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 도훈(道訓)

태을도 2015년 1월 월례치성 도훈 : 지은보은의 상생생활

태을세상 2015. 2. 3. 13:06

태을도 2015 갑오년 1월 월례치성 도훈

"지은보은(知恩報恩)의 상생생활"

2015. 1. 31 (음력 2014. 1. 12)

  중학교 때인가? 친구들하고 학창생활할 때인데, 시골이라 동네친구가 학교친구였지요. 다들 아래 윗동네라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거예요. 그런데 하루는 담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너희들 서로 친구를 한 명 지목해서 그 친구의 장점 그 친구한테 칭찬해 주고 싶은 말을 해 봐라.” 친구들이 그 때부터 얼어붙어 버렸어요. 맨날 홀딱 벗고 목욕하고 집에 가서 놀고 지내던 친구인데, 장점을 이야기하라고 하고 칭찬해 주라고 하니 아이들이 순간 얼어붙어서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다들 입다물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한 친구를 지명했어요. “너 일어나서 한번 이야기해 봐라.” 그랬더니, 할 얘기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또 하나. 국회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이 너무나 싸우니까, 어느 TV프로그램에서 서로 아귀다툼만 하는 여야 국회의원들을 불러다 놓고 칭찬을 해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칭찬하는 말이 안 떠오르는 거예요. 국회의원들은 말(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나중에는 기지를 발휘해서 서로서로 적당히 덕담들을 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상대방의 단점을 지적하기는 참 쉽지만, 상대방의 장점을 얘기하고 칭찬하는 것에는 굉장히 인색한 것 같습니다. 서로간에 장점을 찾거나 칭찬해줄 수 있는 면을 보려고 하는 마음, 그런 노력들이 부족하지 않은가? 그런 것들은 우리가 지내는 생활환경, 종교인으로서는 신앙환경, 이 환경 속에서 서로 경쟁하고 자기의 이익을 얻기 위해 다툼하다 보니 상대방 단점을 지적하고 비리를 폭로하고 이런 데에는 본능적으로 익숙하지만, 그 사람의 장점을 먼저 보고 칭찬하는 면을 들춰보는 데에는 상당히 부족하고 습관이 안 붙어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 마음의 자세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긍정적인 면이 주로 보이고 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부정적인 면이 많이 보여요. 원수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온 세상 천지가 전부 원수로 보이게 돼요. 내 가까운 가족부터, 이웃, 사회, 전부 원수로 보이는 거지요.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서운하게 하고, 내가 하는 일마다 방해하는 그런 원수로 보인다고요. 내가 좀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세상이 전부 은인 관계로 보입니다. 전부 나를 도와주고 키워주고 그런 은인관계로 보이는 거지요. 가족, 이웃, 사회로 이어지는 내 주변을 원수로 가득찬 천지로 만드느냐 아니면 은인으로 가득찬 천지로 만드느냐? 이것은 결국 내 마음의 자세, 내 생각의 위치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예요.

  ‘내 아이가 달라졌어요’, ‘우리 부부가 달라졌어요’라는 TV프로그램이 있어서 몇 번 관심있게 본 적이 있어요. 몇 번 보고 느낀 게 아이의 문제는 결국 부모의 문제라는 거예요. 아이들의 행동은 다 부모에게서 배운 대로 하는 거예요. 부부의 문제도 그 부부의 부모한테서 그대로 배운 겁니다. 그 마음을 그대로 배우고 마음씀씀이를 그대로 배워서 부지불식간에 그대로 하는 거예요. 마음의 구조도 어떻게 보면 유전되고 행실의 구조도 유전되는 거예요. 행실이 굉장히 돌출적으로 보이고 이해할 수 없어 보이지만 그 내면을 보면, 보고 배우고 듣고 한 그 결과라는 겁니다.

