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태을도 2014 갑오년 대설치성 도훈 : "나는 나다"
태을도 2014 갑오년 대설치성 도훈 : "나는 나다"
양력 2014.12.07 (음력 2014.10.16)
오늘은 어떻게 상제님 고수부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받아서 나를 완성시켜갈 수 있는 것인지, 내가 정말 나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제님께서 ‘지금은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즉 근본으로 돌아가는 때다. 근본으로 돌아가는 때라고 하는 건, 나를 찾는 때라는 거죠. 내 진면목 내 참모습을 찾는 때다.
제가 전에도 한 번 말씀드린 것 같은데, 모 장관이 한 노스님을 만났더니 그 노스님이 "당신은 누구요?" 하고 장관에게 물어보더라는 거예요. “나는 아무개입니다.” 그러니까 또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더라는 거예요. “나는 무슨 장관을 했던 누구입니다.” 또 “누구요?” 하니까 “나는 어디에 사는 누구입니다.” 한 열 번 정도를 물어보니까 더 할 말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 스님은 계속 “당신은 누구요?”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어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인 것을 대는데 한계가 있더라는 거예요. 막판에는 깜깜절벽이 되어서 아무 말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거예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이 안 나는 거예요. “나는 누구인가!”
원시반본 시대에 상제님 고수부님이 우리한테 얘기하시는 건 뭐냐? “너는 누구냐? 그 답을 한 번 찾아봐라. 어디서 와서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어떻게 열매를 맺는 건지 그 해답을 찾아봐라.” 상제님 고수부님이 끊임없이 우리한테 말씀하시는 건 너를 찾으라는 거예요. 너를 찾지 못하면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거예요. 곡식농사도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자라서 가을철에 알곡을 맺듯이, 가을에 알곡을 맺는다고 하는 것은 본래의 씨앗의 원 자기 존재를 찾은 거거든요. 자기를 찾지 못하면 후천개벽기에 다 정리되고 만다는 거예요.
상제님 고수부님을 신앙하시는 분들이, 상제님 고수부님께서는 “너를 찾아서 너를 열매 맺으라.” 그러시는데, 자기한테 집중하지를 않고 자꾸 외부에 관심을 갖는다고요. 내가 누군지를 찾으려면 나한테 집중하고 내 마음한테 집중을 해야 되는데, 다른 사람한테 촛점을 맞추고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서 나를 찾는 일에서 방향을 달리 한다고요. 그러다 보니까 나를 찾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나를 찾는 것에 아예 관심조차 안 둬요. 그리고는 뭐에 관심이 많냐? 화려한 건물이라든가, 사람이 많이 모인 거라든가, 돈이 많은 거라든가, 그럴 듯한 외양이 있는 데를 쫓아가요. 거기에 내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거기에 상제님 고수부님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그것을 가꾸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요, 나름대로는 성경신을 가지고. 건물을 화려하게 짓는다던가, 조직확대를 꾀한다든가, 돈을 많이 모은다든가, 그렇게 하는 것이 상제님 고수부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상제님 고수부님은 우리들이 그렇게 해봐야 검불밖에 안 된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건물을 화려하게 단장해봐야 너한테 너 스스로한테 과연 성숙된 길을 제시하는 거냐? 그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고수부님이 제자들한테 경계를 하신다고요. “차경석이나 조철제가 저렇게 건물을 장엄 화려하게 짓는데, 너희들은 무척 부러워할 것이나 그것은 세상을 속이는 사기에 불과하다.” 사기에 불과하다 그러세요.
강증산과 태을도 270페이지 오늘 읽은 성구를 보면,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고요.
