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을도 도훈(道訓)

[스크랩] 태을도 갑오년 입하치성 도훈 : 원수를 은인처럼, 심법신앙에 충실하라

태을세상 2014. 5. 7. 07:27

 

태을도 갑오년 입하치성 도훈 : 원수를 은인처럼, 심법신앙에 충실하라

2014.5.5 (음력 2014.4.7)          


 상제님 신앙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 것인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되고, 어떤 모습으로 말과 행동을 해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봉독을 했듯이 ‘강증산과 태을도’ P267에 보면 상제님께서 간곡하게 이야기 하세요. 독기와 살기를 빼내라. 전부 그런 이야기거든요.


“만약 다른 사람이 나의 손을 치면 그의 손을 만져 위로할 지니라.” (대순전경 p327)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납득하지 못할 행동을 당하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그런 걸 당하면, 감정이 상해서 감정적으로 대응을 해요. 특히 어떤 사람이 나를 친다 그러면 먼저 이렇게 손부터 나가는 거라. 자동차 사고가 난 경우에도 보면 서로 소리를 지르고 감정적으로 한다고요. 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생각으로.


 상제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 다른 사람이 나를 치면 맞대응하지 말고 그 손을 만져 위로해주라는 거예요. 나를 치느라고 아팠을 거 아니에요. 그리고 나를 치려고 했을 때는 치려고 했던 그 마음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상대방이. 그냥 이유없이 친 게 아니고 상대방의 감정이 실리고 마음이 실리고 생각이 실려서 나한테 주먹을 휘두르고 나한테 뭘 하지,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무심코 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나한테 서운한 게 있는 거지. 그것을 헤아려서 일단 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라는 거예요. 손을 만져 위로해주라는 건 뭔가 하면, 그 사람의 나에 대한 감정을 풀어 주라는 거예요. 서운한 감정, 미워하는 감정. 나에게 혹시 독기와 살기를 품었다면 잘 어루만져 줘서 그것을 풀어주라는 거예요. 그래야 그 사람이 나한테 맺힌 게 풀어진다구요. 내가 상극을 종언을 시켜야지, 내가 나서서 그 상극을 더 연장을 시키면 상제님의 사람이 안된다는 거예요.


두 번째 말씀을 보면,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하면 덕이 되어 복을 이룬다.” (대순전경 p327)


 상제님 말씀은 뭐냐 하면, 과거에 네가 생각하고 처신하고 마음먹었던 것을 완전히 바꾸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상제님을 모시고 후천 상생세상을 열어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죽었다 살아나는 거지. 과거의 나를 완전히 벗어나라는 거예요. 세상에 어떻게 원수를 은인과 같이 사랑할 수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못하잖아요. 원수가 아니라 나를 조금이라도 미워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내가 어떡하든 욕이라도 하고 뭔가 싫은 소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지. 그게 일반적인 세상사람들의 감정인데, 상제님은 그렇게 해서는 이 상극세상을 상생세상으로 못 넘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한테 원수라고 할 지라도 그 사람을 은인처럼 사랑하면 덕이 되어서 복을 이룬다. 원수를 은인처럼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세상사람들을 감화시켜 상생세상을 이룬다는 거예요.


 그 아래 구절을 보면, 박공우 성도가 의리의 남아였던가 봐요. 자기 딴에는 굉장히 정의롭고 자기 딴에는 시시비비를 가장 잘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 박공우이기 때문에, 누가 시비를 붙는다 하면 그 꼴을 가만두고 못 보는 거예요, 가닥을 터줘야지. 네가 잘하고 네가 잘못했다, 네가 옳고 그 사람이 그르다 하는 것을 정확하게 해줘야지 직성이 풀리지, 그렇지 않으면 뭔가 자기가 제대로 대인대의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박공우 성도는 항상 자기가 생각하는 대인대의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을 대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박공우 성도가 기준으로 했던 대인대의하고 상제님께서 가졌던 대인대의하고 다른 거예요.