  우리가 왜 상제님을 따르느냐? 왜 우리가 고수부님을 모시느냐? 그것은 우리가 그 분들한테 큰 덕을 보고자 한 것도 아니고 그분들한테 큰 영화를 보자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인간을 소우주 혹은 소천지라고 하잖아요? 우주의 모든 신령한 고귀함과 존엄함이 똘똘 뭉쳐진 인간이 가야 될 양심, 인간이 지향해야 될 양심을 항상 밝혀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상제님 고수부님을 따르고 모시고 배우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상제님 고수부님을 모시는 우리 제자들이, 우리 도자들이, 상제님 고수부님이 원하는 실천하는 모범을 보이신 그 환경을 만들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상제님이 그런 얘기를 하시잖아요. 세상이 악하다고 탓하고 욕하지 마라. 너희들 사회부터 개선해 나가면 세상은 그대로 본뜬다. 너희들이 선하면 이 세상은 선하게 될 것이요, 너희들이 악하면 이 세상은 악하게 된다. 너희들 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신앙환경을 어떻게 조성하고 생활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는가에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본뜬다는 거예요. 상제님 고수부님이 상극세상을 상생세상으로 이화시켜서 선경세상을 건설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상제님 고수부님을 대행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 나라로 보면 올바른 신하요 배움으로 보면 올바른 제자요 가정으로 보면 올바른 자식을 만나야 당신이 심혈을 기울이시고 정성을 기울이신 상생의 선경세상이 현실적으로 이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상극에서 상생으로 넘어가는 생활환경, 신앙환경을 조성하는 첫째가 독기와 살기를 풀어서 보은의 생활을 하는 거예요. 은혜를 갚으라는 겁니다. 이성계는 온 세상이 돼지로 보인다고 무학대사에게 이야기했지만, 무학대사는 이성계 당신을 비롯해 온 천지가 부처로 보인다 그랬듯이, 상제님 고수부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을 은인의 모습으로, 은혜로운 감사한 모습으로, 고마운 모습으로 보라 이겁니다. 원수관계를 은인관계, 보은관계로 돌리라 이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원수관계가 줄어들고, 은인관계 보은관계가 늘어나서 상극공간이 상생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갈 거예요. 그 출발이, 세상 탓하지 말고 지금 당장 너로부터 시작하라는 겁니다.

  관운장이라는 사람이 대인대의의 표상인데, 이 사람이 평상시나 전쟁시나 공자가 지은 춘추를 항상 손에 들고 대인대의를 지켰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전쟁터에서 자기 주군이자 형님이자 스승인 유비를 잃어버렸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린 거예요. 그러다 조조한테 잡히게 되니까 목숨을 끊으려고 했지요. 그때 조조가 이렇게 관우에게 얘기해요. 네가 이대로 죽으면 스스로 하늘에 맹세한 세 가지를 저버리는 것이다. 첫째 너의 형님이자 스승이자 주군인 유비와 네 동생 장비와 한 날 한 시에 죽자고 도원결의를 맺어놓고는 그 약속을 네가 어기는 거다. 둘째 너의 형수인 감부인과 미부인을 네게 맡겼는데, 네가 끝까지 지켜드리는 게 도리가 아니냐? 나중에 유비 앞에 네가 얼굴을 들 수 있겠냐? 셋째, 태평천하한 세상을 만들자고 유비 장비와 도원결의를 맺었는데 네가 죽어버리면 그 약속이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나? 그렇게 조조가 설득했어요.

  조조 얘기를 듣고는 죽으려던 관운장이 마음을 바꿔 조조한테 투항하면서 대신 조건을 내세웠어요. 나는 우리 형님이 어디에 계신지만 알면 세상 끝이라도 가겠다. 그리고 미부인과 감부인을 예로써 대해 달라. 그렇게 해서 조조에게 투항해요. 그러니까 조조가 관운장을 살려준 거지요. 물론 조조의 본심은 관운장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천하를 도모하고자 한 거지만, 여하튼 살려준 것은 살려준 거지요. 그 보은관계를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이용하잖아요. 조조가 화용도로 올 줄 미리 알고 일부러 관운장에게 화용도를 막으라고 맡겨요. 관운장이 유비보다 한 살이 위예요. 제갈공명은 유비보다 무려 스물두 살이나 아래예요. 새파랗게 젊은 사람을 군사(軍師)라고 유비가 머리를 조아리니 관운장이 제갈공명을 영 못마땅해 했지요. 기강도 잡을 겸 조조의 명운이 아직 죽을 때가 아닌 걸 제갈공명이 알아서 화용도에 관운장을 투입해요. 그런데 관운장이 자기를 살려준 은혜, 조조가 관운장이 유비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형수를 모시고 나섰을 때 다섯 관문을 지나면서 여섯 장수를 참했는데, 반드시 죽이라고 조조가 지시했다면 관운장을 죽였겠지요. 그 은혜를 관운장이 항상 가슴속에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자기 목숨을 담보로 조조를 살려줍니다. 제갈공명은 살려줄 것을 다 알고 있었지요. 그렇게 화용도에서 조조를 만나게 해서 관운장으로 하여금 이전의 은혜를 갚게 하고 제갈공명에게 승복하게 만들었지요. 진정한 대인대의라는 것은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것입니다. 은혜를 모르고서 대인대의를 내세운다, 그것은 진정한 대인대의가 아니지요.

