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태을도 을미년 소서(小暑)치성 도훈 : “척을 짓지 말고 살을 쌓지 말라”
태을도 을미년 소서(小暑)치성 도훈 : “척을 짓지 말고 살을 쌓지 말라”
2015년 7월 7일 (음력 5월 22일)
요즘 충묵도인(忠黙道人)이 열심히 치성 참석하시고 또 사모님과 같이 오시기도 하니까 보기가 참 좋습니다. 충묵도인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하는 걸 보니까 언뜻 송시열(宋時烈) 선생 생각이 나는데요. 송시열 이 양반이 대전(大田) 유성분인데, 부친이 항상 이야기하기를 “너는 이이(李珥)를 공부해라. 이이는 주자(朱子)의 맥을 이었고 주자는 공자(孔子)의 맥을 이었으니, 결국 이이를 공부하게 되면 공자를 사사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얘기를 항상 하셨나 봐요. 그래서 송시열 선생이 논산(論山/연산)에 김장생(金長生)이라고 이이의 학문적 전통을 이은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을 스승으로 삼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유성에서 논산까지 말을 타고서 배우러 다닌 거예요. 유성에서 논산까지 거리가 한 60~70리 돼요. 지금이야 차타고 가면 금방이지만, 옛날에 그 육칠십 리 되는 길을 말을 타고서, 걸어가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여간 곤욕이 아니잖아요. 그걸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는 거예요. 송시열 선생이 김장생으로부터 그렇게 열심히 배워서 스승의 학문적 업적을 전부 흡수한 거예요. 그 바탕위에서 송시열 선생이 학문적인 업적을 쌓아 나갔어요. 그래서 공자 맹자 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子)’로 일컬어진 양반이 송시열 선생이예요. 송자(宋子). 송자대전(宋子大全)이란 책도 있어요. 우리 충묵도인님이 열심히 이렇게 하시면 태을도인으로서 한 경지를 열고 일가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시골에서 중학교 다닐 때 보니까 먼 곳에 사는 학생들이 제일 빨리 오더라구요. 학교 정문 앞 문방구집 사는 애는 매일 늦어요, 종이 ‘땡’ 치면 출발해서. 진산면에 중학교가 하나 있었어요. 진산면에서 제일 깡촌이 건천리(乾川里)라는 곳인데, 옛날에는 제대로 버스가 없으니까 그곳 친구들은 학교 늦을까봐 일찌감치 출발해서 두 시간 넘게 걸어오는 거예요. 책보를 이렇게 어깨에다 매고서. 옛날엔 책보 매고 다녔거든요. 우리가 학교에 가면 항상 먼저 와있더라고요, 걔네들이. 그래서 공부하는 자세가 저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나 반성도 많이 하고 했는데, 상제님 고수부님 가르침을 대하는 자세도 그래야 되지 않겠나 생각해봅니다.
시내에 있는 조계사(曹溪寺)에 큰스님이 오셔서 법문을 할 때 보면, 청법가(請法歌)를 하잖아요. 사부대중이 전부 모여서 법을 설해달라고 청법가를 하는데, 우리가 치성을 모시고 하는 건 어떻게 보면 상제님 고수부님한테 ‘치성에 오셔서 저희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시고 혜안을 열어주십시오.’ 이러는 거랑 마찬가지에요. 저도 치성을 집전할 때 간곡하게 그런 심고를 드리고 끝날 때도 심고를 드리는데, 아까 성언봉독을 한 것처럼 오늘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 중에 우리가 가장 염두에 둘 게 뭐냐 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척을 짓지 않고 살을 쌓지 말아야 되겠다. 우리가 상극세상에서 상생세상으로 넘어가려면 핵심이 독기와 살기를 풀어서 내가 쌓은 척과 내가 지은 살을 전부 풀어 헤쳐야 되는데, 그러려면 우리가 정말 마음자세를 잘 가져야 되겠다. 저기 액자 속 말씀에도 있지만, 반성은 자기완성의 거울이라 그러잖아요. 반성과 참회라는 것은 자기를 완성시켜가는 거울이라고요.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내가 지은 척, 내가 쌓은 살을 되짚어보는 거예요. 선천 삶의 방식대로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면서 본의아니게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적은 없는가, 남의 순수한 영혼에 큰 상처를 주지 않았는가, 내가 관계하는 분들한테 정말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적은 없는가, 이런 것을 정말로 우리가 반성하고 참회해서 풀어내야 되겠다.
