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와 태을주의통

[스크랩] 27년 헛도수가 결실맺는다

태을세상 2015. 1. 21. 09:13

@ 다시 양지(洋紙) 석 장을 펴놓고 귀마다 천곡(泉谷)이라 쓰시거늘, 치복이 여쭈어 가로대 "어떠한 사람이니이까" 가라사대 "옛날에 원(元)노릇 가서 절사(節死)한 사람이니라" 하시고, 치복과 송환을 명하사 양지를 마주잡아들게 하시고 가라사대 "그 모양이 상여에 호방산(護防傘)과 같도다" 하시고, 양지를 땅에 놓게 하신 뒤에 갑칠을 명하사 가라사대 "밖에 나가서 하늘에 구름이 있는가 보라" 갑칠이 나가보니 서쪽 하늘에 한 점의 구름이 있거늘, 돌아와 아뢰니 가라사대 "구름이 하늘을 덮는가 보라" 하시거늘 다시 나가보니 경각에 구름이 하늘을 덮었는지라. 들어와 아뢰니 양지 중간에 호승예불(胡僧禮佛) 군신봉조(君臣奉詔) 오선위기(五仙圍碁) 선녀직금(仙女織錦)이라 쓰시며 치복에게 일러 가라사대 "궁을가에 '사명당(四明堂)이 갱생'이란 말을 중 사명당(四溟堂)이란 말로 알아 왔으나 그릇된 말이요 이 사명당(四明堂)을 이름이라. 조화는 불법에 있으니 호승예불 기운을 걷어 조화를 쓰고, 무병장수는 선술에 있으니 오선위기 기운을 걷어 무병장수케 하고, 군신봉조는 장상이 왕명을 받는 것이니 그 기운을 걷어 나라를 태평케 할 것이요, 선녀직금은 선녀가 비단을 짜는 것이니 그 기운을 걷어 창생에게 비단옷을 입히리니, 유월 보름날 신농씨 제사를 지내고 나서 일을 행하리라. 올해가 천지의 한문이라 이제 일을 하지 못하면 일을 이루지 못하리라." (대순전경 pp286-288)

 

@ 또 양지(洋紙)에 이십칠 년(二十七年)이라 쓰시거늘 그 뜻을 물은 대 가라사대 "홍성문이 회문산(回文山)에서 이십칠 년동안 헛공부를 하였다 하니, 이로부터 이십칠 년동안 헛도수가 있노라." 또 양지 한 장을 열두 조각으로 내어 조각마다 글을 쓰신 뒤에 한 조각은 친히 불사르시고 열한 조각은 치복을 명하여 불사르시니, 문득 비가 크게 내려 이 비로 인하여 보리를 잘 먹게 되니라. (대순전경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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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곡은 임진왜란 때 부산에서 왜적을 막다가 의롭게 죽은 송상현의 호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 홍성문의 회문산 공부기운을 가져와 양지 석 장을 포개 27년이라 쓰셨기에, 헛도수가 3인에게 해당됩니다. 헛도수는 포교도수입니다. 헛도수는 포교의 결실을 못맺는다는 의미일 뿐, 난법과 진법을 떠난 것입니다. 고수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씨뿌릴 사람 따로 있고, 옮겨심을 사람이 따로 있으며, 추수할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포교의 시작과 끝이 27년 헛도수로 마감됩니다. 증산상제님이 공사보신 대로, 고수부님 주재하에 차경석 성도에 이치복 성도가 가세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포교운이 발동하였습니다. 포교의 최대 공덕자는 보천교의 차경석 성도입니다. 그리고 차경석 성도 이후 최대의 포교공덕자는 대순진리회의 박한경 도전과 증산도의 안운산 종도사입니다.

 

 박한경 도전이나 안운산 종도사나 모두 이치복 성도에게 연맥을 대고 있습니다. 조철제 도전을 포교한 김혁, 안운산 종도사의 부친과 조부가 모두 이치복 성도의 연비이기 때문입니다. 박한경 도전은 조철제 도전에게서 도를 받았고, 안운산 종도사는 조부와 부친을 통해서 도문에 입문하였습니다. 차경석 성도는 1909년부터 1936년까지 27년, 박한경 도전은 1969년부터 1996년까지 27년, 안세찬 종도사는 증산도로 간판을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84년부터 2011년까지 27년입니다. 27년은 준비기간을 뺀 본격적인 포교기간입니다. 고수부님이 1911년 대흥리에서 태을도의 씨를 뿌리신 포교운이 100년만인 2011년에 마감됩니다. 태을주를 전하는 교단의 명칭은 각기 달랐지만, 결국은 태을도를 전한 것입니다. 차경석 성도, 박한경 도전, 안세찬 종도사 3인이 회문산 바둑판 포교운을 맡은 27년 헛도수요, 100년 포교도수입니다. 회문산 바둑판 100년 포교도수가 끝나면서, 회문산 바둑판 운수의 주인공인 단주가 나와 태을도로 결실합니다.

출처 : 태을도(太乙道) : 태을궁 용봉서신(太乙宮 龍鳳書信)
글쓴이 : 디딤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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