@너희들은 나를 매개로 해서 통하려 하지 말고, 너 스스로 네 심중(心中)에 직통(直通)하는 길이 있음을 깨달으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270)
누구나 다 전지전능하다는 거예요.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하고 능소능대하고 인간은 누구나 그렇다는 거예요. 본질적으로 상제님이나 고수부님이나 우리 모두 누구나 다 똑같다는 거예요. 진리의 능력이 다 있다는 거예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이제껏 살아왔는데, 선천 상극지리 때문에, 독기와 살기 때문에, 그것을 잊어버렸다는 거예요. 내가 나를 잊어버리고 살아왔다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 깊게 생각해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얘기해주는 대로, 다른 사람이 손잡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파도치는 대로, 휘둘려왔다는 거예요.
주역 계사하(繫辭下)에 보면, ‘천지지도(天地之道)는 정관자야(貞觀者也)요’, 하늘과 땅의 도는 바로 보는 거라는 거예요. 당태종의 ‘정관의 치(貞觀之治)’하는 ‘정관자야’예요. ‘일월지도(日月之道)는 정명자야(貞明者也)요’, 해와 달의 도는 스스로 밝게 하는 거라는 거예요. 천지일월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밝고 스스로 맑은데, 그것을 인간들이 닮아서 스스로 맑고 스스로 밝게 돼서 완성되는 거예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 스스로 본래의 자아를 완성할 수 있는 씨앗이 다 있어요. 그것을 찾아야 된다는 거지, 원시반본의 시대에. 그걸 찾지 못하면 인간종자가 되지 못해서 사라져 간다는 거예요. 우주법도상 어쩔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제님 고수부님께서 한결같이 간곡하게 신신당부하시는 게 뭐냐 하면, “네 마음을 찾아서 네가 누구인지 밝혀서 네가 너를 구원해라. 네 스스로가 너를 구원하지 못하면 나도 너를 구원할 수가 없다. 구원은 너한테 달려 있고 네 마음에 달려있다.” 이런 얘기를 아주 간곡하게 말씀하신다고요. “후천선경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닦기가 급하다.” 후천선경을 그렇게 고대하지만, 사실상은 마음을 닦아야지 후천선경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나를 찾는 길을 포기하면 그 누구도 나를 찾아줄 수가 없어요.
진정한 스승이라고 하는 건, 진정한 친구라고 하는 것은, 진정한 도반이라고 하는 것은, 각자 자기 자신을 찾아서 완성되도록 자꾸 일깨워주고 부추겨주고 안내해주고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외부로 자꾸 나돌게 하고 눈을 바깥으로 돌리게 하면, 제자를 망치고 친구를 망치고 가족을 망치게 한다는 거예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찾는 길에 집중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경계를 해주고 그래야 나도 살고 그 사람도 살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자기완성의 길을 가려면 외로워야 해요. 고독을 참아야 한다고요.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 자기완성의 길이에요. 상제님 고수부님도 외롭고 고독한 길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찾으셨고, 역대 성인들도 다 외롭고 고독한 길을 걸었어요. 그래서 아까 ‘천지지도는 정관자야요 일월지도는 정명자야요’ 했듯이, 외롭고 고독한 마음, 외롭고 고독한 그 힘겨운 과정을 통해서 천지일월지도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요. 그걸 해야 된다는 거예요.
조금 외롭다고, 조금 고독스럽다고 밖으로 뛰쳐나가다 보면,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볼 기회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개벽과 도통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외로움을 참는 길이고 자기 고독을 참는 길이에요. 그래서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냉정하게 직시하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를 찾아가는 길을 잃어버린다는 거예요.
후천개벽시대에, 원시반본의 시대에, 이 시대는 ‘내가 나여야 된다’는 거예요. 천지에다 대고 ‘나는 나다!’ 하고 당당하게 선포할 수 있는 사람, 세상에다 대고 ‘나는 나다!’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 자기 자신에게 ‘나는 나다!’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외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 후천개벽기를 넘어간다는 거예요.