  상생이란 은혜관계를 잘 발굴해 가지고 그것을 연결해 주는 거예요. 그것이 상생이예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하잖아요. 흥정을 붙이려면 서로간에 은인관계를 이어주는 것 같이 좋은 흥정이 없어요. 내가 A라는 사람한테 은혜를 입었고 B라는 사람이 나한테 은혜를 입었고 이것을 A, B 두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흥정이 되잖아요. 싸움을 붙이는 방법은 서로 원수관계를 만들면 돼요.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미워할 수 있는 말, 그런 행실을 자꾸 부추기면 싸움이 나게 돼요.

  상제님은 우리들한테 원수를 은혜로 돌려라. 독기와 살기를 풀어서 어떻든 간에 장점을 발굴하고 희망을 발굴하고 은혜로움을 발견해서 원수관계를 은인관계로 돌려라. 용서하고 사랑해라. 너희들이 세상에 원수질 일을 발견하려고 쫒아다니면 원수 아닐 일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너희들이 은인관계를 찾아서 돌아다니면 은인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다. 너희들이 할 일은 원수관계를 은인관계로 바꾸는 일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 봉독한 『강증산과 태을도』 270쪽을 보면, “다른 사람이 만일 나를 치면, 그 손을 만져 위로할 지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치는데 일반적인 사람 같으면 성질낼 것 아닙니까? 왜 이유없이 날 때리냐고..그런데 상제님은 그러지 말고, 그의 손을 만져서 위로해 주라는 겁니다. 누가 나를 때리면 일반 사람들은 원수질 것 아닙니까? 그런데 상제님은 그 원수관계를 은인관계로 돌리라는 겁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저 사람이 나를 때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 밑의 말씀이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하면 덕이 되어 복을 이루느니라.” 원수를 풀어서, 나를 때린 사람도 은인처럼 사랑하면 덕이 되어 복을 부른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 독기와 살기를 되갚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고 독기와 살기를 풀어서 생기와 화기를 북돋우러 온 사람이다. 너희들이 악을 악으로 갚으면 내 제자가 아니고 내 신하가 아니고 내 자식이 아니다. 보은으로 장점을 밝히고 희망을 밝혀주고 은혜로움을 발견해서, 보은하는 마음으로 상생을 해야 진정한 해원이 된다는 거예요. 돈 많이 갖다 주고 세(勢) 많이 붙여주고 그렇게 해원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상생으로 변해야 주위 사람도 그 덕화를 입어서 양심을 붙잡고 양심법 대로 살아서 그 양심이 해원한다는 거예요. 양심이 해원한다는 것은 진리가 해원한다는 겁니다. 양심을 지킨 사람들은 천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천심을 가진 사람들은 상제님 고수부님을 따를 수 밖에 없어요.