상제님 고수부님이 우리 일꾼들한테 내린 가르침 중에 근본 가르침이 뭐냐 하면 척을 짓지 말고 살을 쌓지 말라는 거예요. 김형렬 성도가 상제님 수석성도잖아요, 수제자. 상제님이 김형렬 성도를 맞아들일 때, 그 분한테 한 첫 얘기가 뭐냐 하면 “앞으로 무극대운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전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라.” 이 말씀을 하셨어요. 척을 짓지 말라는 거예요, 척을. 상극세상에서 살아온 독기와 살기의 마음을 가지고는 말과 글과 행실을 통해서 척을 짓기가 쉽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제님은 김형렬성도한테 모든 일에 마음을 조심해서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해서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거지요.
천주의 품성, 하느님의 성품, 그 성품을 갖기 위해서는 독기와 살기를 버려야 되는데, 독기와 살기가 만들어낸 척과 살을 풀어 없애고 다시는 척과 살을 또 지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제님이 제자들을 데리고서 척과 살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주셨어요.
김영학 성도를 제자로 받아들일 때 얘기예요. 하루는 김영학이란 분이 상제님께 배움을 청하러 찾아왔어요. 그런데 상제님께서 제자로 안 받아들이시는 거예요. 금방 받아들이지를 않고 뜸을 들이시는 거예요. 김영학이란 분이 나름 그 지역에서는 한가닥 하는 유지인데 자존심이 상할 거 아니에요.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거기 있는 상제님 제자들이 말리면서 정성을 다해서 사사하기를 다시한번 청해 보라고 일러줬어요. 그래서 김영학 이 양반이 상제님한테 정성을 다해서 말씀을 드렸더니, 갑자기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야단을 치면서 무안을 주는 거라. 그러니 김영학 이 분이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분할 거 아니에요. 정성스럽게 말씀을 드렸는데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하시니까. 그런데 그때 상제님께서 김영학 성도의 마음을 읽으시고 불러서 말씀하신다고요. “내가 야단을 친 것은 너한테 붙어있는 두 척신에게 한 거다.” 그러니까 김영학 성도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거라. 그래서 상제님께서 “네가 18년 전에도 살인을 하고 올해도 살인을 했다.” 김영학 성도가 깜짝 놀라서 무슨 말씀인지 여쭈어 보니까 상제님께서 자세하게 일러주시기를, “18년 전에 남원에서 어떤 사람하고 말시비가 붙어서 싸우다 네가 화로를 집어던져서 그 사람 머리에 맞아서 그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가 다음해 2월에 죽었다. 그러니 네가 살인자가 아니냐. 그리고 네 외숙이 의병한테 약탈을 당한 일로 네가 백양사에 주둔하고 있는 의병대장한테 찾아가 항의를 했고, 그 의병대장이 약탈한 사람을 찾아내서 처형해서 죽였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네가 죽인 게 아니냐. 그 두 척신이 너한테 보복하려고 붙어있다.” 그 얘기를 듣고는 김영학 성도가 깜짝 놀란 거예요. 자기는 실제로 살인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까 자기가 살인자인 거예요. 남원에서 말다툼하다가 화로를 던져서 그 사람이 죽고, 자기 외숙 일을 항의해서 결국 그 의병이 죽게 만들었으니까. 모골이 송연할 거 아니에요. 아~ 이렇게 죽은 사람들이 나한테 원한을 가지고 때를 노리고 있구나.
우리한테도 그런 게 없으란 보장이 없잖아요. 우린 잘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처신을 잘못해서, 우리는 합리적으로 법대로 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고 사람을 다치게 만드는 그런 일이 없으란 보장이 없다 이거에요. 그리니까 상제님이 그런 말씀 하신다구요. “너희들은 죄가 없어도 있는 듯이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조심하라.” 죄가 없더라도 항상 방심하지 말고 죄가 있는 듯이 조심하라는 거예요. 항상 죄가 있는 듯이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자기 행실을 살피라 이거에요.
그러니까 상극세상을 살아온 독기와 살기가 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말과 글과 우리의 처신으로써 주변사람을 다치게 해서 척을 지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럼 척을 진 사람들은 우리한테 보복하려고 할 거잖아요. 그 사람이 죽었으면 죽은 귀신이 되어서 보복하려고 하고, 그 사람이 설령 살아있을 지라도 그 사람의 조상신이라든가 그 사람을 아끼는 어떤 신이 보복하려고 할 거 아니에요.