 상제님께서 박공우 성도에게 그런다고요. “네가 남과 싸움을 많이 하였느냐?” 그러니까 박공우 성도가 “그러하였나이다.“ 그러니까 상제님께서 ”표단(豹丹)이 들어서 싸움을 즐기나니 이제 표단을 빼어내고 인단(仁丹)을 넣으리라“. 상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거든요. 그러니까 네 속에 이리 같은, 이리 표(豹)자 거든요. 이리 표(豹)자.


 이리가 얼마나 싸움을 잘하고 잔인한 기운이 많이 있어요. 그런 기운이 들어서 싸움을 즐긴다구요. 마음에 조금만 거슬리는 얘기를 하면, 상제님 기준이 아니라 자기 기준이죠, 자기 기준을 조금만 거슬리면 주먹을 내지르고 말이 험하게 나가고 이렇게 한다는 거예요. 박공우 성도가 그렇게 처신해 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상제님께서는 네가 해온 그런 방식대로는 상극세상을 연장할 뿐이다. 네가 아무리 대인대의해서 잘한다 하지만은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한테 척과 살을 맺어가지고 상극세상을 연장할 뿐이다. 내가 건설하려고 하는 상생세상은 아니다. 네가 나를 따르려면 그런 표독한 마음, 싸움을 좋아하는 성질머리를 빼버려야 한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그 기운을 빼내고 인단을 넣어주신다고요. 그러니까 박공우 성도의 성질이 온순하게 되어가지고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고 혹 싸우는 자가 있으면 두려운 마음이 생겨서 곧 멀리 피하게 되지요.


 원래는 박공우 성도가 싸움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던 거예요, 일부러. 그러던 사람이 상제님께서 표단을 빼어내고 인단을 넣어주니까 싸움이 있는 현장에 가기를 꺼려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전 자기 버릇이 나올까봐. 가서 보면 눈꼴이 사나워서 또 욱할 수가 있으니까, 싸움이 있으면 피해 다니는 거예요. 상제님께서 네가 이제까지 해온 것을 전부 버리라고 하셨으니까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혹시 내가 내 잣대로 대인대의(大仁大義)의 행세를 해서 상제님 대인대의에 방해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얼마나 두려울 거예요. 그러니까 싸움이 있는 현장이 있으면 멀리 피한다는 거예요.


 상제님께서 종합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신다고요.


 “남이 트집을 잡아 싸우려할 지라도 마음을 눅혀서 지는 것이 상등사람이라 복이 되는 것이요, 분을 참지 못하고 어울려 싸우는 자는 하등사람이라 신명의 도움을 받지 못하나니 어찌 잘 되기를 바라겠느냐” (대순전경 p348)


 이게 상제님의 결론이에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남들이 나한테 트집을 잡는 경우가 있어요.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나는 열심히 잘하는데 거꾸로 트집을 잡아가지고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다고요.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한 마디 응수를 해요. 니가 뭔데 나한테 시비를 거느냐. 맞대응을 한다구요. 그런데 상제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렇게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마음을 잘 눅혀서 져주라 이거예요. 져주면 신명들이 그것을 봐서 도와준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상제님께서는 신명을 조화해 가지고 천지공사를 보셨기 때문에, 천지간에 가득찬 게 신이라고 그러시잖아요, 상제님을 제대로 따르는 신명은, 상제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거예요.


 아까 상제님 말씀을 얘기했듯이, 다른 사람이 나를 치면 그 손을 만져 위로하는 사람한테 신명이 도와준다는 거예요. 또 원수를 풀어 은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한테 신명이 도와준다는 거예요. 또 성질이 온순해서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는 사람한테 신명이 도와줘서 일을 성취하게 해준다는 거예요. 그렇게 천지공사를 만들어 놨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지만이 신명이 도와서 상생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거예요.


