술과 도통술이며 신명술과 단전호흡입니다. 후천상생의 인존시대는 중심이 낮고 지극히 평범함을 추구하는 태을도인이 열어갑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했습니다. 도를 닦는다는 사람이 마음을 잘못 먹어 처세를 잘못하면 세상의 웃음거리와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중심을 못 잡았기에, 신비로움과 편법에 유혹당하고 심취하여 기고만장한 것입니다. 태을도를 만나 마음닦고 태을주를 읽어 독기와 살기를 풀어없애 마음속에 받아나온 시천 태을을 밝혀 천주의 품성을 되찾고 태을신성과 태을생명력을 회복하면, 지극히 평범하고 낮아지게 됩니다.
선천은 공연히 하늘이 높았기에 죽이는 공사만 보았지만, 후천은 하늘이 낮아지기에 살리는 공사를 보는 것입니다. 평범하고 낮아야 증산상제님의 사람입니다. 중통인의하신 증산상제님의 가르침을 잘 배워 심중의 직통길을 찾아가면, 증산상제님을 닮아 평범하고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증산신앙인들이 어떤 식으로든 남들보다 대접받고 높아지려는 수단으로 신비로움과 편법에 눈을 돌리지 말고, 태을도를 제대로 이해하여 증산상제님이 겸손과 존경으로 모범보여 주신 나직하고 평범한 인존상생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