불교에서도 자기 찾아가는 길을 얘기하잖아요. 대표적으로 송나라 때 곽암(廓庵)선사라고 하는 사람이 만든 ‘십우도(十牛圖)’가 있어요. 열 십(十)자 소 우(牛)자,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단계를 열 단계로 그린 그림이에요. 십우도 또는 심우도(尋牛圖)라고 하는데, 거길 보면 첫째가 ‘심우(尋牛’)에요. 심우, 소를 찾아 나선다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 여기서 소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에요. 불성, 참자아, 생명, 진면목, 참모습. 이걸 맨처음 찾는 과정이 심우단계예요. 찾아 나선다는 거예요. 나는 누구인가. 나를 직시하며 내가 나를 찾아서 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다보면 어렴풋이 소의 자취가 보인다는 거예요, 소의 발자국이. 그걸 ‘견적(見跡)’이라 그래요. 볼 견(見)자 발자국 적(跡)자. 자취를 보고 나면,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그 다음엔 ‘견우(見牛)’, 소를 보았다는 거예요. 소를 찾았다는 거예요. 그 다음이 ‘득우(得牛)’. 소를 얻었다는 거예요. 견우와 득우는 소를 찾아 만나 얻었다는 거예요. 내가 나를 만나 나를 얻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첨에 내가 나를 만나 나를 얻으면, 내 본성을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거예요. 날뛰고. 소가 막 날뛰고 그러잖아요.
심우, 그다음에 견적, 다음에 견우, 다음에 득우. 득우단계에서 내가 나를 만나 얻어서 다음에 ‘목우(牧牛)’. 내 스스로를 내가 잘 다듬질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기우귀가(騎牛歸家)’. 그 소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가고. 집으로 돌아와서의 마음을 ‘망우존인(忘牛存人)’이라고 해요, 소를 잊고 나만 남는 거라. 그 다음에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잊고 나도 잊고. 그 다음에 ‘반본환원(返本還源)’. 다음에 ‘입전수수(入廛垂手)’ 이렇게 열 단계인데, 그 열 단계를 통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풀어 얘기해줘요. 불교에서는 마음을 통해서 자기 근본자리를 찾아가라고 그러니까, 선사들이 이렇게 가르친 거지요.
그런데 상제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뭐가 있냐? 시천(侍天) 태을(太乙)이 들어있다는 거예요, 내 마음속에. 천주(天主)의 성품하고 똑같은 성품과 태을(太乙)의 생명력과 똑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희들이 천지일월이 되라는 거예요. 천지일월이!. 그렇게 되어야지 열매를 맺는다는 거예요. 인간을 소우주라고 하잖아요, 천지의 진액이고. 내가 나로서 완성되는 길이 마음속에 다 있다는 거예요. 심중에 직통하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너희들이 찾으라는 거예요. 그래야지 개벽세상도 맞이할 수 있고 도통세상도 맞이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철이 들어간다는 거고, 철이 들어간다는 것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고독하고 힘들고 외롭고 이 속에서 하나하나 내가 자리를 잡아간다는 거예요. 젊은 시절에는 고독이라는 걸 잘 모른다고요. 외로움이라는 걸 잘 몰라요. 뛰어다니고, 돌아다니기 좋아하고, 그러다 보니까 외부 환경 속에서 나를 찾으려고 해요.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그동안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 자기를 찾는 쪽으로 관심을 보여요. 그래서 고독과 외로움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거예요. 진정한 성숙은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내가 성숙이 되는 거예요.
증산종단 100년 동안에 이렇게도 포교해 보고 저렇게도 포교해 보고, 이렇게도 공부해 보고 저렇게도 공부해 봤는데, 이제는 우리 각자가 자기 내면에 집중해가지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나인가’ 이것에 대해서 치열하게 반성하고 공부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고요. 그래서 고수부님도 그러시잖아요. 다른데 마음 빼앗기지 말고, 너희들은 방문 꼭 잠그고 들어앉아서 마음 닦고 주문수행 열심히 해라.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하라는 거예요.