박공우 성도한테는 상제님께서 어떤 걸 가르쳐 주셨냐 하면, 천원인가를 박공우 성도와 같이 갔는데 누가 참외를 주는 거예요. 상제님한테 참외를 드렸겠지요. 상제님께서 안 잡수시고 있으니까 박공우 성도가 그걸 먹은 거예요. 먹고서 탈이 났어요. 설사가 나서는 그치질 않는 거예요. 박공우 성도가 맛있게 먹었는데 탈이 났으니까 상제님께 여쭤봤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상제님께서 말씀해주셔요. 네가 살기를 맞았다. 그 아내가 참외를 주기 싫어해서 참외에 살기가 붙어 있었는데 네가 그 살기를 맞았다. 상제님께서 닭국을 한 사발 주셔서 박공우 성도를 낫게 해 주세요. 그러니까 그 참외를 준 사람은 호의로 참외를 줬지만, 그 아내가 그걸 싫어하니까 그 참외에 살기가 붙은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박공우 성도가 살이 붙은 참외를 먹은 거지. 그러니까 탈이 난거에요.
또 한번은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계시는데 누가 꿩을 가지고 온 거예요. 상제님께서 잡수실 생각을 안하고 내버려뒀어요. 한 삼 일정도 지나니까 꿩이 썩는 거예요. 제자들이 꿩을 왜 안잡숫고 이렇게 썩히나 이상하게 여기니까 상제님 하시는 말씀이 거기에 살이 박혀있다. 그 아내가 주길 싫어하는 걸 그 사람이 가져왔기에 살이 박혀 있다. 그러곤 상제님께서 그 살을 제하시고 제자들한테 그 꿩을 먹게 하세요.
우리 딴에는 잘한다고, 성경신을 다한다고 열심히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살이 박혀있을 수 있어요. 살기가 박혀있을 수도 있고 척이 거기에 붙어있을 수도 있어요. 살기가 붙어 있으면 우리가 먹으면 탈이 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 모시고 우리가 잘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처신을 잘못해서 본의 아니게 살기가 있는 것을 들고서 우리가 행세할 수가 있다고요. 그걸 멋모르고 먹은 사람들은 탈이 날 거 아니에요.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 말씀을 전한다고 전했는데 거기에 우리가 처신을 잘못한 결과로서 주변사람들의 원망, 주변사람들의 살기, 주변사람들의 불평불만과 원한이 붙어 있으면 그것이 다른 사람한테 전달이 돼요. 그걸 전달 받은 사람은 탈이 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 모시고 정말로 가르침대로 산다고 노력을 많이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내면을 깊이 살펴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척을 짓고 살을 쌓고 살기를 붙이고 그럴 수가 있어요. 더욱더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행실을 살피고 가족을 살피고 주변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요. 우리 딴에는 잘한다 하지만 상제님이 보시기에 살을 붙여주는 사람일 수 있고 척을 이어주는 사람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아까 서두에서 송시열 선생이 스승 김장생을 매일같이 찾아가서 말씀 듣고 교육받고 지적받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냐 하면 근본을 챙기는 것 중심을 챙기는 것 그것을 배운 거예요. 스승이란 사람은 다른 게 아니고 근본을 항상 일깨워주는 사람이에요. 양심을 일깨워주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세속 일에 바빠서 근본을 잊어먹을 수가 있고 중심에서 좀 벗어날 수가 있고 양심에서 좀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가 있어요. 근데 이렇게 치성에 참석해서 상제님 고수부님 앞에 와서 심고를 드리고 주문을 읽고 다같이 도담을 나누고 도훈을 같이 생각하다 보면, 우리의 근본 중심 양심 이런 것을 다시 한 번 챙길 수가 있다고요.
상제님 고수부님이 항상 우리한테 말씀하시는 건 뭔가 하면 선천 오만 년 동안 상극지리때문에 사람들이 근본에서 너무나 많이 벗어났다는 거예요. 중심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다는 거예요. 양심에서 너무나 어긋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독기와 살기로 척을 짓고 살을 쌓고, 그 자업자득으로 자만의 과정에 빠지게 된다는 거예요. 천하창생이 이걸 못 벗어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상처를 입히고 생채기를 주고 그래서 마침내는 전 세계인류가 다 죽게 생겼다는 거예요, 급살병에 걸려서.
상제님이 오셔서 상극세상을 상생세상으로 넘기는 천지공사를 보시고 우리한테 마음을 바꿔라. 이제부터 마음을 바꿔라. 중심에서 벗어난 마음, 근본에서 달아난 마음, 양심에서 어긋난 그 마음을 챙겨서 근본으로 돌아가라. 이거에요. 중심을 회복하라 이거에요. 양심을 찾으라 이거에요. 그게 원시반본이거든요. 중심과 근본과 양심, 그것의 핵심은 시천 태을이에요. 선천 오만 년 동안에 그걸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인간의 마음속에 받아나온 시천 태을, 이걸 밝히고 찾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시천주 봉태을 하는 태을도인으로 재생신 되어야지만 상생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우리가 상제님 신앙을 하면서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열심히 하는 그 이면에는 선천 오만 년동안 우리가 윤회환생하면서 마음속에 차곡차곡 깊이 스며든 독기와 살기를 버리지 못해서 독기와 살기를 내뿜는 증산신앙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오히려 상제님 고수부님 가르침을 믿어 나가면서, 숨겨져 있던 교만심이 나오고 몰랐던 자만심이 나오고 자기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런 거만함이 나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더 척을 실어나르고 살을 실어날라서 세상을 더 혼란하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상제님 고수부님을 모르는 것만도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거예요.