 이것이 상제님께서 후천 상생세상을 건설하는 원칙이에요, 근본이고 중심이고. 싸움을 부추긴다거나, 시거리가 붙었는데 한쪽 편을 편들어서 상대방하고 싸움을 하게 한다든가, 상대방을 욕하게 한다든가, 상대방을 증오하게 한다든가, 이것은 상제님께서 가르치는 법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아무리 그것이 정의롭게 보이고 아무리 그것이 위대해 보이고 명분에 맞게 보이더라도, 그것은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正義)고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대의(大義)고 자기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경위(經緯)이지, 상제님이 생각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에요. 잣대를 끌어올리라는 거예요. 내가 말하고 글 쓰고 처신하는 잣대에서 상제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잣대로 끌어올리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야지 척과 살을 안 짓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제님이 그런 말씀하시잖아요. 제자들이 상제님한테 “어떤 사람이 두 번 세 번 자꾸 잘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 제자의 마음속에는 그런 게 있을 거에요. ‘한 서너 번까지는 용서를 해줄 수 있지만 그 이상 잘못하면 어떻게 용서합니까, 가서 쥐어박든지 무슨 사단을 내든지 해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이거에요 쉽게 말하면. 그 질문속에 답이 있잖아요. 상제님께서는 그래선 안된다. 상생세상을 열려면 그래서는 안된다. 무조건 용서해 줘라. 용서해 준다고 해서, 그것이 잘되었나 잘못되었나를 판단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거든요. 판단은 하되 되갚지는 말라는 거예요, 똑같은 방식으로.


 상제님이 또 그런 말씀하시잖아요. ‘악을 악으로 갚으면 피로 피를 씻기와 똑같다.’ 마음을 잘 돌려서 악을 선으로 갚아라. 나한테 돌맹이로 치는 놈한테 돌맹이를 주워들어 던지지 말고 떡으로 하라는 거예요. 그래야 상생세상이 열린다는 거예요.


 상제님이 말씀하신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런 상생의 말과 글을 가지고 상생세상을 건설한다는 것이 죽기보다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심법이 중요한 거예요. 아무리 개벽을 외치고 아무리 도통을 외치고 아무리 의통을 외치고 뭘 외쳐도 마음이 잘못되어 있으면 도루묵이라는 거예요. 자기 기준에서 도통이고, 자기 기준에서 개벽이고, 자기 기준에서 의통이지, 그건 상제님하고는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예요. 상제님이 말씀하신 처신의 방법하고 완전히 다른데, 그 사람한테 온전히 개벽기운이 가겠어요, 도통기운이 가겠어요, 의통기운이 가겠어요. 그건 아니라는 거예요. 과도기적으로 세가 모이고 명성이 얻어지고, 그럴듯해 가지고 돈이 모이고 그러지만, 그것은 사기라는 거예요. 세상을 속이는 사기라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 양심을 속이고 자기가 자기 마음을 속이는데 언젠가 들통이 안 나겠느냐는 거예요. 신명이 다 보고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증산종단 100년만에 개벽신앙을 하고 도통신앙을 했던 이 거품을 걷어내야 된다는 거예요. 심법신앙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거예요. 개벽신앙과 도통신앙에 머무르면 1년을 신앙하나 10년을 신앙하나 100년을 신앙하나 똑같아요. 개벽신앙과 도통신앙을 못 버리면, 신앙을 하면 할수록 박공우 성도가 자기 기준의 대인대의로 결국 상제님 얼굴에 먹칠을 하듯이, 결국은 내가 외친 개벽과 내가 외친 도통이 상제님 고수부님 얼굴에 먹칠한다는 거예요. 똥칠을 한다는 거예요. 자기는 잘한다고 하지만.


 그래서 마음닦는 게 중요하고, 마음을 바꾸는 게 중요하고, 자기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내 마음이 바뀌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상제님의 마음과 같이 안 되었는데, 무슨 놈의 개벽이고, 무슨 놈의 도통이고, 무슨 놈의 의통이겠어요. 그건 자기 욕심이지.