태을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시천 태을을 밝히고 맑혀서 자기 진실에 마주한 사람이에요. 자기 진면목에 마주해야지 후천 상생세상을 이뤄나갈 수 있는 종자가 된다는 거예요, 마음 종자. 내가 내 마음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교류하고 이렇게 해서 화락한 세상을 만드냐는 거예요.
후천은 지심대도술(知心大道術) 시대예요. 천주님을 모시고 태을을 용사해서 신명과 조화를 이루어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그러려면 첫째도 내 마음속에 있는 시천 태을을 찾아야 되고, 둘째도 시천 태을을 찾아야 되는 거예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후천에 넘어갈 수가 없어요. 상제님 고수부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게 뭐냐 하면 “너를 찾아라, 너 자신을 찾아라. 나는 충직한 종복을 원하지 않는다. 노예근성을 버려라. 방벽에도 의지하지 말아라.” 이거예요. 자기 자신의 떳떳함. 자기 자신을 찾으면 외로울 수가 없다고요. 외로운 과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찾지만, 찾고 나면 외롭지가 않다고요. 그래서 홀로서기를 하라는 거예요.
후천개벽기라고 하는 것은 홀로서기를 하는 시기에요. 가을철에 곡식이 누렇게 익으면 떨어지잖아요. 그게 홀로서기를 하는 거예요. 인간들 각자가 홀로서기를 할 때이기 때문에, 홀로서기를 하지 않으면 다 낙엽이 되어서 천지에서 모조리 정리한다는 거예요. 마음을 심판해서 천심자를 골라서 태을을 결실한다는 거예요. 그것은 내 몫이고 내 책임이고 내 사명이에요. 내가 나를 살리고 내가 나를 죽인다는 거예요. 후천개벽시대요 원시반본하는 이 시대는, 내가 나임을 선포하는 시대이고 내가 나로서 결실맺는 시대이기 때문에, 내가 나 되는 길을 찾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사라진다는 거예요.
태을도라는 것은 내가 나 되는 도예요. 내가 나 되는 길이고. 내가 철저히 나가 되어야지 다른 사람들도 나같이 세워줄 수가 있어요. 태을도는 어떻게 포교하는 거냐? 내가 나 되는 만큼 포교를 할 수 있어요. 내가 나 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도 홀로서기를 시켜 올바로 세워줄 수가 없다고요.
방황은 언제 멈추냐? 내가 나를 찾아야지 방황을 멈춰요. 선천 오만 년 동안 크게 보면 내가 나를 못 찾았기 때문에 방황해온 거예요. 그전에 고시 합격수기를 읽어보면, 주로 나오는 제목이 ‘방황의 끝’, 이렇게 많이 나오더라고요. 고시 합격한 것이 방황의 끝이라 이거예요. 선천 오만 년의 방황의 끝은 뭐냐? 내가 나를 찾는 거예요. 내가 나를 찾아서 방황을 끝내는 거예요.
유불선 기독교가 각기 나름대로 자기 자신을 찾아가지고 하느님을 만나서 하느님같이 되라는 거거든요. 증산상제님께서는 유불선서도, 선천 오만 년의 모든 진리를 종합해서 명실상부한 ‘내가 나 되는 길’을 완성해서 태을도를 내셨어요.
모두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시천 태을을 찾아서 내가 나로서 완성되는 이 길을 가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요. 그렇게 해야지만 이 세상을 안정시킬 수가 있어요. 내가 나를 찾아야 안정이 되니까,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야 방황하지 않고 안정이 될 거잖아요. 그래서 태을도를 닦는 태을도인은 각자가 자신을 찾아가지고 안심안신하는 길을 가는 거라고요.
올해가 얼마 안 남았는데, 대설치성을 맞아서 우리가 치열하게 나를 찾는 공부, 마음 닦고 태을주 읽으면서 치열하게 나를 찾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찾아서 완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상입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