오늘 강증산과 태을도 316-317페이지에서 보면
@제자 여쭙기를 “동학교도가 주송시에 혹 몸이 뛰어오르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상제님 말씀하시길 “내리는 기운을 감당 못함이니, 무릇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가 가만히 있으면 기운이 잘 보존되고 흔들리면 기운이 새어나가는 것과 같으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주문수련을 할 때에는 합장을 하고 단정히 앉아 움직이지 말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정성을 다하면 잘하는 것이니라.” “또한 주송시에는 식사를 든든히 하고 천천히 주문을 읽어 천지기운이 온 몸을 둘러싸는 듯 받아내려 기운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라.” 제자가 여쭈기를 “잘못 주문을 읽어 나락에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상제님 말씀하시길 “헛된 영에 이끌리게 되므로 이를 구하지 못하면 평생 그르치느니라.” 제자 여쭈기를 “공부하는 사람이 헛된 영에 잘못 빠짐은 무슨 이유입니까?” 말씀하시길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척을 많이 짓고 주문읽는 법이 잘못되어서 그러하느니라.” (이중성의 천지개벽경 P193~194)
나름대로 수행을 열심히 하는 데도 잘못하면 헛된 영에 빠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헛된 영에 빠지는 이유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척을 많이 짓고 주문읽는 법이 잘못되어서 그러하느니라.” 쉽게 말하면 정심정도의 수련을 안하기 때문에 헛된 영에 빠진다는 거예요. 그렇게 헛된 영에 한 번 빠지면 “헛된 영에 이끌리게 되므로, 이를 구하지 못하면 평생 그르치느니라.” 평생 그르친다고요.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척이 많고 살을 많이 지으면 내가 올바른 길을 가는데 신명들이 가만히 안 놔둔다는 거예요.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을 만나서 올바른 길을 가야 될 거 아니에요. 성공하는 길을 가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고, 독기와 살기 때문에 척을 많이 짓고 살을 많이 쌓으면, 헛된 영에 이끌려 잘못 빠져서 악의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진다는 거예요.
선생과 스승을 만나는 것도 다 제 마음의 수준이에요. 유유상종이라고요. 모든 건 유유상종이에요. 일방적인 관계는 없으니까. 자기가 마음을 어느 정도 깊게 하고 수준을 높이면 그것에 걸맞는 스승이 나타나고 도반이 나타나요. 내가 독기와 살기를 풀어서 척과 살을 없애버리면 올바른 길은 나타나게 되어있고 올바른 스승이 보이게 되어있어요. 자기가 짓는 거예요. 인연도 자기가 짓고 운명도 자기가 짓고.
지금이 2015년 을미년 후반기 시작되는 7월인데, 과연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의 가르침을 잘 배워서 실천한다고 자부하지만, 잘 실천한다고 자부하는 그 확신이 정말로 확신이 들려면, 우리가 더 참회하고 반성하고 우리가 더 뒤돌아보고 검토해보고 그래야 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반성은 자기 완성의 거울이에요. 송시열이 논산까지 말타고 다니면서 지식도 지식이지만 배운 게 뭔가 하면 참회하는 마음, 반성하는 마음, 그걸 배웠을 거예요.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 가르침을 배우면서 내 양심을 들여다보고 내 중심을 살펴보고 내 근본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보고, 이렇게 할 수 있는 마음만 있어도 삐끄러지지 않는다고요.
앞에 우리가 아까 대학경 서문도 읽었지만 ‘기본(其本)이 난이(亂而)면 말치자(末治者)는 비의(否矣)’라. 근본이 잘못되면 나머지는 보나마나예요. 아무리 주변머리가 번창하고 화려하고 해도 근본이 잘못되면 그건 완전히 추풍낙엽신세가 되고 말아요. 척을 쌓지 말고 살을 짓지 말라는 건 상제님 고수부님의 근본적인 가르침, 중심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가 2015년 후반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내 신앙의 현주소, 중심을 얼마나 잘 챙기고 있는지, 근본을 얼마나 잘 챙기고 있는지, 양심을 얼마나 잘 챙기고 있는지 이것을 재삼재사 검토하고 확인해서 신앙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하기를 바랍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