 상제님이 그러시잖아요. ‘한 사람만 있으면 내 일은 된다는 거예요. 상제님 고수부님 같은 마음이 한 사람만 있어도 된다는 거예요. 조직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상제님 고수부님하고 똑같은 마음 종자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 마음 종자가 되어야지 후천을 넘긴다는 거예요. 종자를 고르는데 훌륭한 종자를 고르고 아주 완벽한 종자를 고르지, 대충대충 종자를 안 고른다구요. 과도기적으로 그런 사람이 쓰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첫째도 마음이요, 둘째도 마음이요, 셋째도 마음이에요. 상제님은 마음만 본다는 거예요. ‘나는 풍운조화를 쓰려고 하지 않고 너의 그 마음을 쓰려고 한다.’ 그 마음. 그 마음이 상제님하고 이심전심이 되어야지만이 신명들이 그 사람을 도와가지고 그 사람을 상등사람으로 모신다는 거예요. 원수를 사랑하고, 누가 트집을 잡아도 다 마음을 눅여가지고 그 사람을 잘 어루만져주고 이래야 신명들이 상등사람 대접을 해주지, 감정조절 잘못하고 자기 성질 못이기는 사람은 하등사람이라는 거예요. 내가 상등사람이 되느냐 내가 하등사람이 되느냐는 다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거예요. 그 마음 속에 있는 태을(太乙)을 드러낸다는 거예요. 내가 하등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등의 태을을 드러낼 거 아니에요. 내가 상등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상등의 태을을 드러낼 거 아니에요. 그래서 마음을 심판해서 태을을 추수하는 거예요. 누가 나를 살려주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이 나를 살려주는 거예요. 누가 나를 추수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태을을 추수하는 거예요.


 첫째도 내 관리를 잘해야 하고, 둘째도 내 관리를 잘해야 해요. 남에게 신경쓸 일이 없어요. 싸움판에 끼어들 일이 없어요. 왜 거기 끼어들려고 하고 거기 가담 못해서 안달이냐는 거예요. 개벽과 도통을 외치는 사람들은 서로 싸우게 되어있어요, 저희들끼리. 내가 외치는 개벽이 진짜다. 아니다 저 사람이 외치는 도통이 진짜다. 고수부님이 그러시잖아요. 들어갈 때는 제 마음대로 들어간다는 거예요. 개벽을 외치고 도통을 외치고, 외치는 대로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다가 서로 잡아먹는 거예요, 독기와 살기를 버리지 못해서. 백 년동안 그렇게 해 왔다는 거예요. 상생의 도는 서로 잡아먹는 게 아니에요. 고수부님 말씀대로 나올 때는 한 구멍으로밖에는 나올 곳이 없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 상제님 고수부님이 상등사람의 표준이기 때문에, 그 분의 심법을 가지고 그 분의 말과 행동을 하고 그 분의 행동거지를 하는 사람한테 자연스럽게 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나를 쳐도 그 사람의 손을 어루만져서 마음을 풀어주는 사람, 원수를 풀어서 은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 성질이 온순하게 되어가지고 싸움을 즐기지 않는 사람, 남이 트집을 잡아도 마음을 눅여서 용서하고 사랑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상제님의 사람들이 되어서 매듭짓고 결실한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의통성업을 한다는 거예요. 의통성업이라는 게 별게 아니에요. 고쳐서 통일한다는 거예요. 뭘 고쳐서 통일하느냐. 마음을 고치고 말을 고치고 글을 고치고 행동거지를 고쳐서 통일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의통이에요 의통.


 상제님이 그런 말씀하시잖아요. “한고조는 소하의 덕으로 천하를 얻었나니 너희들은 베풀 것이 없으니 오직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없다 이거에요. 상생의 사람은, 상극세상에서도 원수를 사랑하고, 트집을 잡는 사람한테도 잘 대접을 하니까, 베푸는 일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남아있는 게 없잖아요. 내가 권력이 있겠어요, 돈이 있겠어요, 명예가 있겠어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위무(威武)로써, 위엄과 무력으로 얻어지는 선천세상에서의 돈과 명예와 권력인데 그런 걸 안가지고 행세를 하니, 그 사람에게 무슨 선천식으로 베풀 게 있겠어요. 그러니까 상제님 말마따나 베풀 게 언덕밖에 없다는 거예요.