  상제님께서 박공우 성도가 몽둥이를 들고서 상제님 욕하는 사람을 때려죽인다고 하니까 상제님이 말리잖아요. “네가 금일로서 남이 되려 하느냐?” 박공우 성도 입장에서는 자기가 가장 존경하고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을 모시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 내막도 모르고, ‘강증산이 미친 놈’ ‘미친 놈 따라 다니는 병신같은 놈’이라고 욕하니까 얼마나 열을 받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생기는 것이 있나, 맨날 용서하라고 하고 사랑하라고 하니까 따라 다니느라고 고생이 많은데. 상제님이 “너는 그 사람이 원수냐? 나는 그 사람들이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나를 미친 놈이라고 동네방네 떠들면서 선전해 주니 얼마나 은인이냐.우리가 하지도 못할 판인데 그 사람들이 나를 미친 놈이라고 해가지고 편을 싹 갈라주니 얼마나 좋으냐. 내가 미친 놈이라고 하니까 네가 나를 원없이 따르게 되지 내가 성인이라고 하면 네가 나를 따를 기회가 있겠느냐?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박공우 성도가 거기서 큰 깨침을 얻어요. 상제님이 완력으로 하신 것도 아니에요. 양심을 일깨워준 거예요. 양심을 일깨워주니 자연히 제 손으로 제가 든 몽둥이를 놓잖아요. 누구나 다 양심을 일깨워주면 양심으로 돌아옵니다. 자기가 스스로 다 내려놓는 겁니다. 그래서 진정한 가르침은 양심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왜 원수관계를 은인관계로 돌리라고 하느냐? 스스로 양심을 일깨워서 양심적인 행동을 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 양심을 잡으면 자기가 자기 양심을 밝히면, 상제님 고수부님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양심에 충실하게 살아요. 상제님 고수부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잘 배워서 이 세상에 고마움의 물결이 넘실대게 하고 은혜로운 물결이 찰랑거리게 하고 그래서 모든 원수관계, 크고작은 경쟁 간에 벌어지는 이런저런 원수관계를 전부 은인관계로 돌려나가라는 거예요. 그것이 의통성업이고 그것이 도제천하고 그것이 세상 사람을 살리는 길이다 이거예요. 그렇게 해 나가면 처음에는 힘들고 어렵겠지만 한 번 얘기하고 두 번 얘기하고 한 번 실천하고 두 번 실천하면, 지켜보는 사람들이 깨달아 간다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가 철부지 어린애를 키웠듯이 은혜를 아는 것 그것이 보은생활의 첫걸음이라는 겁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부모님의 중요성을 알아야 효도할 거잖아요?

  어느 스웨덴 입양아가 갓난아기 때 버림받아 처음에는 원망을 많이 했지만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니 어느 순간에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 감사함이 뼈에 사무친 거예요. 그러니까 원망과 서러움이 눈 녹듯이 다 녹고 나를 낳게 해준 내 생명을 존재케 해준 그 고마움만 있는 거예요. 애기때 입양되어가서 한국말도 모르는데도 엄마를 찾아 헤메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발 나타나만 주세요. 저는 하나 원망을 안합니다.”하고 스웨덴 입양아가 외치고 다니는 걸 TV에서 봤어요. 부모님의 은혜, 이웃의 은혜, 세상의 은혜를 먼저 안 사람들이 모범적으로 실천하면 그걸 지켜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깨친 순서대로, 안 순서대로, 잘 따라가게 되어있어요.

  상제님은 고수부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은혜를 알고 은혜를 실천하는 상생생활을 해라, 지은(知恩) 보은(報恩)의 상생생활을 하라고 하세요. 지은보은의 가르침을 실천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제님이 공사보시고 고수부님이 감리하신 인존시대가 구현된다는 거예요. 도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속에 있어요. 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 가까운 이웃에 있어요. 멀리 찾을 필요가 없어요. 상제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의 양심만 일깨우면 자연히 세상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울 수 있다는 거예요.

  남 탓하지 말고, 나부터가 중요한 거예요. 모든 사람들을 은혜롭게 고맙게 감사하게 그렇게 생각하면 말과 행실도 그렇게 나올 거잖아요?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사는 마음의 자취니라.” 우리 태을도인들이 태평천하한 세상을 만들려면, 원수관계를 은인관계로 돌려서 은혜를 갚는 그런 생활을 하면 자연스럽게 태평천하한 세상이 도래한다는 겁니다. 그 일이 힘들고 어렵지만 이제는 같이 마음을 주고받는 천지부모님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는 우리 도반들이 생겼잖아요? 얼마나 좋은 일이예요. 2015년 1월 월례치성에 다시 한 번 우리가 원망하는 구석이 없는지 미워하는 구석이 없는지 내 스쳐간 인연들 내가 행한 일들을 잘 살펴서 좀 더 감사하고 고맙고 은혜로운 마음을 갖고 상생생활에 힘쓰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