 상제님께서 그러시잖아요. “내 말은 약이라.” 말로써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말로써 병든 사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고. 천지공사를 상제님께서 베푸셨어요. 약방에다가 약장도 짜고 궤(櫃)도 짜고 하셔서 궤에다 24점을 찍으시고 ‘설문(舌門)’이라 쓰셨다고요. 말로써 성사되어간다는 거예요. 말에는 기운이 들어가 있고 신명이 응기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천지부모님의 마음하고 닮은 마음으로 말과 글을 쓰고 행동거지를 하면, 대신명들이 와서 그 사람을 상등사람으로 만들어 가지고, 상등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의통성업의 일에, 진력하게 한다는 거예요. 의통성업의 일은 하등사람의 일이 아니에요. 상등사람의 직업이 뭐냐 그것이 의통성업이에요. 상등사람의 직업인 의통성업의 일을 하려면, 상등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상등사람의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처신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왜 끼어들려고 하느냐는 거예요. 싸움에. 왜 증산종단간 싸움에 끼어들려느냐는  거예요. 상제님 얼굴에 먹칠하고 똥칠하는 일이지 그게. 상제님께서 끼어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구요.


 오늘이 입하(立夏)인데 입하에 손사풍(巽巳風)이 불어요. 따뜻한 바람이 분다고요. 따뜻한 바람이 불면 이파리가 번성하고 만물이 풍성하게 돼요. 그러면서 병원균, 온갖 병원균들도 다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따뜻한 바람에 약도 나오고 병도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따뜻한 상생세상이 건설되려는 때에 즈음해서 온갖 술수들이 다 나올 거 아니에요. 온갖 정의를 외치는 술수들이 다 나온다는 거예요. 상제님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용서하고 사랑해라. 어떤 구실을 발견해서라도 용서하고 사랑해라. 진리의 힘은 용서하고 사랑하는 거예요. 편을 가르는 게 아니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거예요.


 이번 세월호에서도 보았지만, 중심이 높으면 파도에 휩쓸려서 엎어져요. 중심이 낮을수록 파도에 버티는 힘이 강해져요. 승객을 많이 싣고 화물을 많이 실으려면 중심을 깊게 해야 된다구요. 중심을 깊게 하지 않고 사람을 모으고 화물을 모으고 하다 보면, 돈을 모으고 사람 모으고 하다 보면, 세월호 꼴 난다니까요. 진정한 개조는 중심을 깊게 하는 거예요. 중심을 깊게 하면 아무리 많은 승객을 태우고 화물을 실어도 배가 침몰하지 않아요. 우리가 남조선배라고 하잖아요. 태을도 남조선배는 상제님 말씀하신 그 가르침에 따라서, 마음을 깊게 파서, 사랑하고 용서하는 힘을 길러서, 화합하고 포용하는 힘을 길러서, 원수도 사랑하고 나한테 트집을 잡는 사람도 잘 보듬어안고, 나를 치는 사람도 잘 위로하고, 그렇게 해서 태을도 남조선배를 잘 운행해야 한다고. 그것이 상제님께서 우리 태을도인들한테 신신당부하시는 거예요.


 우리 태을도인들은, 첫째도 마음 닦고 태을주 읽는 것이요, 둘째도 마음 닦고 태을주 읽는 거예요. 그 마음 닦고 태을주 읽는 결과가 편당을 짓지 않고 표용하고 화합하고, 싸움을 붙이는 게 아니고 시거리를 붙이는 것이 아니고, 화합의 기운, 용서하는 기운, 사랑의 기운을 통해 양심을 깨어나게 하는 거예요. 증산종단 100년만에 이제 그럴 때도 되었다는 거예요. 사랑과 용서라는 말과 글이 그런 행동이 증산신앙인들 속에서 많이 나와야지 상생세상이 도래하는 거예요. 그걸 태을도인들이 앞장을 서야 되는 거예요. 


 갑오년 입하치성에 재삼 재사 당부드리는 것은, 개벽과 도통신앙의 이끗에 휘둘리지 말고 정말로 심법신앙에 충실해가지고, 내 마음의 중심을 깊게 깊게 파가지고, 상제님 고수부님의 마음과 이심전심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간절히 당부드립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출처 : 태을도(太乙道) : 태을궁 용봉서신(太乙宮 龍鳳書信)
글쓴이 : 충정(忠正)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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